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찾아 마을에 간 북극곰, 인간의 위협을 피해 '판다'가 되기로 하는데.. [그림 책]
[경향신문]
눈보라
강경수 글·그림
창비 | 60쪽 | 1만4000원
눈보라가 치는 날 태어난 북극곰. 그래서 그의 이름은 ‘눈보라’다. 이름만큼이나 하얗고 빛나는 털을 가진, 새하얀 겨울왕국에서 제일 가는 사냥꾼. 이름 그대로 그는 눈보라 속에서 가장 ‘눈보라’답다. 하지만 전례없는 기후위기가 그의 일상을 위협했다. 빙하가 생기지 않으면서 바다로 사냥을 갈 수 없었다. 결국 배고픔에 못이겨 민가로 내려가는 ‘눈보라’. 그는 쓰레기통을 뒤지다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한다. 눈과 귀가 까만 얼룩무늬 곰. 사진 속 판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랑받고 있었다.
‘눈보라’는 한동안 그 사진을 본다. 그때 쓰레기통을 뒤지던 그를 발견한 한 꼬마가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북극곰이다!” “다시는 이곳에 얼씬 거리지 마!” 아이들은 돌을 던졌고, 사냥꾼은 총부리를 겨눴다. 허둥지둥 도망치던 ‘눈보라’는 진흙탕에 굴러 떨어진다. 힘이 쭉 빠진 채 흙범벅이 된 팔을 내려다보던 ‘눈보라’.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검은 흙을 한 움큼 집는다. 판다가 되기로 한 것이다.
“우리 마을에 귀한 동물이 왔구나!” 고작 한 줌의 흙을 발랐을 뿐인데 사람들 반응은 달라진다. 돌을 던지는 대신 먹을 것을 주기 시작한다. ‘눈보라’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하지만 내가 나일 수 없는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어지는 포옹과 손길에 진흙은 벗겨지고, 사람들 표정은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북극곰이 우리를 속였어!” 때마침 내리는 눈보라에 세상은 하얗게 변하고, 사냥꾼의 총알은 ‘눈보라’의 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그의 목숨을 살린 건 검은 진흙도 사람들의 환대도 아닌 눈보라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기후위기에 터전을 잃은 북극곰 이야기, 민가에 위협을 가하는 굶주린 북극곰 이야기, 인간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판다 이야기까지…. <눈보라>는 어딘지 익숙한 이야기의 조각들을 북극곰 ‘눈보라’의 일생으로 엮어낸다. 안전한 집과 친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얼굴을 한 북극곰은 기후위기와 나다움이라는 두 개의 주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녀석도 이번에 혼났으니 사람들 곁으로 안 올 겁니다. 영원히.” 눈보라 속으로 사라진 ‘눈보라’를 보며 사냥꾼이 말한다. 하지만 이 눈이 모두 그치고 난 뒤에도, ‘눈보라’는 민가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책장을 덮는 순간 머리를 맴도는 질문의 묵직함에 이 책의 진가가 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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