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비하' 도쿄올림픽 위원장, 사과하다 또 역풍 자초

"최근 여성 얘기 듣지 않아 몰라" 무성의로 일관 
日 언론·SNS서도 모리 위원장 사퇴 요구 확산
올림픽 회의론 속 악재로 日 정부 진화에 부심
"일본은 신의 나라" 등 과거 망언들도 다시 부각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이 4일 여성 폄하 발언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 도중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기자: 올림픽 정신에 반한 발언을 한 조직위원장이 적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리 위원장: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기자: 적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리 위원장: 그럼, 그렇게 알아두겠다.

여성 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된 모리 요시로(森喜朗)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의 4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과 오간 문답이다. '여성이 많으면 (말이 많아) 회의 시간이 길어진다'는 발언에 대한 국내외 비판을 무마하려 급히 마련한 사과 회견에서 짜증 섞인 태도와 냉소적 답변으로 사과는커녕 역풍만 커졌다. 전 세계에 '도쿄올림픽의 얼굴'로 내세우기엔 부적격한 인물임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모리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올림픽 정신에 반하는 부적절한 표현"이라며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사임 요구에 대해선 그럴 생각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여러분들이 방해라고 말한다면 성가신 노인이 대형 쓰레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쓸어주면 된다"고 답했다. 올림픽 개최에 대한 비판이 강해질 수 있다는 지적에는 "걱정해줘서 고맙다"며 성의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또 기자가 "여성의 말이 길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최근 여성의 얘기를 듣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답했고,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지자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 (분위기를) 웃기게 만들고 싶어서 묻는 거냐"라며 되묻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모리 위원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아사히신문은 5일 사설에서 "올림픽 회의론이 국내외에서 확산하는 상황에서 개최에 결정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 폭언이자 망언"이라며 사퇴를 요구했다. 마이니치신문도 "도쿄올림픽을 이끄는 책임자로서 실격"이라고 비판했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모리 위원장이 문제의 발언을 철회했지만 그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모리 위원장의 발언을 비꼰 '분별 없는 여자'라는 해시태그가 급속히 확산됐다. 그가 문제의 발언 당시 올림픽조직위원회의 여성 위원들을 '분별 있다'고 했는데, 남성 중심 조직에서 의견을 적극 개진하기 보다는 조용히 있는 여성들을 이 같이 평가한 것에 항의 표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좀처럼 올림픽 분위기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정부도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올림픽의 중요한 이념을 생각할 때 있어서는 안 될 발언"이라고 말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모리 위원장이 발언을 사과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이 문제는 종료됐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했다. 그러나 거취 여부에는 언급을 삼가고 있다.

개최도시인 도쿄도까지 불똥이 튀었다. 모리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항의전화가 5일 정오까지 200여통이 잇따랐고 관객 안내 등을 맡은 자원봉사자 중 일부는 사퇴하겠다는 의향을 전달했다.

모리 위원장의 과거 발언도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총리 시절인 2000년 5월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총리 퇴임 후 2003년엔 "아이를 한명도 만들지 않은 여성을 세금으로 돌봐주는 것은 이상하지 않느냐"고 해 비판을 받았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