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노인 접종에 신중해야"
정부가 이달 중 접종 계획을 밝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맞히는 것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 결정이 나왔다. 18세 이상은 접종을 허용하되, 65세 이상은 “접종 효과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계획상 이달 중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대상 75만명 가운데 요양병원 입원자 등 고령층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들이 백신을 맞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민관 전문가 25명으로 구성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약심위)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5일 밝혔다. 이는 지난 1일 “65세 이상 접종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 다수 의견”이라는 1차 전문가 자문단 결론과 다른 내용이다. 최근 유럽 각국이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임상 시험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고령자 접종 제한’ 또는 ‘접종 불가’ 결정을 잇따라 내리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약심위는 특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고령자에게 실제로 맞힐지 말지에 대한 최종 결정은 “질병관리청이 논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재 상태에서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향후 예방접종을 실시하기 직전에 열리는 질병청 예방접종전문위원회가 결정하도록 공을 넘긴 것이다. 약심위에는 식약처 공무원 등이 포함돼 있어, 곧 나올 식약처의 최종 결정도 이날 결정과 비슷할 전망이다. 식약처의 이런 입장에 따라 질병청도 고령자에 대한 백신 접종을 선뜻 결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첫 접종 시기는 이달 하순이 돼야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SK 공장에서 생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2월 마지막 주에 순차적으로 도입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 백신 접종은 이달 말 또는 3월 초가 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정세균 국무총리는 “2월 초·중순 접종을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약심위는 이날 백신 부작용에 대해선 “허용할 만한 수준”이라고 했다. 다만 임신부에 대해선 “임신 기간 중 접종은 권장하지 않는다”고 권고했다.
아스트라 , 고령자 맞히자니 효과 걱정... 안맞히자니 접종일정 줄연기
방역 당국이 국내 코로나 백신 접종 계획을 수립하면서 세운 가장 큰 목표는 ‘치명률 감소’다. 고령자·중증 환자는 코로나에 감염될 경우 위중한 상태로 빠지거나 사망 위험이 크기 때문에 치명률 감소를 위해 백신 접종을 서두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침은 정부가 밝힌 백신 접종 계획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최우선 접종 대상자인 요양병원 입원자 등에게 의료진이 방문해 상온 보관·유통이 가능한 아스트라제네카를 접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치명률 감소라는 접종 목표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2월 접종 예정인 81만명분 백신 물량 가운데 화이자 6만명(7%)분을 제외한 나머지 75만명분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다. 이 백신은 65세 이상이 접종해도 안전하고 예방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임상 시험 자료가 부족해 유럽 각국에서 고령자 접종을 놓고 큰 논란이 벌어진 상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약심위)가 5일 고령자 접종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3월에야 미국 임상 자료 나와
식약처 약심위는 이날 아스트라제네카 65세 이상 접종 여부에 대해 ‘신중 검토’ 권고를 내리면서 “미국 임상 결과에 대한 분석 자료를 제출하라”고 권고했다. 오일환 약심위원장(가톨릭대 의대 교수)은 “65세 이상에 대한 효용성(예방 효과)에 대한 검증이 아직 안 됐다”며 “추가 임상 자료를 통해 고령층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그때는 ‘신중 사용’ 조건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약심위는 지난 4일 회의 후 결론을 당일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령자에 대한 안전성·예방 효과 문제 때문에 회의가 길어져 하루 뒤 결과를 발표했다. 그마저도 65세 이상 접종 여부는 사실상 질병청으로 공을 넘겼다.
이는 아스트라제네카의 65세 이상 임상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안전성 임상은 총 2만3745명 중 65세 이상은 2109명(8.9%)이고, 예방 효과 부분은 8895명 중 65세 이상이 660명(7.4%)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심사를 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아스트라제네카 승인을 미루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에서 3상 임상을 진행 중이다. 이르면 3월 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조기 접종' 對 ‘안전성’
정부는 2월 넷째 주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건네받을 예정이다. 이때까지 고령자에 대한 이 백신의 안전성·예방 효과 논란이 끝나지 않을 경우 정부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백신 물량 확보를 늦췄다가 뒤늦게 확보전에 뛰어든 것에 대해 “처음 나오는 코로나 백신이 안전한지 따져봐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이런 상황에서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아스트라제네카를 고령자에게 접종하면 정부가 말을 바꾸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백신 조기 접종을 포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영국(27건)·남아공(7건)·브라질(5건)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가 속출하고 지역 감염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감염 확산을 막으려면 백신 접종을 서둘러야 하는 것이다. 정부로선 진퇴양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의료계에선 ‘치명률 감소’ 대신 ‘감염 차단’으로 백신 접종 목표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소방관 등 65세 미만 사회 필수 인력을 중심으로 아스트라제네카 접종을 시작하면서, 고령자에 대한 미국 임상 결과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 역시 접종자 명단·백신 접종 동의 여부 파악 등에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접종 시기가 밀린다는 단점이 있다.
◇각국·전문가들도 엇갈린 의견
해외 각국 상황도 각각 다르다. 스위스는 아스트라제네카 사용 승인을 아예 내주지 않았다. 독일·프랑스 등은 65세 미만 접종, 폴란드는 60세 미만 접종, 벨기에는 55세 미만 접종 등으로 제한했다. 다만 인도·멕시코·아르헨티나 등은 65세 이상도 접종한다.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김우주 고려대 교수는 “만 65세 이상 고령층 660명에 대한 평가만으로는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최재욱 고려대 교수도 “아스트라제네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미국 임상 자료까지 기다리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정재훈 가천대 교수는 “변이발 4차 유행 가능성이 있고, 가능한 한 빨리 집단면역을 달성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령층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며 “다른 국가들은 아스트라제네카 외 다른 백신이란 대안이 있지만, 우리는 달리 대안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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