올림픽 무대 서는 브레이킹, 제2의 전성기 맞을까 [커버스토리]
[경향신문]
한국 비보이는 정말 세계 최고일까. 답은 ‘그렇다’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외 대회가 줄어든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 비보이는 선방했다. 5일 비보이 월드랭킹 집계사이트 ‘비보이 랭킹즈’에 따르면 한국의 비보이 국가 랭킹은 미국에 이어 2위고, 팀 랭킹에서는 한국팀 ‘진조 크루’가 3위다. 개인별 순위에선 ‘비보이 윙’(34·본명 김헌우)이 2위, ‘홍텐’(36·본명 김홍열)이 3위에 올랐다.
2001년 창단한 진조 크루는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브레이크 프리 월드 와이드 어워즈에서 최고의 팀으로 선정됐다. 이들은 비보이 40년 역사상 처음으로 5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한 팀이기도 하다. 비보이 홍텐 역시 같은 시상식에서 ‘올해의 브레이커’ ‘올해의 퍼포먼스’ ‘올해의 배틀’상을 수상하며 3관왕에 올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발표가 나온 직후 브레이킹을 두고 ‘효자 종목’이라 칭하는 기사가 쏟아진 이유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비보이들은 마냥 금빛 환상에 젖어 있지 않았다. 지난 1일 경기 부천시 상동의 진조 크루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헌준 진조 크루 대표(36)는 “당장 올림픽이 열린다면 금메달은 한국 것이 맞다. 하지만 3년 후를 본다면 가능성이 아닌 확신을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대한민국댄스스포츠연맹 브레이킹분과 부위원장이기도 하다. “‘윙’과 ‘홍텐’은 30대 중반, 최노장입니다. 관리를 잘해 20대 선수들을 이기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선 20대 초반 선수들이 날아다녀요. 이들이 현역으로 뛰면서 우승에 대한 감이 있을 때 어린 친구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야 해요. 후진 양성을 위한 환경 조성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국 브레이킹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진조 크루, 퓨전MC, 갬블러 크루 등 세계적인 비보이 크루들이 이 시기 탄생했다. 하지만 미디어의 관심이 멀어지고 한류 산업이 K팝 중심으로 언급되면서 브레이킹은 ‘한물간’ 장르처럼 여겨졌다. 경력 10년차 비보이 A씨는 “과거엔 힙합을 한다고 하면 브레이크 댄스를 떠올렸지만, 지금은 모두가 랩을 말한다”며 “방송사가 랩 경연 프로그램을 만들고 랩이 힙합문화를 대표하기 시작하면서 브레이킹의 입지가 줄었다. 춤의 영역에서도 K팝 안무에 관심이 집중됐다”고 말했다.
“올림픽은 3년 뒤…금메달 확신 못해 절정의 기량 있을 때, 후진 양성해야죠”
23년 전 만화 ‘힙합’ 보고 입문
세계 최고 수준 댄스팀 이끌지만
춤 실력만으론 인정받을 수 없어
‘비보이’로 먹고살 수 있고
언더문화 인식도 바뀌길 희망
관심이 줄자 지원도 줄었다. IOC는 최종 발표 1년6개월 전인 2019년 6월 열린 제134차 총회에서 브레이킹을 파리 올림픽 종목으로 잠정 승인했다. 비보이들은 정식 종목 채택을 확실시했다고 입을 모았지만, 유관 기관의 움직임은 더뎠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청소년(유스) 올림픽 브레이킹 부문 국내 예선을 치르고, 본선까지 선수들을 관리한 것도 김 대표와 진조 크루였다. “잠정 승인 결정이 났을 때 일본이나 중국은 국가적으로 엄청난 지원이 들어갔어요. 중국은 키즈 대회만 2박3일 일정으로 치러질 정도로 비보이 인구가 많아요. 종주국인 미국도 2028 LA 하계올림픽을 위해 브레이킹 지원에 집중하고 있고요. 저희는 일개 단체잖아요. 한계가 있었죠.”
전성기엔 진조 크루 새 멤버를 뽑는 오디션에 100여명이 몰렸다. 최근엔 30~40명으로 줄었다. 멤버를 선발해도 연습량과 춤의 난도 때문에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댄서들뿐만 아니라 브레이킹에 관심을 갖고 향유하는 세대의 고령화도 심각하다. 유튜브 채널 ‘비보이 질럿’(구독자 5만명)을 운영하는 강재성씨(36)는 “주 구독자는 30~50대 남성이며 10대·20대는 20% 정도”라고 말했다. 현역 비보이이기도 한 강씨는 “브레이킹 대회를 리뷰하고 선수를 소개하는 입장에서 ‘괴물 비보이’를 찾기 위해선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하는 실정”이라며 “남아 있는 비보이들이 분투하고 있지만, 지원 없는 ‘국뽕’에만 만족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올림픽은 한국 비보이·비걸에게 ‘마지막 기회’다. 국내 비보이 인구는 약 1만명으로 추산된다. 김 대표는 “이들 중 현재 세계 무대에서 겨룰 실력을 가진 이들은 20명, 우승 가능성이 있는 비보이는 5명으로 점쳐진다”며 “30명으로 추산되는 비걸은 지금부터 부단히 노력해야 메달권에 들 수 있다”고 말했다. 브레이킹분과위원회에서는 선수·지도자·심판을 뽑는 규정을 제정하고 브레이킹 자격증 제도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회와 국가대표 선발전 주최와 주관은 대한댄스스포츠연맹이 맡는다.
김 대표는 23년 전 동생 ‘윙’과 함께 김수용 작가의 만화 <힙합>을 보고 브레이킹의 매력에 빠졌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악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여러 수식어를 떼고 비보이로서 꿈을 묻자 김 대표가 스튜디오 벽면을 가득 채운 우승 상패와 트로피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건 과거잖아요. 브레이킹이 역사로 남게 할 순 없어요. 스트리트 댄스라고 하면 여전히 비주류와 주류를 오가는 언더(하위)문화라는 인식이 있죠. 이걸 바꿔보고 싶어요. 비보이 세계에서의 자부심은 있는데, 춤만 잘 춘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비보이 해서 뭐 먹고 사냐’는 말을 듣지 않는 날이 왔으면 해요.”
■야구 밀어내고 2024년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시청층 고령화 해소 ‘히든카드’
올림픽과 브레이킹의 세계
“(브레이킹이) 올림픽과 젊은 세대를 연결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말이다. 브레이킹은 야구를 밀어내고 2024년 파리 하계올림픽 정식 종목에 채택됐다. 현재 종주국인 미국은 물론 유럽과 러시아, 일본, 중국에선 전성기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올림픽 개최국 프랑스에는 ‘국립 비보이단’이 있을 정도다.
브레이킹은 IOC에 올림픽 중계 시청층의 고령화를 해소할 ‘히든카드’다. 올림픽 시청 중위 연령은 미국 기준 2012년(런던 올림픽) 49.5세에서 2016년(리우 올림픽) 52.4세로 고령화되는 추세다. 특히 18~34세 시청 인구가 30% 줄면서 밀레니얼 세대의 이탈이 컸다. 전체 수입의 73%를 방송 중계권료에 의존하는 IOC 입장에선 위기를 타계할 승부사가 필요했다.
IOC는 브레이킹을 시범 종목으로 채택한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청소년(유스) 올림픽에서 희망을 봤다. 브레이킹 경기마다 평균 3만명의 관중이 몰렸다. 경기는 팀 배틀 없이 일대일 댄스 배틀 형식의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됐다. 파리 올림픽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녀 각각 16명씩 본선에 진출해 금·은·동메달을 다툰다. 기술과 연기, 창의력, 대중성 등을 중점으로 본다.
브레이킹 하면 ‘헤드스핀’ 등 화려한 동작을 떠올리지만, 이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인 파워무브의 한 종류다. 파워무브는 회전을 기본으로 한 동작을 뜻한다. 이외에도 팔을 위주로 쓰는 톱록·업록, 동작을 순간적으로 멈추는 프리즈,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스텝을 밟는 풋워크가 기본 요소로 꼽힌다. 같은 스트리트 댄스 계열의 팝핀이나 와킹과는 결이 다르다.
채점 방식은 피겨스케이팅과 유사하다. 하지만 대회에서 DJ가 틀어주는 음악에 즉흥적으로 춤을 춰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대진운과 상대를 도발하는 ‘쇼잉’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해 보는 재미가 크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표현력과 예술성을 강조하는 만큼 판정 시비가 불거질 우려도 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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