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란 단어에 묻힌 미성년 성착취 [책과 삶]
[경향신문]
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정혜용 옮김
은행나무 | 256쪽 | 1만4000원
어느 날 저녁, V는 어머니를 따라서 간 사교 만찬장에서 유명 작가인 G를 만난다. 당시 G는 50에 가까운 나이였고, V는 13살이었다. G는 의도적으로 V에게 접근한다. V를 대상으로 한 소아성애 행위를 사랑으로 포장하고, 심지어 V와 있던 일들을 적나라하게 담은 작품들을 출간한다. 프랑스의 유명 문학 출판사 쥘리아르의 대표 바네사 스프링고라는 자신이 약 30년 전 실제로 겪은 성착취 관계를 자전적 소설 <동의>에 담았다. 스프링고라가 V,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르노도상 수상자인 문단 권위자 가브리엘 마츠네프가 G다.
<동의>에 담긴 1970~1980년대 프랑스 예술계는 예술적으로는 한없이 진보했으나, 아동 인권에 관해서는 한없이 후퇴한 사회다. 1977년 미성년자와 성인 사이의 성관계를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공개서한인 ‘어떤 소송에 대해’가 ‘르몽드’지에 발표됐다. 롤랑바르트, 질 들뢰즈, 시몬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 등이 여기에 이름을 올리고 이 주장을 지지했다. V는 G와의 관계가 괴로워지기 시작하자 이 마음을 G의 멘토인 철학자 에밀 시오랑에게 털어놓는데, 에밀 시오랑은 “G가 당신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예”라며 “(당신 역할은) 그의 변덕에 맞춰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의>에 담긴 1980년대 프랑스 예술계는 믿고 싶지 않을 정도인데, 2010년대에도 여전히 믿고 싶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G의 소아성애 행위는 잘 알려져 있지만, 2013년 르노도상 수상 당시 성 윤리와 관련된 약간의 잡음만 있었을 뿐이다. <동의>는 과거 상처에 대한 자기고백이자 쉽게 변하지 않는 문단의 모습을 폭로하는 소설이다. 한국 문단 내 성폭력 사건들을 떠올리면,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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