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만가구 어디 짓는지 모르는 깜깜이 대책

진중언 기자 2021. 2. 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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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공급대책, 실효성 논란

정부가 4일 발표한 공공 주도 대도시 주택 공급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파트 위주의 대규모 물량 공급이라는 취지는 공감하면서도 ‘디테일 부족’과 ‘현실성 결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부동산 시장 곳곳에서 나온다. ‘서울 32만, 전국 83만가구 공급’이 과연 가능하냐는 것이다. 5일 한 민간 연구소 부동산 전문가는 “단 한 곳의 개발 후보지나 예비 사업지를 발표하지 않은 채 그저 서울에 32만 가구를 짓겠다니 ‘판타지 소설’과 다를 게 없다”고 했다.

◇구체적 내용 없는 ‘깜깜이 대책’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 때 구체적인 개발 대상지를 공개하지도 않은 채 “2월 4일 이후 이 지역들에서 부동산을 사면 나중에 새집에 들어가 살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시장에선 “사업지가 어딘지 알려주지도 않고서 무조건 집을 사지도 팔지도 말라는 거냐”는 불만과 함께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비판까지 불거지고 있다.

서울역 쪽방촌 개발부지 살펴보는 변창흠 장관 -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5일 서울 용산구 KDB생명타워에서 쪽방촌 부지를 바라보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용산구는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 일대(4만7000㎡)를 개발해 공공주택과 민간 분양아파트 등 2410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사진공동취재단

‘2·4 공급 대책' 발표 후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도대체 어디에 집을 짓겠다는 거냐?” “숫자만 있고, 대상지가 없는 깜깜이 대책”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정부는 “주변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세부 개발 지역을 밝히지 않았다. 15~20곳의 신규 공공택지 조성에 대해서도 “지자체와 협의해 상반기 중 2~3차례에 걸쳐 발표하겠다”고만 했다.

사업지 정보가 없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서울에 222곳 개발 후보지가 있고, 설 연휴가 끝나면 주민·업체 대상으로 온라인 사업 설명회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당장 서울에 집을 사야 하는 사람은 어디가 될지 모르는 222곳을 피하는 ‘지뢰 찾기’ 게임을 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장한평역금융센터 지점장은 “지난해 아파트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빌라·다세대 같은 저렴한 주택을 찾는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 있고 주택 거래가 비정상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 반응 냉랭…. 정부는 “문의 많아”

정부는 서울에서 공공기관이 직접 시행하는 재건축·재개발로 9만3000가구, 역세권·저층 주거지 등을 고밀 개발해 11만7000가구를 공급한다고 했다. 하지만 재건축 아파트 주민이나 재개발 지역, 빌라촌의 수많은 토지·주택 소유자의 동의가 없으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수치다.

정부 역시 “재건축 등 주민 동의 확보가 관건”이라고 했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서울 서초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 조합장은 “정부가 재건축 부담금 면제를 내걸었지만, 공공기관에 사업권을 모두 넘기는 조건에 찬성할 주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장 반응과 달리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은 5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일선 조합의 문의가 국토부로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정부는 지방 5대 광역시에 총 22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에 각각 몇 가구가 공급되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수도권 중심 공급책을 마련하다가 전체 규모를 늘리기 위해서 광역시를 구색 맞추기로 끼워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공급 대책을 내놓은 날 “수도권 아파트값이 일주일 새 0.33% 올라 2주 연속 사상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는 한국부동산원 발표도 나왔다. 정부가 대대적인 공급 방안을 예고한 상황에서도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은 것이다. 다주택자 매물을 시장에 끌어내 단기에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양도세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많았지만, 결국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4일 KBS에 출연해 “양도세만 완화하면 실수요자 중심으로 시장을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약해졌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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