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은 거품, 러는 공황상태.. 美 발 뺀 亞 맹주는 일본 될 것"

양지호 기자 2021. 2. 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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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무부 출신 지정학 전문가, 미국이 국제 정치무대서 발 빼면 벌어질 냉혹한 시나리오 제시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피터 자이한 지음|홍지수 옮김|김앤김북스|496쪽|1만9000원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갈등 양상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피터 자이한이 펴낸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은 향후 세계 질서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 전략을 구상하도록 돕는다. 그는 미국 국무부에서 일했고 이후 미국 전략 싱크탱크 스트랫포(Stratfor)에서 분석 담당 부사장으로 일했던 지정학 전략가다. 2019년 국내 번역 출간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2017)로 21세기 지정학의 교과서를 썼다는 평을 받은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자이한은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세계 각국에 일종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뇌물이라는 표현 때문에 자칫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냉전 시기 미국이 동맹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제공한 안보와 자유 무역 시장이 바로 뇌물이었다는 관점이다. 이는 냉전 이후에는 중국과 러시아 같은 비동맹국에도 제공됐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미국이 이런 세계 경영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다. 냉전은 끝났고, 국익에 앞서 세계 질서를 지키기 위한 비용 지출을 우선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 군 규모를 축소하며 군인을 절반 이상 줄였고, 해군 함정도 냉전 시기 550척에서 300척으로 줄였다. 현재 해외 주둔 미군 병력 수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적다. “동맹국들은 동맹 체제의 꿀만 빨아왔다. 한국은 일본과 치고받았다. 미국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을 느꼈다.” 그는 조지 H.W. 부시 이후 ‘세계의 경찰’로서 미국 역할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바이든 당선 전 나온 책이지만 큰 틀에서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미국의 ‘희생’이 앞으로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주장. 저자는 그 결과 세계 각국이 각자도생에 빠지는 냉혹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지난달 19일 밤 일본 도쿄도청 건물. 지정학 전문가인 저자는 미국이 발을 뺀 아시아의 맹주는 일본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그는“한국은 고령화와 경제구조문제의 해결법은 싫더라도 일본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썼다. /EPA 연합뉴스

미국이 없는 세계에서 각국이 받아들 성적표는 어떨까. 지정학 전문가답게 그는 지정학적 특징과 인구구조 등을 결부해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등 국가별 분석을 진행한다. 핵심은 지정학적 안보와 인구구조. 바게트 빵처럼 겉은 바삭하고(바다·산맥으로 국경이 확실해 외세 침입 위험이 낮고), 속은 촉촉한(비옥한 평야 지대를 갖추고 원자재가 풍족한) 나라가 경쟁력이 있다. 인구구조를 따져 고령화를 늦출 수 있는 국가를 높게 평가했다. “중국은 과대평가됐다. 아시아의 우두머리는 일본이 될 것이다. 러시아는 공황 상태다. 독일은 한물갔다.”

이 책에서 저자가 중국의 저력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인도와의 국경 분쟁이 지속되고 있고, 티베트, 신장·위구르와 홍콩 등에서 내부 분열 가능성도 남아 있다. 더구나 ‘한 자녀 정책’의 여파로 한국⋅일본에 이어 중국에서도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저자는 현재 중국 관료들이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고속 성장만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에 막상 경제 둔화가 시작되면 대응책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깎아내린다. “중국이 미래에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생각은 유토피아적 환상에 불과하다. 중국은 자국의 (미국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거나 대체할 힘이 없다.”

아시아의 ‘맹주’로 일본을 꼽고 있는 점은 한국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는, 그러나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일본 해군력과 공군력이 중국을 압도하기 때문에 중국은 일본과 일대일 싸움에서도 승기를 잡기 힘들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그는 “미국이 일본 평화 헌법 재해석을 촉구하면서 비공식적으로 일본을 미국을 대신할 지역 맹주로 낙점했다”고 썼다.

자이한은 “한국은 미국이 손을 떼고, 중국이 붕괴냐 후퇴냐의 기로에 서게 되면 다시 부상하는 일본과 경제적으로 융합하는 길을 모색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는 국내판에 붙인 서문에서 거듭 말한다. “고령화에 대처할 모델을 제공해주고, 한국의 구조적 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해외시장에 한국이 계속 접근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일본이다.”

미래 전망을 예측할 때 모호한 표현으로 ‘틀리지 않겠다’에 무게를 싣는 여느 책들과는 다르다. 지적 엄밀함보다는 노선의 선명함을 택했다. 학문적 깊이는 다소 아쉽지만 대신 대중성에 주력했다. 책의 논지가 친미·친일적 입장에 경도돼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렇기에 저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쓴소리가 담겼다.

원제는 Disunited Nations. 국제연합(United Nations)으로 상징되는 풍요의 시대가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담긴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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