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이 말뿐인 주택 공급 확대책.."상상임신·공갈빵"

황정일 2021. 2. 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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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공급 확대' 노무현 정권 닮은꼴
실제 집 지을 택지 제시 못한 채
'83만 가구 공급'에 비판 쏟아져
민간 부문 묶어 시장 혼란 초래
개발 예정지 투기 극성 우려도

2·4 부동산 대책 실효성 논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왼쪽)이 5일 서울 KDB생명타워에서 서울역 인근 쪽방촌 일대를 바라보고 있다. 국토부는 이곳에 최고 40층짜리 대규모 공공임대단지를 건설한다. [뉴스1]
2007년 1월, 집권 5년차를 맞은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연설에서 “(집값을) 단번에 잡지 못해서,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2003년 집권 하자마자 부동산과의 전쟁을 시작했지만, 정작 집값을 잡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사과 직전엔 대규모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놨다. 정권이 1년 남았는데, 2010년까지 무려 164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장에선 실효성 논란과 현실성 논란이 뒤따랐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2021년 1월, 집권 5년차인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집권 초인 2015년부터 24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면서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집값을 잡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그리고 지난 4일, 임기가 1년 남았는데 2025년까지 서울·수도권 61만6000가구 등 총 83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한 주택 수요자는 인터넷에 “2·4 대책은 한마디로 ‘상상임신’”이라고 혹평했다.

문재인 정부가 2·4 대책으로 노무현 정부 부동산 대책의 데칼코마니를 완성했다. 순서는 조금씩 바뀌었을지언정 집권 초기부터 쏟아낸 각종 규제책 하나하나부터, 규제 일변도에서 정권 말기 불확실성이 큰 대규모 공급 대책까지 완벽하게 일치한다. 2·4 대책이 ‘노무현 따라 하기’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셈이다.

두 정부는 집권 초기 수요 억제에만 주력했다. 시장에선 공급을 늘리라고 주문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러나 도무지 집값이 잡히지 않자 정권 말기에 가서야 신경질적으로 대규모 공급 대책을 내놓는다. 문 정부는 2018년부터 신혼희망타운 공공택지를 확보하더니 그해 9·21 대책에서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 방안을 내놓고 3기 신도시를 발표했다. 이후에도 계속 주택 공급을 늘려 지난해 5·6 대책에선 서울 7만 가구 공급 계획을 내놨고, 그해 8·4 대책을 통해 다시 13만2000가구를 더했다. 이렇게 나온 물량은 서울·수도권만 총 127만2000가구에 이른다. 지방 물량까지 더하면 188만8000가구로 노 정부와 비슷해진다. 숫자까지 판박이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노 정부의 주택 공급 대책은 그래도 ‘실체’가 있었다. 2006년 하반기 내놓은 11·15 대책에서 노 정부는 건설 중이던 김포·파주 등 신도시 공급 물량을 확 늘렸다. 당시 수도권에서만 7개의 크고 작은 신도시(공공택지)가 개발 중이었기 때문에 숫자를 늘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신도시’라는 실체가 있었지만, 문 정부는 다르다. 3기 신도시가 있지만 이미 한계에 달했다. 그러다 보니 서울 역세권을 개발해 12만3000가구를, 공공재건축 등을 통해 13만6000가구 등을 공급한다는 ‘말뿐인’ 숫자가 대부분이다. 실제 이날 정부가 제시한 ‘택지’는 한 곳도 없었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4일 “지자체와의 협의가 완료된 곳도 있고, 협의 중인 곳도 있다”며 “상반기 중으로 두 세 차례 나눠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역시 ‘언제’ 밝힐 것인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공공재건축·역세권 개발은 주민이나 토지주의 의지가 중요한 데 정부는 “대상지로 선정한 곳들은 실제 주민들의 참여를 묻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주민이나 토지주에게 ‘이렇게 해주면 하겠느냐’는 식의 떠보기조차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 부동산개발회사 대표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라고 혀를 찼다.

주택 수요자로부터 ‘상상임신’이라거나 ‘공갈빵’(속이 텅 빈 빵)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판을 의식한 듯 윤성원 국토교통부 1차관은 5일 CBS 라디오에 출현해 “(2·4 대책과 관련) 재건축조합 등에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역시 ‘어느 지역, 어느 단지’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연구소장은 “이런 식의 대책을 내놓고 실제로 공급하지 못하면 정부 말만 믿고 기다리는 주택 수요자만 바보가 된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차치하더라도 주택시장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당장 발등의 불을 끌 수 있는 대책도 아니다. 주택시장은 전셋값 상승 등의 영향으로 연초부터 서울 강남권을 비롯해 외곽까지 펄펄 끓고 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구로구 신도림 동아1차 아파트 전용 59㎡는 지난해 하반기 9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최근 10억원 계약됐다. 구로구에서 전용 59㎡가 10억원대에 거래된 첫 사례다. 바로 옆 신도림 동아3차 전용 59㎡도 최근 21층이 10억5000만원에 팔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공급 확대 효과는 입주 시기에 이르러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가격 조정도 그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정부 때를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3.1이었던 2007년 1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2017.11=100)는 그해 말 86.9로 상승했다. 2007년 들어 매달 평균 0.5% 정도씩 올랐는데, 직전에 내놓은 ‘실체가 있는’ 대규모 공급 대책도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2·4 대책은 되레 시장을 부추겨 집값을 더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는 4일 “개발 예정지 투기 등이 극성을 부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당장 현실적인 공급 대책을 추가할 수는 없을 것이고, 지금이라도 전셋값이 집값을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이어지지 않도록 임대차 2법 등을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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