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금' 넘어 실질적 소득손실 보전책 나올 수 있을까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2월29일 한 방송에 출연해 “이번에는 집중적인 피해를 입은 계층을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맞겠다고 판단해 선별 지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집합금지·영업제한을 당한 소상공인(직원 5인 미만)에게 각 300만원과 200만원, 매출이 감소한 일반업종(연매출 4억원 이하) 소상공인에게는 100만원을 지급하는 3차 재난지원금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 말을 들으면서 과연 그가 생존의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과 고용 취약계층의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는지 의심스러웠다. ‘위로금’ 수준은 되겠지만, 두텁기는커녕 그들이 코로나19로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는 줄곧 예산을 담당해온 정통 재정관료 출신이다. 재정관료들은 재정이 국가경제의 마지막 보루라는 신념으로 재정을 최대한 아껴 써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뿌리박혀 있다. 그러나 재정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의 삶을 보호하는 것인 만큼, 지금 같은 경제위기 시기에는 중기적인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 재정 여력이 다른 주요국보다 나은 편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재정은 튼실하게 유지했으되 국민의 삶은 피폐해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미래 상황을 대비해 재정을 아껴둬야 한다는 접근법은 오히려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이 버티다 못해 직원들을 내보내거나 빚더미에 올라앉고 결국엔 문을 닫는다면, 바이러스가 잡힌다고 해도 많은 이들이 재기 불가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대형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뚝 떨어졌고, 출산율까지 곤두박질쳤다. 위기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경제활동에서 퇴출되거나 빈사 상태에 빠진 이들이 많았던 데 기인한다. 어떻게든 이들이 경제활동의 끈을 놓지 않고 버텨낸 뒤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국가가 ‘산소호흡기’를 대줘야 하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들이 지난해부터 천문학적인 돈을 푸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세 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풀었다. 그러나 주요국들의 코로나19 대응 재정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4~16%대인 데 견줘, 우리는 3.4%에 그쳤다.
일각에선 우리는 방역에 성공해 재정 소요가 적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처럼 방역에 성공한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만 해도 코로나19 대응 재정지출이 국내총생산의 16.2%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 집계를 보면, 오스트레일리아의 관련 재정지출액은 2180억달러(약 244조원)로 우리나라(560억달러)보다 3.9배나 많다. 인구가 2500여만명으로 우리의 절반 수준인데도 그렇다. 이런 영향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부채 비율(국내총생산 대비)은 2018년 41.7%로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60.4%, 올해는 70.2%로 치솟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차이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철학이 많이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콧 모리슨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최근 연설에서 “정부는 올해도 국민의 주머니에 더 많은 돈을 계속 넣어줄 것”이라며 “이는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번 소득을 더 많이 보호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사업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계층과 취약계층이 주로 자기 주머니를 털거나 빚을 내야만 겨우 버틸 수 있는 우리의 현실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복지제도를 확충해왔다. 그러나 지금처럼 작은 재정 규모 아래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이 선진국으로 분류한 35개국 중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수입 비율은 지난해 22.9%로 꼴찌에서 세번째다. 재정의 파이를 키워야 이런 위기 때 제대로 쓸 수 있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셈이다.
재정의 파이를 키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조세수입, 다른 하나는 국채 발행이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 규모가 작다. 지금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기는 어려운 만큼 당장은 국채를 더 발행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위기가 지나간 뒤 조세수입을 늘려 국채를 갚아나가면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 주요국도 다 이런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해 돈을 풀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정공법을 회피하려 하니 해법이 꼬이는 것이다. 평상시 같으면 지출구조 조정 등으로 임시변통할 수도 있지만, 이런 대형 위기 시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런 중장기 계획까지도 함께 내놔야 재정당국을 설복할 수 있고, ‘큰 정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1~3차 재난지원을 하면서 이미 피해계층에 대한 지원 방식의 큰 틀은 갖춘 상태다. 다만 지원금 규모가 충분치 못하고,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설 연휴를 전후로 청와대와 여당이 중심을 잡고, 코로나19로 손실이 큰 계층의 삶을 보듬을 수 있는 대책의 큰 얼개를 내놓기를 기대한다.
박현 경제팀 선임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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