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조직·자금력 갖춘 개미군단, 하락장도 버텨낼까
'빅마우스' 중심 뭉쳐 힘 세져
'개인은 기관의 밥' 옛날 얘기
거래 비중 60~80%, 시장 주도
게임스톱 매도세에 결속력 와해
'폭탄 돌리기' 희생양 될 수도
유튜브·SNS서 종목 정보 얻어
요즘 증시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온라인 공간의 ‘빅마우스’가 종목이나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를 설명하면 개인 투자자들이 좌표를 찍고 화력을 모은다. 위험관리 등 온갖 규정에 얽매인 펀드매니저들과 달리 자유로운 개인 투자자들은 신속하게 움직인다. ‘개인은 기관·외국인의 밥’ ‘개인 투자자는 모래알’ 등은 옛날 얘기다. 개미군단은 온라인 공간에서 전문성이나 대표성을 갖춘 빅마우스의 암묵적 지휘·지시에 맞춰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정보도 자유롭게 교환하면서 예전과 달라졌다. 과거와 다른 조직력·정보력에다 자금력까지 갖추면서 증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개미군단의 화력은 놀라울 정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의 60~80%를 개인 투자자가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에는 40~60%에 머물렀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투자 행렬에 합류하는 개인이 늘면서 거래 규모도 급증했다. 4조원 이상 쓸어담으며 하루 순매수 규모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날이 많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집값과 주가가 급등하면서 ‘벼락 거지’로 내몰리지 않으려는 개인들의 절박하고 불가피한 선택지다. 과거와 달리 개인들이 많이 투자한 삼성전자·현대자동차·네이버 등 국내 간판 기업의 주가는 지난해에만 50% 넘게 올랐다. 규제 강화로 부동산 쪽에서도 증시로 자금이 몰리는 경향을 보이면서 주가의 과열 여부를 판단하는 주가수익비율(PER)·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지표도 무용지물이 됐다. 이른바 ‘폭탄 돌리기’ 형국이지만 버블이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조직력·정보력·자금력의 삼박자를 갖춘 개인들은 해외 증시에도 거침없이 진출한다. 최근 공매도 논란으로 화제가 된 미국 게임스톱에는 이른바 서학개미도 대거 투자했다. 미국 주식 커뮤니티에서는 미국인이 한국어로 ‘영차영차’를 외치며 주가 상승을 기원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그간 헤지펀드 중심의 공매도 세력을 비판해온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트위터에 ‘맹폭격(stronk)’이라고 쓰며 서학개미들을 북돋웠다. 스탠다드차타드증권·한국벤처투자 대표를 지낸 정유신 서강대 교수는 “유튜브·SNS로 정보 유통은 간소화됐고, 모바일로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시장 상황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며 “기관·외국인에 좌우되던 주식시장이 구조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국내외 개인 투자자들의 연대의식이 공고해진 배경으로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꼽기도 한다. 당시 주가 폭락, 대량 실직으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금융당국은 시스템 안정을 위해 사태의 원흉인 월가에 공적자금을 동원해 도와 대마불사 논란을 낳았다. 정부·기관에 불신이 싹 트며 이른바 ‘증시 민주화’의 여론이 저변에 깔렸다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가 몰리면서 주가가 급등해 헤지펀드까지 손을 든 게임스톱 사례도 비슷하다. 주식거래 사이트 로빈후드가 게임스탑의 매수 거래를 제한하자 게임의 룰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증폭됐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4년 전 암호화폐 투자 열풍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시장 과열을 우려한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2018년 1월 ‘거래소 폐쇄’ 발언을 한 후 시장이 흔들리자 당국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커졌다. 이번 공매도 재개 논란에서도 금융당국은 불신의 대상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SNS 덕에 개인의 조직력이 강화되는 건 증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등의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라며 “개인 투자자들은 특히 기존 전문가 집단에 불신이 커서 직접 투자에 나선 경우가 많고 수익률 못지 않게 기싸움에도 민감하다”고 분석했다. 암호화폐 가격 폭락으로 입은 손실을 만회하려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는 직장인 조대식(44)씨는 “당국의 불필요한 간섭이 오히려 시장에 충격을 주고 흐름을 깨 혼란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하락기엔 배신, 도미노 매도 가능성
개인 투자자들은 이런 불만에 공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빅마우스들을 중심으로 결속력을 다진다. 당국의 이해관계는 개인보다 기관·외국인에 가깝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정유신 교수는 “금융당국은 객장에서 증권 거래를 하던 때의 개인이 아니라는 세력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특히 시장을 통제한다는 관점을 버리고 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정보를 솎아내는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 투자자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지만 자본시장의 자정·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급격한 하락장이 도래하면 개인 투자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어서다. 개인 투자자들이 똘똘 뭉쳐 상승장을 만들었지만 이들 사이에서 언제든 ‘배신’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과열 국면이나 폭탄 돌리기 상황에서 개인들의 결속력이 얼마나 유지될지 미지수다. 누가 재빨리 팔고 빠져나가면 도미노처럼 매도 행진이 이어질 수 있다. 지난달 초 주당 16달러에서 월말 500달러대로 치솟은 게임스톱 주가는 잇단 매도 공세에 4일(현지시간) 53달러로 주저앉았다. 김학균 센터장은 “개인들은 하락 사이클에서의 경험이 부족해 큰 손실을 입기 쉽다”며 “하락장이 찾아온다고 견딜 수 있도록 빚투나 신용거래는 자제하고 여윳돈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개인, 코스피 3100 이후 22조 매수…기관·외국인은 매도 공세
「 코스피 3000 시대를 연 개미군단의 매수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증시 과열 논란 속에 악재가 터질 때마다 지수가 출렁이지만, 개미군단은 뭉칫돈을 쏟아 부으며 대응하고 있다. 개미군단은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만 24조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특히 코스피 3100을 넘은 뒤로 21조원 넘게 주식을 사들였다. 기관·외국인 투자자는 모두 순매도를 기록했다. 코스피가 3200선을 넘은 후 3000선이 무너지기도 하는 등 상승 탄력이 둔화된 가운데 개미군단의 피해가 우려된다.
코스피 3000 이후부터는 게임의 규모가 달라졌다. 동학개미들은 자신감이 붙었고, 새로운 투자자들이 대거 뛰어들며 코스피 하루 거래액이 40조원을 넘나들고 있다. 개인은 코스피가 3100을 기록한 다음 거래일인 지난달 11일부터 이달 4일까지 22조2159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했다. 3200을 기록한 후로는 10조5154억원, 3100 이후부터는 11조7005억원을 순매수했다.
개인의 강력한 매수세가 이어졌지만, 기관의 매도 공세에 코스피는 지난달 29일엔 3000선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작용은 반작용을 낳듯 개인의 매수 행렬에 기관·외국인은 매도 주문을 내고 있다. 코스피가 3100을 기록한 후부터 21조8315억원 순매도했다. 이 영향으로 개인은 2600~3000 구간일 때보다 2배 넘는 수준의 순매수 규모를 기록했지만 수익률은 떨어졌다. 펀드 규모가 크면 클수록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증시의 법칙이 개인의 매수 동향에도 반영되는 모습이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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