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파도·바람 소리.. 서해 섬 승봉도
한참 지났는데 시계는 여전히 한낮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걷는 사내는 서쪽으로 가는 것이다. 경인도로 끝에 연안부두가 있다. 거기서 사내는 겨울에 어울리는 행선지를 찾는다. 북한산 승가사에서 내려올 때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여행사 홍보 전단을 한 장 뜯어냈다. 여행객 모집 광고가 자못 요란한 전단지는 비엔지 눈엔지 끝이 젖어 있었고, 이미 오래전에 중지됐을 스케줄 표를 보여주었다.
배를 타면 나는 늘 아주 옛날 목포에서 계획도 없이 홍도 가는 배를 탔던 일이 떠오른다. 때는 여름이었다. 배는 여덟 시간이 걸려서야 홍도에 닿았는데, 그날 목포로 돌아가는 배는 없었다. 시외버스 타고 어디 다녀오는 사람처럼 남서쪽 절해고도 홍도에 남겨진 것이었다. 그래도 섬 주위를 일주하는 관광선을 한 번은 타봐야 할 것 같았는데, 이듬해 그 배가 뒤집혀 사람들이 많이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다. 배가 섬 바깥으로 나가자 파도가 어찌나 높은지 처음에는 발을 구르며 기분을 내던 사람들도 배 넘어간다고 가만히들 있으라고 아우성들을 쳤다.
자월도를 지나면서 바다는 널을 뛰기 시작하지만 그 옛날 홍도 너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뱃멀미는 조심해야 한다. 또 한참 전에 인천에서 백여 킬로 떨어진 백령도를 가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다가 갑자기 넘어오는 구토에 왜 검은 비닐봉지를 나누어 주었는지 알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배는 소이작도를 거쳐 바로 앞 대이작도로 간다. 이 섬은 영화 ‘섬마을 선생님’을 찍은 곳이라 하는데, 원작을 살펴보니 ‘섬마을 선생’으로, 1967년에 김기덕 감독이 찍었다 했다. 배가 하루에 두 번 있을 뿐이기 때문에 여기서 내릴 수는 없다.
대이작도에서 승봉도까지도 그다지 멀지 않다. 오늘의 목적지가 바로 이 작은 섬이다.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서 내리고 나도 따라 선착장에 발을 내디뎠다. 작다고 했으니 무작정 걸어볼 작정이다. 돌아가는 배는 세 시쯤에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겨울 코로나 시절의 섬에 여행객으로 온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그래도 백 몇십 호가 산다니 카페 하나쯤은 있으려니, 거기서 몇 시간 책이라도 읽고 싶다 했는데, 없다. 다만 ‘충남민박’ 같은 민박집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빨랫줄에 생선 말리는 것을 지나쳐 당도한 곳은 ‘이일레’ 해변, 나는 여기서 한참을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오로지 바다와 바람과 파도 소리가 있을 뿐,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다.
나는 또 몸을 돌려 이번에는 다른 길을 따라 언덕배기를 넘어 반대편 바닷가 쪽으로 가본다. 여기도 사람들 사느라고 논이라는 것이 있다. 외길을 따라 바닷가로 나아가니, 파도와 바람에 깎인 벼랑에 이 절벽에서 떨어져 나가 ‘굴러다니는’ 바위들이 보인다. ‘부채바위’ 너머로 난간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남대문바위’라고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바위가 나타난다.
옛날에 이 섬에 사랑하는 두 사람이 살았는데, 여자가 다른 섬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이 문을 넘어 영원히 당신의 여자가 되겠다고 맹세하였다던가. 그러면 나는 시아(Sia)의 ‘스노우맨’(snowman)이 생각난다. 이 노래에서 여자는 ‘눈사람’에게 영하로 내려가는 곳으로 가 태양빛으로부터 숨어 영원히 사랑하자고 했다. 이 문 너머 세계가 설화 속 여자에게는 태양빛이라는 세속의 계율로부터 벗어난 영원의 영하 세계였을 것이다.
바닷가에 한참을 머물렀다 했는데 시계는 여전히 한낮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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