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규의 國運風水] 소가 사람을 내쫓는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2021. 2. 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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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명당에 들어서는 축사
전북 순창군의 한 마을, 늙은 쥐 머리를 닮은 자리에 묘지 대신 소 축사가 들어서고 있다. /김두규 교수

1년 전 이맘때쯤 롯데 신격호 회장이 작고했다.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유지에 따라 경남 울주군 선산 한쪽에 장지가 마련되었다. 장지 조성 과정에 울주군청 주무관이 나와 묘역 규모(5x6m)와 봉분 높이(50cm)를 직접 줄자로 재면서 ‘감시’하고 있었다. 전통 봉분보다 초라한 무덤이 만들어졌다. 현행 묘지법상 어쩔 수 없단다. 현장을 참관하던 필자는 그때 국립현충원에 있는 대통령 묘역들이 떠올랐다. 대통령 무덤의 규모나 봉분 높이는 왕릉에 버금간다.

김열규 교수는 우리 전통 봉분을 “꽃받침에 받쳐진 꽃망울로 온 세계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무덤은 없다”고 극찬했다. 그래서 그는 ‘꽃무덤'이라 불렀다. 역사학자 윤명철(동국대) 명예교수는 2가지 관점에서 말한다. “우리나라 무덤이 둥근 모양을 하는 것은 봉분과 뒷동산 둥근 봉우리가 어울리게 하고자 하는, 즉 산천과의 조화라는 미학적 표현이다. 둘째, 의미론적 관점에서 부분(무덤)과 전체(산하)는 하나라는 유기체적 관념이다. 사람이 죽으면 산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전통 무덤이다.” 필자 역시 깔끔하게 벌초한 봉분들을 볼 때마다, 사람이 죽으면 산천의 꽃으로 환생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전통 무덤은 더이상 현행 묘지법상 쓸 수 없다. 도로와 하천에서 200m, 20호 이상 민가와는 300m 떨어져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묘지법을 따르자면, 전국의 많은 무덤이 ‘철거’돼야 한다. 더 이상 ‘꽃무덤'도 아니고, 죽어서 꽃으로 환생하는 것도 아니다.

고추장 명산지인 전북 순창에 필자가 주소를 둔 것은 한때 청정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또 출퇴근하면서 보이는 무덤마다 서려 있는 사연과 ‘터 잡기 미학’을 읽어내는 것이 하루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논두렁 명당,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오는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 뱀이 개구리를 쫓는 장사추와형(長蛇趨蛙形) 등 숱한 이야깃거리가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청정 지역도 명당의 고장도 아니다. 곳곳에 들어서는 대형 축사들 때문이다. 일부 귀촌·귀향인이 축사 악취 때문에 정착을 포기한다. ‘한국판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이다. ‘인클로저 운동’이란 16세기 영국 영주들이 농사 대신 양을 키우려고 농민들을 토지에서 강제로 몰아낸 사건이다. ‘양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말이 생겼다. 삼천리 비단 수놓은 금수강산(錦繡江山) 아닌 소·돼지 우글거리는 금수강산(禽獸江山)이다. 소·돼지가 사람을 내쫓는다.

지자체가 무덤 조성에 대해서는 야박하나, 축사 신축 허가는 인심이 후하다. 필자가 사는 이웃 마을 이야기다. 마을 입구에 노서하전형의 무덤이 있다. ‘늙은 쥐[老鼠]가 먹이를 찾아 밭으로 내려오는[下田] 모습과 같다’ 하여 노서하전형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들판에서 쥐가 노출되면 독수리 먹이가 될까 봐 주변에 소나무를 심어 쥐를 은폐케 하였다. 전통 조경과 풍수가 만나는 현장이다. 등록 문화재는 아니나 우리 조상들의 땅에 대한 심미 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재’로 충분했다. 그런데 그곳에 축사가 들어섰다.

최명희 선생의 소설 한 대목이 떠오른다. 무지한 민촌 사람들이 적송이 어우러진 명당에다가 소들을 매어 놓아 똥칠하는 장면을 본 청암부인의 탄식이다. “눈이 밝아야 세상이 바로 보이는데, 눈구녁 자리에 소똥을 범벅해 놓고 짐승이 짓이기게 해 놓는다면 그 인생이 걸어가는 앞길이 오죽할까?”(‘혼불’). 내 고향 순창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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