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고 방방곡곡 - 예산] 마음 일렁이게 하는 호수의 고장
사과의 고장, 호수의 고장, 황토의 고장, 수덕사를 품은 곳.
충남 예산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표현들이다. 시 단위 지자체가 아닌 군이지만, 비교적 규모가 크다. 인구 7만 8천 명. 경북 문경시(7만 1천), 강원 삼척시(6만 6천), 경기 과천시(6만 3천)보다 사람 수는 더 많다.
서울시청에서 예산군청까지 자동차 거리는 128㎞,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7시 10분 첫차를 타면 2시간, 9시 10분이면 예산터미널에 떨어진다. 열차편은 서울역에서 KTX, 천안역에서 장항선으로 갈아타면 1시간 30분 만에 예산역에 발이 닿는다. 서울과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다.
▲ 대한민국 '제1저수지' 예당호
9.9㎢ = 300만 평 = 축구장 1,386개. '예산의 명물' 예당호를 나타내는 수치들이다. 대한민국 저수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시화호처럼 바다에 방조제를 쌓아 만든 호수, 강을 막은 댐이 아닌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모아 만든 저수지 가운데 제일 크다. 물가 테두리, 산과 산을 이은 길이만 40km에 달한다. 길만 있다면 마라톤 코스로 제격이다. 이름은 예산과 당진의 앞글자를 따서 예당. 저수지의 물은 예산 삽교평야를 지나 당진평야까지 이어진다. 예당호에는 잉어 등 물고기도 많아 연간 10만 명의 강태공들이 다녀가는 낚시 명소이기도 하다. 1979년 전국체육대회 때는 조정경기도 열렸다고 하니 스포츠 메카이기도 하다.
▲ '국내 최장' 출렁다리 아름다움에 빠지다
2019년 4월 6일에는 60년 예당호 역사에 또 하나 이정표가 세워졌다. 길이 402m, 우리나라에서 최고 긴 출렁다리가 만들어진 거다. 거대한 호수에 주변은 야트막한 산, 여기에 웅장한 현수교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입장료는 무료다. 여름에는 밤 10시까지, 겨울에는 8시까지 문을 연다. 야간에는 LED 조명이 빛을 발해 보는 맛을 더한다. 한꺼번에 다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3천150명에 이를 정도로 튼튼하게 지었다고 한다. 너무 튼튼해서인지 스릴 넘치는 출렁출렁함은 덜하다. 하지만,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 발아래 펼쳐진 잔잔한 물결을 느끼면 호수가 마음에, 마음이 호수에 잠기는 듯하다.
예당호 오는 길은 예산역에서 800번 마을버스로 20분 남짓. 동행은 길 따라 난 동네 어르신들이다. 얼음 반 물 반이 반짝이는 호수에 같이 버스에 올랐던 할머니 얼굴들이 어린다.
예당호 가는 녹색버스에 할머니가 여섯
셋은 벙거지 모자 셋은 곱슬 파마머리
둘은 알록 장갑 넷은 예쁜 맨 주름
주교리 지나 숯가마골 할머니 한 분 내린다 '안녕히들 가시유, 아프지 말고'
손지2리 내리는 할머니 이번엔 차 안에서 연방 '아프지 말고' '잘 가슈, 아프지 말고~'
손지1리 내리는 보행기 할머니 말 앞뒤를 바꿔 '아프지 말고, 안녕히 가슈'
'아프지 말고, 거참 좋은 소리네유' 마을버스 기사님이 거드신다
남은 두 분은 어디까지 가실까
'아프지 마세요' '안녕히 가세요'
▲ 역사가 흐르는 수덕사, 그리고 추사고택
설악산 신흥사, 오대산 월정사, 속리산 법주사, 가야산 해인사.
명산에 명사찰이다. 예산 수덕사가 있는 곳은 덕숭산이다. 수덕사는 비구니 사찰로 유명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덕숭산은 조금 생소하다. 처음 접하는 덕숭산과 수덕사가 편안하게 맞는다. 수덕사에는 '천년고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백제 위덕왕 때 처음 만들어졌으니 정확하게는 1천400년 역사를 담은 곳이다.
눈 녹은 흙길을 밟으며 찾는 사람이 참 많다. 신도 어르신에 어린아이를 대동한 젊은 부부, 연인들, 산행객들도 산사를 찾아 기도와 함께 숨을 고른다. 기회가 된다면 덕숭산의 차분함을 닮은 곳에 자리한 템플스테이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덕사와는 방향이 다른 신암면 용궁리에는 옛 선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곳이 있다. 추사고택.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 선생의 생가다. 안채와 사랑채로 이뤄진 아담한 한옥에, 바로 옆에 자리한 선생의 묘가 눈길을 끈다. 김정희 선생과 첫째 부인 한산 이 씨, 둘째 부인 예안 이 씨 세 분이 함께 묻힌 합장묘라는 게 이색적이다.
▲ '살아 있네' '없는 게 없네' 예산 5일장
예산은 5일장이 두 곳에서 선다. 5일과 10일에는 예산리에서, 3일과 8일은 예산역 앞에서. 예산리 장은 평소 주차장으로 쓰는 아스팔트 위에 신식 차광막을 치고 마련된다. 현대식이 가미된 장터지만 이곳저곳에서 예스러움을 맛볼 수 있다. 갖은 농산물에, 수산물, 생닭, 과자, 약초, 신발, 옷 등의 공산품. 없는 게 없다. 장터에는 따라나온 어린아이부터, 관광객, 지역 어르신들까지 닷새마다 펼쳐지는 잔치에 푹 빠진다. 햇볕이 힘을 잃는 겨울 오후 4시, 짐을 싸는 가게도 있고, 마지막 피날레를 위해 판매에 열을 올리는 주인도 있고, 끝물 좀 더 싸지 않을까 이곳저곳 발품을 파는 사람도 있고.
장터에서 단연 인기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뻥튀기 코너다. 가스버너 위에 연방 돌아가는 뻥튀기 기계. 4대를 돌리는 데도 땅콩에 가래떡, 쌀, 누룽지 대기 줄이 늘어섰다. 2되쯤 되는 깡통에 담긴 '준비물'을 기계에 넣고 옥수수기름을 한 번 휙 두르고 10여 분. 남편이 손엔 쥔 버튼을 누르니 경고 호루라기 소리가 시장통을 흔든다. 그리고 바로 펑. 새하얀 김과 함께 기계에 들어갔던 쌀은 마법처럼 부피를 키웠다.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남은 깡통은 아직 여럿. 해지고도 한참은 더 기계를 돌려야 자리를 걷을 거 같다.
예산 5일장 또 하나의 명물은 장터 주변에 늘어선 국밥집, 예산이 고향인 '음식의 대가' 백종원 대표의 이름을 따 '백종원 국밥거리'다. 적당히 빨간 국물에 쫄깃한 소머리 고기. '입에 붙는다'는 표현이 맞아떨어지는 그런 맛이다. 60년 전통이라고 하는데, 70년대 17만 명에 달했던 예산 인구, 장터에서 사과 팔고, 고추 팔고, 생선 팔아 든든한 주머니에 막걸리 한 사발 걸치면 흥이 절로. 배부른 저녁을 맞이하는 그 시절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 할머니들이 행복한, 사과향 풍기는 꿈의 예산
하루 만난 예산의 이미지는 할머니들, 어르신들이 행복해하는 그런 모습이다. 예당호 가는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들 '아프지 말고'도 그렇고. 열선이 잘 깔린, 바람을 막아 주는 깔끔한 버스 정류장 안에서 뵌 찬바람 겨울의 온화한 모습의 할머니도 그렇고.
2월 마지막 눈발을 맞은 예산 황토밭 사과나무들은 명물 '황토사과' 잉태를 위한 꿈 꾸기에 들어갔다. 가을에는 황톳빛처럼 빨간 예산 사과를 의무감으로 맛봐야겠다.
예산 삽교읍, 삽다리가 고향이라며 방송에서 숱한 얘기를 했던 가수 조영남 씨. '내 고향 충청도' 흐뭇한 노래 말과 정겨운 음을 머릿속에 뇌이며 예산을 떠난다.
일사 후퇴 때 피난 내려와 살다 정든 곳 두메나 산골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나를 키워준 내 고향 충청도~
[ 구본철 전국부장 / koosfe@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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