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세 손가락 경례
[경향신문]
쿠데타가 일어난 미얀마의 시민들 사이에서 ‘세 손가락 경례’가 번지고 있다. 하늘을 향해 펼치는 검지·중지·약지는 선거, 민주주의, 자유를 뜻한다.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세 손가락 경례엔 저항의 뜻이 담겼고, 세 손가락 사진이나 그림이 ‘미얀마는 민주주의를 원한다’ ‘시민불복종 운동’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지고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지난해 태국 민주화 시위 때도 쓰였다. 시민들은 군부가 제정한 헌법 개정, 의회 해산과 총리 퇴진, 왕실 개혁 등을 요구하며 세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한 시위 참가자가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경찰의 물폭탄에 맞서는 사진이 전 세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태국에서는 2014년 군부 쿠데타 때 세 손가락 경례가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태국 민주진영의 상징처럼 각인됐다.
세 손가락 경례는 영화 <헝거 게임: 판엠의 불꽃>(2012년)에서 차용된 것이다. 가상국가 ‘판엠’의 독재정부 캐피털은 반란 지역인 12개 구역에서 12~18세 청소년들을 뽑아,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도록 하는 헝거 게임을 매년 치르게 한다. 16세 소녀 캣니스 에버딘이 여동생을 대신해 헝거 게임에 나서자, 주민들은 지지 뜻으로 세 손가락을 펼쳐보인다. 캣니스는 완결편인 4탄에서 혁명군의 중심이 돼 독재정부를 무너뜨린다.
세 손가락 경례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저항운동 방식이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에선 냄비와 깡통을 두드리며 “민주주의”를 외치는 ‘발코니 시위’가 벌어지고, 태국에선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풍자하는 노란색 오리보트가 등장했다.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는 아르헨티나 시위는 녹색 머플러와 옷이 물결을 이뤘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 시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 등 5대 요구사항을 뜻하는 다섯 손가락을 편 채 행진했으며, 일부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해 저항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섰다.
복잡한 인간사, 시위 없는 세상은 없다. 그나마 이러한 창의적 시위는 물리적 충돌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소리 없는 저항이지만, 어떤 구호나 함성보다 파급효과가 클 수 있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