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사망 빼곤 골프 약속 지킨다고?

정현권 2021. 2. 5. 22:5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라이프&골프] 코로나에 한파까지 겹쳐 야외활동을 줄이던 차에 모처럼 골프 약속이 잡혔다.

겨울엔 가능하면 골프를 자제하는데 오랫동안 몸과 마음이 위축돼 약속에 응했다. 2월 중순 나의 올해 첫 골프 약속이다.

한파가 몰아치거나 코로나가 재확산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임박해서 상황을 보고 판단하기로 입을 모았다. 겨울 골프 약속은 보통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예약일이 다가와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하면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상황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코로나 감염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다. 예약일을 나흘 앞두고 동반자 간 의견이 엇갈렸다. 두 달 전 예약한 골프 약속이었다.

한 명은 취소, 두 명은 중간, 나머지 한 명은 진행하자는 쪽이었다. 취소 입장을 피력한 사람은 만약 3명이 골프를 진행하면 추가 골프비용을 본인이 지불하겠다며 빼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4인 플레이로 예약했다가 3인으로 진행하면 1인당 1만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데다 캐디피와 카트비도 4인 요금 그대로다. 한 명이 빠지면 9만원 정도 비용이 동반자 몫으로 돌아온다.

굳이 그렇게 강행할 필요가 없다면서 우리는 취소하고 말았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이런 일이 많이 생기며 한파나 폭설, 그리고 비 오는 날도 마찬가지다.

골프 약속은 생명과 같아 본인 사망을 제외하곤 지켜야 한다는 골프계 농담도 있다.

골프 약속은 개인에 따라 사안을 받아들이는 시각과 민감도가 달라 조율하기가 무척 난해하다. 특히 코로나로 예민해진 겨울철엔 더욱 그렇다.

"조율이 안되면 일단 초청받은 사람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고 다음으로 몸 상태가 원활하지 않거나 연장자 의견을 따르는 게 현명합니다."

김태영 한국대중골프장협회 부회장의 말이다.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보단 선택을 위한 우선 순위를 누구에게 부여할지 잘 헤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추위와 관련해선 골프 강행 여부가 더욱 헷갈린다. 추위를 타는 정도와 복장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골프장에서도 춥다는 이유로 예약 취소를 받아주진 않는다. 사흘 전까지 결정해서 골프장에 통보해야 한다. 어느 수준의 기온이어야 취소할 것인지 동반자끼리 결정하기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마음만 앞서 자칫 강행했다간 언 땅을 클럽으로 내리쳐 손목이나 갈비뼈 부상을 당하고 혈관질환자의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정도의 추위가 무슨 대수냐며 강행파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선뜻 말리지 못한다.

비 오는 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골프장은 당일 골프장에 비가 오지 않으면 일단 골프장으로 가야 한다. 가령 서울엔 이른 아침 비가 오는데 그 순간 골프장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취소할 수 없다.

골프장에 도착한 시간에 비가 내리면 취소할 수 있다. 이 경우 보통 동반자들과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시간과 연료비, 통행료 부담이 크다.

가랑비 정도가 내릴 때 문제다. 이 정도 수준이면 진행하자는 부류와 그냥 포기하자는 쪽으로 나뉜다.

"일단 동반자 중에 포기하자는 의견이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서 결정하는 게 좋아요. 동반자들은 모르지만 그가 비에 특히 약해 몸살, 감기 등을 앓을 수 있으니까요. 역시 취약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배려죠."

김 부회장에 따르면 이 경우 다른 동반자를 위해 자신을 제외하고 진행해도 무방하다고 말하는 게 답례다. 자신의 처지를 헤아려줬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 직장 선배는 당일 티업 시작 전 비가 몇 방울 떨어졌는데 일방적으로 철수하자고 말했다. 큰비가 예보된 것도 아니고 동반자들은 일단 진행하면서 판단하자는 눈치였다.

그중에는 몇 달 전부터 이날을 고대하고 심지어 다른 약속까지 포기한 후배도 있었는데 그의 독단에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골프 약속으로 인기를 얻는 사람도 있다. 사업가인 한 선배는 골프 조인 제의가 들어오면 웬만하면 흔쾌히 수락한다. 상대편 사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신을 생각해준 자체가 고맙다고 한다.

라운드 시간과 거리를 따지지도 않는다. 본인 골프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물론 초청 답례로 늘 점심을 사기 때문에 인기도 좋다.

동반자 중 한 사람이라도 언짢은 상태로 귀가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과 씀씀이가 남다르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에게는 골프 제의가 끊어지지 않는다.

골프 약속을 정할 때는 항상 문자메시지로 주고받을 필요가 있다. 전화로 말하거나 메모를 하면 간혹 실수가 나온다.

날짜나 골프장을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필자도 용인 레이크힐스를 레이크사이드로 착각해 잘못 찾아갔다가 부랴부랴 차를 돌린 사건도 있다.

남서울, 서서울, 뉴서울 골프장도 이름을 헷갈리기 쉽다. 골프장이 가까우면 그나마 다행인데 서서울을 뉴서울과 착각하면 무려 1시간30분 정도를 차로 달려야 한다.

골프 약속을 할 땐 대동하는 인원도 잘 체크해야 한다. 용인 프라자CC에서의 일이다. 당일 아침 필자가 후배를 대동해 골프장에 도착했는데 상대방 쪽에서 3명이 나와 있는 게 아닌가.

하필 골프장 사정상 5인 플레이가 안돼 한 명이 돌아가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결국 자기들이 초청했다며 한 명이 돌아가겠다고 했다.

서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는데 잘잘못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반드시 시간, 장소, 인원을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

골프 초청을 할 때는 조건을 미리 알려주는 것도 매너다. 비용 관계와 식사비 등을 사전 예고해야 초청받는 쪽이 수락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답례로 나름의 역할을 모색하게 된다.

회원권 보유자의 초청으로 골프를 했는데 자신만 회원 대우를 받으면 황당하다. 회원권 보유자가 공지하지 않으면 조건을 미리 물어 난감한 경우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

필자는 골프 초청으로 오래된 상처를 씻은 경험이 있다. 옛 직장동료와 오해로 퇴직 후에도 연락 없이 소원한 관계였다.

상대방이 외면하거나 무심하면 다시 상처받을까 두려워 그동안 연락도 못했는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순순히 응하는 게 아닌가. 마음 한편 오랜 응어리가 녹아내리며 편안해졌다.

골프 약속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체험이다. 골프가 즐거움을 추구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자아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는가.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