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밤새 소복 쌓인 눈이 고요함을 들려주네요

채민기 기자 2021. 2. 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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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들려주는 10가지 소리

캐시 캠퍼 글|케나드 박 그림|홍연미 옮김|길벗어린이|40쪽|1만3000원

퇴근길 폭설로 수도권이 마비됐던 얼마 전 그 밤에도 놀이터엔 눈을 맞으러 몰려나온 아이들이 있었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든 것이 멈춰 버린 풍경 속에서도 누군가 온몸으로 눈을 감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안도했다. 차갑고 희면서 뽀드득거리는 눈은 공감각적 자연 현상이다.

미국의 그림책·동화 작가인 저자는 그중에서도 청각을 자극하는 눈의 속성에 주목한다. 밤새 내린 눈이 소복하게 온 마을을 뒤덮은 아침, 주인공 리나가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할머니 댁까지 걸어가는 동안 듣는 여러 가지 소리가 곧 이 책 줄거리이자 메시지다. 눈 밟는 소리, 눈 치우는 넉가래 소리, 장갑 낀 손으로 눈사람 머리를 두드리는 소리…. 눈이 모든 것을 덮어 버린 뒤에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가 있다.

리나가 발견한 눈의 소리는 모두 아홉 가지. 할머니는 마지막 열째 소리를 리나에게 일깨워 준다. 할머니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간밤에 눈이 내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날 아침엔 온 세상이 조용했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건 눈이 내린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눈이 들려주는 열째 소리는 완벽한 고요함이다.

/길벗어린이

할머니와 손녀는 창가에 나란히 서서 눈 내린 오후의 잠잠한 풍경에 귀를 기울인다. 말 없는 공감(共感) 장면. 눈 내린 날 특유의 시리면서도 포근한 공기가 전해져 온다. 주의를 기울여야 비로소 느껴지는 사소한 것들이 삶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이 책은 생활에 지쳐 감각이 무뎌져 버린 어른들에게도 눈 소식에 설레던 시절로 잠시나마 돌아갈 여유를 준다. 유난히 눈이 잦은 이번 겨울에 어울리는 책이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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