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인간벽 뒤에 숨은 김명수 "잘해보겠다" 사퇴 거부

김형원 기자 2021. 2. 5.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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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의원들 대법원 항의 방문하자 출입문 봉쇄하고 버티다 면담
국민의힘 의원들이 5일 법관 탄핵과 관련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를 항의 방문하자 대법원 보안 직원들이 쇠사슬로 중앙 출입구를 봉쇄하려 하고 있다. 대법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법원 청사로 들어가려 하자 한때 이 쇠사슬로 출입문을 봉쇄하기도 했다./ 장련성 기자

국민의힘은 5일 법관 탄핵과 관련한 거짓말이 드러난 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해 “법복만 걸친 정치꾼”이라며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게 국회 탄핵을 언급한 것을 ‘정권과 결탁한 탄핵 거래’로 규정했다. 법조계에서도 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과 사퇴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은 이날 대법원 항의 방문을 간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앞으로 잘해볼 것”이라면서 사실상 사퇴를 거부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대법원장이 ‘거짓의 명수(名手)’라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자 미래 세대에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만이 국민께 속죄하는 도리일 것”이라고 했다.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주축이 된 국민의힘 ‘탄핵 거래 진상조사단’은 이날 대법원 청사에서 김 대법원장과 만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 대법원장은 의원들에게 “더 나은 법원을 위해 한번 잘해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향후 있을 대법관 인사 방침도 언급했다고 한 면담 참석자는 전했다. 이 참석자는 “김 대법원장은 사퇴 요구가 나올 때마다 얼버무리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화제 전환에 나섰다”고 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 방문 때 대법원 측이 청사 출입문을 쇠사슬로 묶어 봉쇄해 의원들과 대치도 했다.

이날 임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동기 140여 명은 성명을 내고 “김 대법원장은 법원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다수의 법관으로 하여금 치욕을 느끼게 했다”며 “탄핵되어야 할 사람은 바로 김 대법원장”이라고 밝혔다.

“野에 내 임명동의 부탁해달라”… 김명수, 임성근에 직권남용 의혹

김명수 대법원장이 작년 5월 사표를 제출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게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며 반려한 사실이 면담 녹음 파일에서 드러나며 사법부 수장이 헌법적 책무인 사법 독립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서는 김 대법원장 탄핵과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더해 김 대법원장이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에서 ‘탄핵 관련 발언’은 없었다는 허위 내용을 대법원 명의 답변서로 만들어 국회에 보낸 것은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죄가 될 수 있고, 2017년 국회의 대법원장 임명 동의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은 직권남용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후보자 신분이던 2017년 9월 본인의 국회 임명 동의안 표결을 며칠 앞두고 당시 서울고법 민사26부 재판장이던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친분 있는 야당 의원들을 접촉해 인준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지게 해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한 것으로 5일 알려졌다. 이후 임 부장판사는 일부 야당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통화 결과를 김 대법원장에게 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야당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당시 임 부장판사에게서 ‘김명수 후보자를 도와달라’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또 다른 야권 인사는 “임 부장판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전화가 왔다. 김 대법원장이 전방위 ‘간접 로비’를 하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해 9월 21일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역대 최저 찬성률(53.7%)이었다. 이 직후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에게 전화를 해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법원 안팎에선 “직권남용 소지가 다분하다”는 말이 나온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위법한 지시를 했을 경우 성립한다. 당시 임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아 법원 내 각종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법원행정처 소속 심의관(판사)도 아니었다. 재판을 하던 일선 판사였다. 헌법은 103조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돼 있고, 법원조직법 49조에는 법관의 ‘정치운동 관여’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김 대법원장은 독립된 법관에게 국회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 표결이란 ‘정치 행위’에 관여하게 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양승태 대법원의 판사들이 정치권과 내통했다며 이를 ‘사법 적폐’로 몰아 직권남용으로 대거 기소되게 했다”며 “이 기준대로라도 그의 행동은 직권남용”이라고 했다. 특히 여당이 임 부장판사를 탄핵 소추한 핵심적인 이유는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기사를 쓴 산케이신문 기자 재판에 당시 정치 상황을 고려해 개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김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의 면담 녹음 파일을 보면 김 대법원장이야말로 “나로서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하고”라며 사법부의 일에 정치 상황을 끌어들이는 행태를 보였다.

이 같은 김 대법원장의 모습에 법조계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사퇴와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임 부장판사의 사법연수원 17기 동기생 140여 명은 이날 “김 대법원장을 탄핵하라”는 성명을 내고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누구보다도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여야 함에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여 소속 법관이 부당한 정치적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도록 내팽개쳤다”며 “심지어 일국의 대법원장으로서 임 부장판사와의 대화 내용을 부인하는 거짓말까지 하였다”고 했다.

이들은 “이러한 행동은 법원의 권위를 실추시켰고, 다수의 법관으로 하여금 치욕과 자괴감을 느끼게 하였다”며 “탄핵되어야 할 사람은 임 판사가 아니라 바로 김 대법원장”이라고 했다. 반면 여권 국회의원들이 임 부장판사 탄핵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근에 나온 몇몇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들을 겁박하여 사법부를 길들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4일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는 김 대법원장을 명예훼손과 직무유기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한 데 이어 이날 자유대한호국단과 활빈단 등 시민단체들은 김 대법원장을 허위 공문서 작성과 직권남용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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