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앱 '별점 1개'에.. 업주는 3일간 울었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찜닭집을 운영하는 김두환(41)씨는 매일 오후 2시 가게 문 앞에 ‘브레이크 타임(쉬는 시간)’ 팻말을 걸고 노트북을 켠다. 원래는 오후 5시에 재개하는 ‘저녁 영업’을 준비했지만, 요즘은 배달앱에 올라온 고객 후기에 댓글을 다느라 시간을 보낸다. 김씨는 “손님들이 안 좋은 후기부터 읽고 가게 이미지를 판단하기 때문에 나쁜 후기가 있으면 무조건 사과를 하고 하나하나 세세하게 설명을 달고 있다”고 했다. 별점 때문에 손해도 감수한다. 김씨는 “최근에 눈이 많이 와 배달 예상 시간을 70분으로 올렸는데 한 손님이 72분이 걸렸다며 환불을 요구했다”며 “음식값과 배달료까지 3만원 넘게 손해였지만 1점짜리 후기가 달릴까 걱정돼 환불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인근 대학가에서 진미식당을 운영하는 방영준(61)씨는 “배달이나 후기 신경 쓸 필요가 없던 예전이 그립다”고 했다. 방씨는 “저녁 5~6시쯤 별점 1~2개짜리 안 좋은 리뷰가 하나 달리면 그날 배달 주문은 절반 이상 줄어든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배달앱으로 포장 주문한 손님이 찾아왔는데 마침 방씨는 가게에서 커피를 한 잔 하려고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나중에 ‘포장하는데 사장님이 마스크도 안 쓰고 있더라’는 2점짜리 후기가 달렸다. 방씨는 “그날 주문이 딱 끊겨 결국 오후 9시 30분 마감인데 7시에 일찍 닫았다”고 했다.
코로나 여파로 ‘배달’만이 살길이 된 자영업자들이 앱 후기·별점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가 소비자 평판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소상공인에게 대출을 해주겠다는 ‘플랫폼 금융’ 활성화 계획까지 내놓으면서 자영업자들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가뜩이나 배달앱 별점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판인데, 이젠 대출까지 별점에 좌지우지될 판”이라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요리와 서비스라는 본업(本業)보다 ‘높은 별점과 좋은 후기’에 생존을 걸고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덮밥집의 강모(23) 매니저와 직원 2명은 틈날 때마다 배달앱에 접속해 고객 후기를 확인하는 게 주요 업무다. 강씨는 “답글 전담 알바생이 하루 1시간을 꼬박 들여 답글을 달고, 나와 다른 알바생은 이 답글과 고객 후기를 수시로 확인한다”고 했다. 작년 10월부터 4개월간 고객들이 남긴 후기 1390개에, 이 가게도 1390개의 답글을 달았다. 간혹 들어온 ‘별점 1개’ 후기엔 안쓰러울 정도의 저자세로 대응한다. “OO님, 식사하시는 데 불편 드려 우선 너무나 죄송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고객님 식사에 불편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시면 원하시는 대로 처리 도와드리겠습니다. 주문해주신 부분은 너무 감사드립니다.”
자영업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가게의 이미지와 매출에 큰 타격을 주는 ‘별점 1개’다. 지난달 28일 회원 수 65만의 한 자영업자 인터넷 카페에 “배달의 민족 별 1개 후기를 처음 받고 3일을 울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공깃밥 1개를 배달에서 빠뜨려 별점 1개를 받았는데, ‘삭제해주실 수 있느냐’고 문자를 드렸지만 거절당했다”고 썼다.
사실상 ‘별점 노예’가 된 자영업자들의 애잔한 노력에 공감하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지난달 25일 한 온라인 포털에는 “별점 1개를 준 남자 친구와 헤어지려고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함께 족발을 시켜먹은 남자 친구가 ‘제 마음은 별 6개입니다’라는 장난스러운 댓글과 함께 별점 1개를 주는 모습을 보고 싸웠다는 내용이다. 이 글은 5일 현재 조회 수 46만건에, 1000건 가까운 댓글이 달린 상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 “남의 밥줄을 끊는 건 아니지 않으냐, 헤어져라” 등 찬성 댓글이 많았다.
자영업자들이 필사적으로 ‘좋은 후기’에 매달리다 보니 고객이 위협을 느끼는 상황도 발생한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주부 김모(55)씨는 작년 7월 족발을 시킨 뒤, 사진과 함께 ‘겉이 마르고 고기 색이 거무튀튀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이틀 뒤 족발집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 때문에 힘든데 이런 후기를 올리면 어떻게 하느냐, 전액 환불해줄 테니 후기를 삭제해달라”는 것이었다. 김씨는 “집에서 가까운 가게인 데다, 사장이 내 전화번호도 알고 있다 보니 찜찜해서 그간 앱에 남긴 후기를 다 삭제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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