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만남 사라졌는데 결혼정보업체는 호황 누린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 결혼정보업체에서 상담원으로 근무하는 A씨는 작년 말부터 한 달에 단 하루밖에 쉬지 못했다. 주말에도 가입을 문의하는 전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엔 과거 이 업체에 회원으로 가입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화를 돌리고 있다. “과거 회원이었다가 기한이 만료된 사람 가운데 다시 가입을 하거나 고려하는 사람이 꽤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거리 두기로 ‘만남’이 사라진 요즘, 뜻밖에 잘나가는 곳이 있다. 바로 ‘결혼정보업체’다. 외출과 모임을 꺼리는 분위기지만 예기치 않은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린 업체도 있다.
◇모임·소개팅 차단되자 결혼정보업체로?
‘반전'이 일어난 건 작년 하반기부터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코로나 발생 직후엔 모든 만남이 차단되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하반기 들어서며 가입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경우 작년 한 해 매출액이 3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웨딩 사업 등을 제외하고, ‘결혼중개업’만 고려하면 매출액은 사상 최고치다. 새로 가입하는 회원 수는 코로나가 처음 터진 작년 1분기(1~3월)는 전년보다 28% 급감했고, 2분기에 6% 줄었지만 3분기에는 25%가 늘고, 4분기(20%)와 올해 1월(11%)까지도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 역시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보다 17% 증가했고, 결혼정보업체 ‘가연’은 작년 4분기에 걸려오는 상담 전화와 가입자 수가 전년보다 각각 14%, 19% 증가했다고 밝혔다. 온라인 업체도 비슷하다. 소개팅앱 ‘스카이피플’은 작년 상반기 매출이 20% 정도 떨어졌지만, 하반기에 30%가 늘어 손해를 만회했다. 최호승 스카이피플 대표는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만나는 모임보다는 일대일 만남을 선호하는 추세다 보니 나름 선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식 간소화도 한몫
이런 현상은 역설적으로 코로나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구나 직장 동료 등을 통해 소개받는 경우가 줄고, 각종 동아리·동호회 모임도 사라지니 그 자리를 결혼정보업체가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성동구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김모(40)씨는 작년 9월 처음으로 결혼정보업체 S사에 가입했다. 코로나 발생 이전에는 동료 강사를 통해 소개받거나 주말 조깅 동호회에서 남성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코로나로 학원 휴업과 재오픈이 반복되고 조깅 동호회도 사실상 폐쇄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김씨는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못 만나는 상황이라 스스로 가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최모(29)씨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와 자존심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이런 곳(결혼정보업체)을 이용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가입한다고 당장 뭔가 이뤄지진 않겠지만 이마저도 안 하면 완전히 기회가 끊기겠다는 생각에 지난달 가입했다”고 말했다. 용인의 한 대기업 물류회사에서 일하는 고모(31)씨도 “코로나 이전만 해도 한 달에 두세 건 소개팅이 들어왔는데, 작년에는 거의 건수가 없어 생애 처음 (결혼정보업체) 문을 두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교회나 성당 등 종교시설이 사실상 문을 닫은 것도 영향을 줬다. 종교단체의 청년 모임은 결혼적령기에 있는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가치관이나 삶의 패턴이 비슷해 교제와 결혼으로 이어질 확률도 높다. 하지만 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라 그 기회가 크게 줄었다.
이 밖에 코로나 시대 가족의 가치가 높아진 점, 방역 지침으로 결혼식이 간소해진 점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있다. 이웅진 선우 대표는 “결혼식 비용이 은근히 스트레스인데, 코로나로 인해 하객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오히려 이때 결혼하자는 심리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40대 남성·50대 여성 증가 눈에 띄어
결혼정보업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여성이 남성보다 많다. 선우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가입자 수가 전년보다 17% 늘어나는 동안 여성 가입자 수는 24% 증가했다. 성별·연령대별로 보면 50대 여성의 증가 폭이 35%로 두드러진다. 재혼 전문업체 비에나래의 집계에서도 50대 여성 회원 비율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38%와 39%였는데, 지난해 45%로 증가했다. 손동규 비에나래 대표는 “50대 여성들이 다른 연령대보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정서적 불안의 정도가 좀 더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면 남성은 40대 증가 폭이 25%로 가장 크다. 이웅진 대표는 “40대 남성은 결혼을 미뤄온 싱글족이 많은데, 코로나를 계기로 가정을 꾸리겠다고 마음을 먹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결혼 상대에 대한 선호 조건도 변화하고 있다. 공무원이나 전문직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은 갈수록 커지고, 외모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졌다. 증권사 직원 최모씨는 “내 키가 170cm가 넘기 때문에 남자가 나보다 커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좀 작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대신 직업을 더 고려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모(31)씨도 “상대 여성의 스타일을 최우선으로 봤는데, 이제는 직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컴퓨터 기술직의 인기가 높다. 가연의 정수임 대리는 “요식업과 같은 자영업은 수입이 높아도 예년보다 인기가 떨어진 반면, 비대면 영향을 받지 않는 IT 관련 직업을 가진 남성을 찾는 여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이 결혼으로 직결될지는 불투명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혼인 건수는 19만1300여 건으로 혼인 통계를 집계한 1981년 이후 사상 최저치다. 서울 강남에서 30년째 결혼정보업체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결혼에 대한 기대나 이성에 대한 눈높이가 크게 변하지 않으면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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