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야누스 소비'..샤넬·에르메스? 우리는 아미·마르지엘라 지른다

서정민 2021. 2. 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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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명품의 절반 가격 '신명품'
가성비 좋은 것 살 땐 지갑 열어
웹서핑해 전 세계 최저가 찾아
SNS로 '시그니처 로고' 과시
후드 티 등 실용적 스타일 인기
온라인몰 1년 새 200% 성장도


MZ세대의 ‘신명품론’
문화·소비·금융 모든 부문에서 ‘MZ세대’를 잡기 위해 난리가 났다. 부모 세대가 기존 브랜드에 충성도 높은 집토끼라면, MZ세대는 새롭게 공략해야 할 산토끼이기 때문이다. MZ세대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용어다. 한마디로 ‘요즘 젊은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2030세대를 말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에 밝은 동시에 남과는 차별화된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을 추구하는 게 특징이다.

모바일로 ‘신명품’을 소비하는 MZ 세대의 쇼핑 트렌드를 카툰 이미지로 만들었다. 1 여우가 시그니처 로고인 ‘메종 키츠네’ 카디건. 2 바늘땀 디자인이 특징인 ‘메종 마르지엘라’ 지갑. 3 ‘톰 브라운’의 상징은 4개의 줄무늬, 빨강·흰색·파랑 3선 테이핑이다. 4,5 페이스 로고로 유명한 ‘아크네 스튜디오’ 모자와 크로스 백.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각 브랜드], 디자인=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MZ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은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르다. 중년 세대라면 공짜로 줘도 안 쓸 곰표밀가루·진로소주 협업 제품에 열광하는가 하면, 명품 브랜드와 콜라보한 100만원 짜리 스니커즈를 사기 위해 길거리에서 밤을 새운다.

이향은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는 MZ세대를 ‘자본주의 키즈’라고 정의했다. “어릴 때부터 광고·시장·금융 등 자본주의적 요소에 친숙하고 자본주의 생리를 몸으로 체득한 MZ세대는 돈과 소비에 대한 편견이 없다”며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 명품 소비에 주저함이 없지만 구매 과정에서 많은 공을 들이고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합리적 소비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솔직히 돈에 여유가 있는 세대가 아니라 자존감과 행복 추구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서 아낄 때 아끼고 쓸 때 쓰는 소비 성향을 갖고 있다”며 “그동안 ‘해외여행’에 집중해왔는데 지난해 코로나19로 여행을 못 가게 되면서 명품 소비의 주체로 등장했다”고 덧붙였다.

‘신명품’ 조건, 모셔 두지 않고 쓴다

타고난 ‘금수저’가 아닌 이상 평범한 MZ세대는 대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이거나, 초보 가장이다. 이 교수는 “때문에 이들은 노후 대비에도 철저한 동시에, 명품 소비도 자신들의 지갑 두께에 맞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고 했다.

MZ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온라인명품 쇼핑 플랫폼. 대부분 지난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1 머스트 잇. 2 발란. 3 트렌비. 4 한스타일 닷컴. 5 디코드. [사진 인터넷캡처], 그래픽=이정권 gaga@joongang.co.kr
이런 MZ세대가 명품을 소비하는 전략을 기성세대와 단적으로 비교하면 ‘야누스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문의 수호신 야누스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MZ세대 명품소비에는 ‘가성비’와 ‘플렉스’라는 이중적 성향이 공존한다. 가성비(價性比)란 내가 지불한 가격과 제품 성능에 비교한 만족도를 말한다. 플렉스(FLEX)는 요즘 젊은 층에서 가진 돈의 상당 부분을 고가 제품 구매에 ‘지르다’ 그래서 ‘과시하다’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명품을 구매할 때 부모 세대가 백화점 매장이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의 우아하고 대접받는 경험을 중시한다면, MZ세대는 디지털 서핑으로 전 세계 최저가 명품을 찾아내 가성비를 최대한 높이는 ‘게임’을 즐긴다.

기업 입장에선 어디로 튈지 모를 MZ세대를 제대로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미 명품 업계에선 전통의 하우스 명가와는 다른 분위기의 컨템포러리(동시대) 브랜드들이 등장해 MZ세대를 사로잡았다. 아미, 톰 브라운, 메종 키츠네, 르메르, 아크네 스튜디오, 메종 마르지엘라, 오프화이트, 스톤아일랜드, JW앤더슨…. 이 브랜드들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어느 정도 MZ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부모 세대가 몇백, 몇천만 원짜리 명품을 장롱 속에 고이 모셔 두고 가끔 꺼내 썼다면, MZ세대는 매일 꺼내 쓸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신(NEW) 명품’을 선호한다. 브랜드 역사는 10년 안팎으로 짧지만 품질과 이미지는 검증된 브랜드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아미와 메종 키츠네의 공식 수입·유통사인 삼성물산 패션부문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아미의 2020년 누적 매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159% 증가했고, 메종 키츠네는 100% 신장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들 ‘신명품’의 특징은 우선 가격이 기성세대가 소유하려 애썼던 에르메스·샤넬·루이비통 등 전통 명품의 절반 정도다. 둘째, 늘 일상에서 소화할 수 있는, 일명 ‘원마일 웨어’들이다. 원마일 웨어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지난해 유행했던 패션 트렌드로, 집 안 또는 집 근처 1마일(1.6㎞) 반경 안 지역까지 가볍게 외출할 때 입기 좋은 옷차림이다. 격식을 갖출 필요가 없으니 컬러와 디자인은 심플하고, 편안함과 활동성은 강조된 ‘꾸안꾸(꾸미지 않은 듯 꾸민)’ 스타일의 스웨트 셔츠(일명 맨투맨 셔츠), 트레이닝 복, 후드 티, 카디건 등이 대표적이다. 패션쇼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전통 명품들의 화려한 스타일에 비해 원마일 웨어는 계절이나 시즌을 타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옷들과 매치도 쉽다. 그러니 합리적인 소비에 적합하다. 여성용 외출복으로만 알려졌던 이자벨 마랑도 3년 전 남성라인 론칭 후, 남녀공용 후드 티를 출시하면서 매출이 훌쩍 올랐다.

셋째,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시그니처 로고’를 갖고 있다. 기성세대가 전통적인 하우스 명가의 대표적인 로고를 천편일률적으로 소비했던 것과는 달리, MZ세대는 젊은 감각의 펀(fun)한 요소까지 담고 있는 ‘한 끗’ 다른 시그니처 로고를 사랑한다. 메종 키츠네의 여우, 아미의 빨강 하트, 메종 마르지엘라의 바늘땀, 아크네 스튜디오의 페이스, 톰 브라운의 사선(four bar) 등이 대표적이다. SNS를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소비를 과시하기 좋아하는 MZ세대에게 손바닥만 한 휴대폰 속 사진에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시그니처 로고는 매우 중요하다. 사진가 박인준(26)씨는 “메종 마르지엘라를 가장 좋아한다”며 “바늘땀 시그니처 디자인은 로고 플레이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쿨하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카드 지갑, 스웨트 셔츠 등의 아이템을 여러 개 구매했다”고 했다.

흥미로운 건 한국 MZ세대의 이런 소비 성향이 유럽의 신진 디자이너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미의 남호성 MD는 “2011년 프랑스에서 론칭한 아미는 국내에 소개되고도 2016년까지는 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국내 MZ세대의 SNS를 분석한 한국 담당자들이 ‘눈에 띄는 독특한 디자인 로고가 있으면 좋겠다’고 본사에 제안했다”며 “디올옴므·지방시의 디자이너를 역임한 아미의 디자이너이자 창립자 알렉상드르 마티위시는 하트와 이름 이니셜 A를 연결한 자신의 사인으로 시그니처 로고를 만들었고 이후 국내에서 큰 히트를 치게 됐다”고 들려줬다.

오래 두고 입을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아이템이면서 동시에 SNS로 과시하기 좋은 시그니처 로고를 가진 아이템. MZ세대가 선택한 ‘신명품’의 조건이다.

우아한 경험보다 합리적 소비 중요

오프화이트(左), JW앤더슨(右)
MZ세대의 야누스적 명품 소비는 온라인 명품 쇼핑몰의 지속적인 성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는 580억 달러(약 64조원)로 전체 명품 시장 중 23%에 달한다. 이는 전년의 12%에서 두 배 늘어난 숫자다.

100만여 개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명품 쇼핑 플랫폼 ‘발란’은 지난해 전년 대비 200% 성장하면서 월 매출 50억원, 월 방문자 수 200만명을 기록했다. 오프라인 매장으로 시작해 2016년 온라인 플랫폼까지 론칭한 ‘한스타일닷컴’은 지난해 4분기 기준 210억원의 거래액을 기록하면서 같은 해 상반기 대비 4배 이상 급성장했다.

한스타일닷컴 박미영 온라인 팀장은 “플랫폼 이용자 중 2030세대의 비율이 2016년엔 20%에 불과했지만 2020년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선호 브랜드와 가격대를 보면 연령층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스타일닷컴이 한국 독점유통권을 가진 MSGM, 프리미아타, 필립모델, JW앤더슨 등도 ‘신명품’ 그룹에 속한다. 박 팀장은 “지난달 25일부터 플랫폼에서 모든 전화번호를 지우고 1:1 온라인 고객상담 서비스인 채널톡을 사용하고 있는데, 전화로 확인하길 좋아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이 같은 온라인 챗봇 기능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 세일 정보를 찾아주는 AI 솔루션 ‘트렌봇’ 서비스를 통해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명품 가격 비교를 투명하게 더 빨리 전달하고 있는 ‘트렌비’의 박경훈 대표 역시 “18세~34세 소비자가 전체 고객의 약 35%”며 “특히 지난해 24세~34세 남성 소비자가 118% 증가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우아한 경험보다는 합리적인 쇼핑을 통해 실리를 찾겠다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며 “아낄 때 아끼고 쓸 때 과감히 쓰는 양극화 소비가 이뤄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회사원 한송인(27)씨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구매를 병행했는데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비대면 구매가 더 편해졌다. 좋아하는 브랜드는 내게 잘 맞는 사이즈도 알고 있어서 온라인으로 사도 불편함이 전혀 없다”며 “온라인 구매 후 택배 상자가 배달됐을 때, 내가 산 물건이지만 어쩐지 선물을 받는 느낌이어서 포장에 특별히 신경 쓰는 브랜드를 선호하고 있다”고 했다.

실물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부모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이처럼 AI가 자신의 이용 패턴에 맞는 맞춤 상품을 추천해주고,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의 이용 후기가 적힌 온라인 쇼핑에 더 익숙하다. 오프라인 쇼핑은 브랜드마다 여러 매장을 돌아다녀야 하고, 내가 들른 매장에 원하는 물건이 없을 수도 있다. 수백 개의 브랜드, 수만 점의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은 이런 단점들을 쉽게 해결한다.

이런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전통의 하우스 명가들도 일제히 팔을 걷고 나섰다. 지난해 에르메스·까르띠에·프라다 등이 자사 온라인 몰을 오픈했고, 티파니는 카카오커머스에 입점했다. 티파니 관계자는 “MZ세대의 보편적인 소셜 플랫폼인 데다 언택트 시대에 맞는 마케팅이 필요했다”며 “지방 매장에는 원하는 물건이 없는 경우가 많고, 서울까지 오가는 접근성도 떨어진다. 특히 선물용 주요 구매자인 남성의 경우 혼자 백화점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품 고르는 걸 부담스러워 해 고객 편의를 위한다는 차원에서도 맞춤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MZ세대의 별칭인 ‘엄지족’들의 새로운 소비 형태는 전통적인 명품 브랜드의 유통 체계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서정민 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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