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엔 매화, 바다엔 멍게 꽃..'미식 꽃'도 만발한 통영
[이택희의 맛따라기]
“그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먹거리를 앞에 두고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둘러앉아 있으면 그 무엇도 부럽지 않다. 언젠가 이 책을 읽은 이와 통영음식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본 적은 없고 온라인으로만 아는 사이인 저자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책 읽은 지 나흘 뒤인 지난달 15일 통영에서 그를 만났다. 가면서 두 가지를 묻고 싶었다. 외지인에게 추천하는 통영음식과 책에서 2월의 통영음식으로 소개한 멍게 얘기다. 7시간을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 구상은 이야기의 바다를 표류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의 라이프 스토리가 바다의 거친 물결처럼 일렁였기 때문이다.
찬 바람 안 가신 2~3월 멍게 맛 좋아
보통은 멍게 철을 4~5월로 아는데 2월이라니 좀 이른 듯해 물으니 이 무렵 시장에 멍게가 나오기 시작한다고 했다. 자연산 멍게는 8~9월에 가장 맛있지만 드물고, 양식 멍게는 12월 산란기에 유생을 채집해 26~28개월 키워서 2~5월 수확한다. 이때가 멍게의 제철이지만, 찬 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2~3월 멍게가 맛있다고 꼽기도 한다.
연구소에서 가까운 서호시장에 멍게가 나왔는지 함께 나가봤다. 소매점에는 없고, 도매상 수조 두 칸에 좀 덜 자란 듯한 멍게가 담겨 있었다. 올해 처음 시험적으로 나온 양식 멍게라 한다.
▶재료(4인분 기준) 양념 멍게(손질한 멍게 170g, 어간장 혹은 멸치액젓 20g, 다진 파·마늘 각 10g, 참깨 조금), 밥 4공기, 마른 해초 15g, 달걀 2개, 오이 5g, 날 김 1장(가루), 홍고추·참기름·깨소금 각 약간.
▶조리법 ①멍게는 손질해 물기를 빼고 콩알 크기로 다져 어간장(멸치액젓), 다진 파·마늘, 깨를 넣고 무친다. 양념 멍게는 바로 써도 되지만, 숙성하면 맛이 더 좋다. 냉장고에 두면 1주일까지 저장할 수 있다. ②말린 해초(주로 가사리)는 물에 불려 잘게 썰어 둔다. 취향에 따라 채소를 대신 넣어도 된다. ③오이는 채 쳐서 찬물에 헹구고, 홍고추는 곱게 다진다. ④달걀은 지단 부쳐 가늘게 채 친다. ⑤대접에 밥을 담고 깨·참기름을 두른 다음 김가루·오이·해초·지단을 시계방향으로 둘러 담고 가운데 양념 멍게를 올려 오방색에 맞춘다. 다진 홍고추를 멍게 가운데 고명으로 얹는다.
통영 멍게수협의 권유로 멍게 음식점을 열려고 그는 수많은 메뉴 개발 실험을 했다. 그 가운데 59가지가 성공적이었고, 거기서 10여 가지를 메뉴로 채택했다. 9년간 손님들 선호를 살펴 지금은 7~8가지만 남겼다. 실험에 성공한 59가지 멍게 음식은 명단을 적어 음식점에 게시했다. 멍게가 호불호가 뚜렷한 식재료라 초기에는 무척 고전했다. 다행히 이제는 단골이 많이 늘었다.
통영을 여행하는 외지인에게 권하는 향토음식을 물으니 건대구회, 통영나물비빔밥, 물메기탕과 찜…하고 꼽더니 이내 중단하고 설명을 이어 간다. “시장에 매일 나가는데 나오는 게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날마다 다른 맛이 있어서 몇 가지로는 말하기 어렵다. 음식 종류와 색다른 음식이 많기로는 전국에서 서울 다음일 것이다. 책을 365일 날짜별로 쓸까 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열두 달 월별로 썼다.”
통영음식이 그만큼 다채롭고 풍요롭다는 말이겠다. 공감한다. 꼽다 말았지만, 그 가운데 이곳 사람들이 ‘너물밥’이라 하는 통영나물비빔밥은 통영음식의 다채와 풍요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동물성으로 흐르는 입맛의 대세에 밀려 찾는 이가 드물다. 통영에 가는 누가 물으면 늘 이 음식을 추천하지만 먹었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소장도 그 점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건대구회·물메기탕도 향토색 물씬
통영은 30년 가까이 한 해 두세 차례 드나들지만, 갈 때마다 먹을 게 많고 음식이 맛있다는 감탄을 부른다. 경상도 음식은 먹을 게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경남 통영은 왜 다를까.
통제영의 영향이 없다 할 수 없지만, 그보다 자연환경과 문화적 배경, 그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개방적·진취적·현실적 기질과 그들이 형성한 지역사회 분위기가 더 근본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그는 본다. 291년간(1594~1895) 존속했던 통제영을 거점으로 하던 농수산물 유통망이 있던 바탕에 통제영 해체 이후 유력한 가문이나 유교적 보수성의 장악력이 다른 지역보다 느슨해 자유분방했던 분위기가 오늘날 통영 음식문화가 만발하는 옥토가 됐다는 말이다.
세종시 조치원읍이 고향인 이 소장은 중3 때부터 요리를 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갈 때 음식점을 운영했다. 만 20세 되던 1984년 통영에 도착해 토박이 아내를 만나 정착하면서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37년간 음식으로 생업을 삼고, 지역음식 연구도 그치지 않았다. 학교에서 안 한 공부를 평생 짊어지고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충청도로 돌아가는 나에게 말했다. “통영에서 음식 오래 하다 보니 이제 어머니 음식이 맛없다. 충청도(예전 조치원읍은 예전 충남) 음식 입에 안 맞더라.”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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