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동행한 우리 부부, 오늘 처음 만났다면 서로를 선택했을까요

2021. 2. 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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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일러스트=안병현

결혼은 여행이 아니고 조난입니다. 부부가 탄 배는 유람선이 아니라 난파선입니다. 너를 믿고 가다가, 너 때문에 죽겠다가, 너를 잡아먹어야 내가 삽니다. 먼 훗날 둘이 함께 어느 해안가에 떠밀려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오직 너밖에 없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파도와 미칠 듯한 갈증과 밤의 불안을 함께한 사람은…. /홍여사

요즘은 늘 집에만 있다 보니, 아내와 대화가 많아집니다. 젊었을 때 같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언성이 높아졌을 겁니다. 그 시절엔 제가 뭘 모르고, 아내의 문제를 다 해결해주려고 했거든요. 뭐 그런 걸 고민이라고 하느냐? 그런 사람은 절교하면 그만이고, 그런 궁금증은 찾아가서 물어보면 된다! 그럼 아내는 한숨을 쉬며 말했지요. 내가 다시는 저이랑 대화 안 한다고 다짐을 하고 또 말을 했네.

그러나 요즘은 다릅니다. 웬만한 건 제가 고개 끄덕이며 듣기만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들의 ‘청춘사업’인 모양입니다. 몇 달 전, 아내가 흥분해서 말했죠. 아들이 여자친구를 하나 소개받은 모양인데 잘돼 가는 눈치라고요. 마스크 벗으면 서로 맘 변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했더니, 아내는 눈을 흘기며 초 치지 말라고 했었죠.

그런데 오늘 들어보니, 그 일이 결국 잘 안 된 모양입니다. 자세한 내용도 모르면서 아내는 아까워 죽습니다. 마흔 살 넘긴 딸아이는 이왕 늦은 거 멀리 보고 가기로 하고, 그 밑의 아들이라도 아홉 수 걸리기 전에 짝을 지어주고 싶었다고 말입니다. 코로나 겪어보니 인간은 짝이 있어야 하는 존재더라고, 젊었을 땐 괜찮지만 늙어서는 한 공간에서 숨 쉬고 소리 내고 같이 먹을 짝이 꼭 필요하더라고. 우리 애들은 어쩌면 좋으냐고…. 그러더니 아내는 괜히 잠자코 있는 저에게 짜증을 냅니다. 무슨 말이든 좀 해보라고요. 그래서 솔직한 제 생각을 꺼내놓았죠.

“우리 애들은 결혼과가 아니야. 공부과가 아니면 머리 싸매고 공부해봤자 얻는 거 없듯이, 결혼과가 아니면 억지로 짝을 지어 봤자야.”

“공부랑 결혼이랑 같아요? 누구나 하는 결혼, 우리 애들이 뭐가 부족해서.”

“누구나 결혼하던 시대는 갔고, 난 섣불리 결혼들 하지 말라 주의야. 요즘 세대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는 근본적으로 안 맞아. 결혼이라는 건 말이야….”

어느새 열변을 토하는 나 자신을 깨닫고 저는 말을 멈추었습니다. 43년을 한 남자의 아내로 살며 아이 둘을 키워내고 며느리 역할까지 훌륭히 마친 여자에게 결혼이 뭔지 가르치려 들다니….

아내도 물론 알 겁니다. 결혼을 잘하는 것보다 결혼을 잘 지켜가는 게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사랑이나 매력은 얼마 못 가 힘을 잃습니다. 조건이 좋으면 한결 수월하겠지만, 그것도 전부는 아닙니다. 흔히들 ‘신뢰’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 경우엔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제일 컸습니다. 저는 시부모 모시고 사는 아내의 고생이 항상 미안했습니다. 때론 넌더리가 났을 텐데, 싫은 내색 한번 없는 아내가 고마웠지요. 인생의 큰 빚을 진 기분이라고 했더니, 어느 날 아내는 웃으며 말하더군요. 결혼 허락받으러 처가에 인사 간 그날을 기억하느냐고요. 그때 친정집 형편이 너무 안 좋아서 차마 보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넙죽 절하고, 밥 뚝딱 먹고, 아들 삼아 달라 간청하는 당신을 존경하게 됐다고요. 사랑은 식어도 존경은 남겠구나 싶어, 나도 존경스러운 아내가 돼보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오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아마 아내도 알 겁니다. 우리 애들은 그런 고된 삶을 견뎌낼 애들이 아니라는 것을. 나쁜 아이들이어서가 아닙니다. 아쉬울 게 없는 세대라서 그렇지요. 자식들의 결혼 문제가 제일 고민이었던 지난 몇 년간 제가 느낀 바는 이런 겁니다. 이 아이들은 인생에서 손해를 봐가면서까지 이루려는 그 무엇이 없습니다. 몸의 고생을 겁내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혐오하고, 불확실한 것에 자기를 던질 패기가 없습니다. 게다가 눈이 무척 높습니다. 하긴 미남 미녀가 사방에 널린 세상이고, 영화나 드라마에 낭만적인 연애담이 넘치는 판에 평범한 사람과 천천히 정을 들이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래저래 짝을 찾기도 어렵고 어렵게 찾은 짝과 오래 잘 지내기도 어려운 것이 그 세대 전체의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걸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함부로 결혼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지요. 늙으면 부부밖에 없더라는 말도 반만 맞는 말입니다. 아내와 제가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는 까닭은 43년 묵은 부부여서가 아닙니다. 서로에게 빚진 게 너무 많고, 투자한 것도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에 ‘셀프’란 없었습니다. 네 살이 내 살이고, 내 돈이 전부 네 돈인 만큼, 네 부모·형제가 곧 내 부모·형제였지요. 우린 그야말로 ‘결혼과’였습니다. 아내와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 세대 전체가 어느 정도는 다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와는 다른 요즘 아이들에게 우리처럼 안 산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섣불리 흉내 내다 피차 상처만 입지 않을까를 걱정해야지요.

“당신은 꽤나 신식이고 깨어 있다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네요.”

아내는 제 속마음을 다 읽은 듯 한마디 합니다.

“당신 말로 요즘 애들은 우리랑 다르다면서. 그럼 그 애들만의 셀프 사랑법이 있겠지. 덜 나누고, 덜 보여주고, 쿨하게, 평생을 함께 벗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는 우리만큼 보람 있는 참행복은 못 느끼지.”

“당신은 정말 행복했어요? 평생 소처럼 일해서 부모님, 자식, 가난한 처가까지 책임지며?”

생각지 못한 아내의 질문에 나는 질문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당신은 불행했나?”

“난 2020년대에 당신을 만나, 요즘 식으로 한번 살아보고 싶네. 우리만 생각하며.”

알 듯 말 듯한 아내의 말은 귀로 들어와 가슴으로 번졌습니다. 한 번도 우리만 생각하며 살아보지 못한 우리. 그럼에도 나는 행복했다 말하지만, 아내는 그 행복이 참 힘겨웠다 말합니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2021년에 만났더라면 우리의 선택은 어땠을까요? 보잘것없는 나를 아내가 선택하긴 했을까요?

“시부모 모시는 장남 싫다 했을걸?”

“없는 집 딸 부담스럽다 했을걸?”

우린 소리 내어 웃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뒤늦게 찾아온 둘만의 시간. 적어도 오늘은 행복합니다. 곁에 아내가 있어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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