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순과 조수진, 두 여성 정치인의 언어는 왜 가부장적인가

백수진 기자 2021. 2. 6.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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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피해호소인' '후궁' 발언이 여성계에 던진 과제

‘조선시대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달 26일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페이스북에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후궁’에 빗대 쓴 글이 파문을 일으켰다. 지난해 총선 당시 고 의원이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등의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후궁’이라는 부적절한 단어를 썼다. 25일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의 성 추문으로 정치권의 낮은 성 인지 감수성 문제가 제기된 지 하루 만의 일이었다.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부른 남인순 의원(왼쪽)과 ‘후궁’ 발언으로 논란이 된 조수진 의원. /조선일보DB

같은 여성 국회의원이지만 조수진 의원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언어는 극명하게 달랐다. 25일 김종철 전 대표의 직위해제 소식이 알려지고 장혜영 의원은 자신이 성추행 피해자임을 밝히며 장문의 입장문을 냈다.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다움’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같은 문장이 소셜미디어에 빠르게 공유되기 시작했다. “입장문을 읽고 눈물이 났다””한 줄 한 줄 곱씹어 읽었다” 등의 응원 댓글이 달렸다.

정의당은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드러내지 않고 ‘성추행’ ‘부적절한 신체 접촉’으로 단어도 통일했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위를 밝히면) 행위 경중을 따지며 ’그 정도로 뭘 그래'라며 개인이 가진 통념에 기반해서 판단해버린다. 이 또한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고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장혜영 의원은 예전부터 민감한 언어 사용을 강조해왔다. 지난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장 의원은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이라는 프로젝트도 주도했다. 무심코 써왔지만 차별이 될 수 있는 말들,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말들을 함께 쓰고 읽는 프로젝트였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황선우 작가는 “단어장의 어휘를 늘리는 일만이 아니라, 차별의 언어가 스며 있지 않나 점검하고 솎아내는 일도 2020년을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필수적인 업데이트”라고 썼다.

언어 습관에는 사람의 인식과 살아온 환경이 드러난다. 조수진 의원은 ‘후궁' 발언 이후에도 “뭐가 문제냐”고 맞서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사과했다. 남성중심 문화에서 쓰는 성차별적 언어를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27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조 의원 발언에 대해 “그동안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 정치인들에 대해 행해왔던 수많은 성희롱적 발언과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남성화된 인식과 관습을 여성 정치인들 또한 답습해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라고 비판 성명을 냈다. 이어서 장혜영 의원의 입장문을 인용하며 “조수진 의원은 (장 의원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일말의 생각조차 하지 않은 듯하다”면서 “여성 정치인 중 다수도 성차별적 구조와 관행에 기여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에서도 여성 정치인의 언어가 논란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불러 논란을 일으켰다. 남 의원은 사건 직후 같은 당 여성 의원들의 단체 대화방에서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피해자는 지난달 입장문을 내고 “남인순 의원님은 ‘피해호소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신조어를 만들어 저의 명예를 훼손시켰고, 더욱 심각한 2차 가해가 벌어지도록 환경을 조성했다”면서 “당신의 자리는 당신의 것이 아니라 ‘여성’과 ‘인권’의 대표성을 지닌 자리”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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