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반대에 美-中 갈등까지..험난했던 WTO 총장 선거
'현직 통상 장관' 타이틀..적극 나섰지만
EU 못 잡고, "징용 제소 불리" 日도 반대
美-中 표심 달라 선거는 교착 상태 돌입
정부 "향후 WTO 논의 능동적으로 참여"
[세종=뉴시스] 김진욱 기자 =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세계무역기구(WTO) 총장 후보에서 결국 사퇴했다. 회원국은 후보자 2인(유명희 본부장-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전 나이지리아 재무부 장관)을 두고 지난해 11월 이후 합의를 미뤄오던 상황이다.
WTO 리더십 공백 장기화를 막고, 빨리 제 기능을 찾을 수 있도록 유명희 본부장이 용단을 내렸다는 평가다. 지난해 6월 출사표를 던진 뒤부터 약 7개월에 걸친 유명희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선거전을 되짚어봤다.
유명희 본부장은 지난해 6월24일 WTO 사무총장 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브라질 출신의 호베르토 아제베두 전 WTO 사무총장이 임기를 1년가량 앞두고 개인 사정을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아제베두 전 사무총장이 당선됐던 2013년 경선에 정부는 박태호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후보로 지명한 바 있다.
박태호 전 본부장은 WTO 사무총장 경선 제2차 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고배를 마셨지만, 그를 꺾고 올라간 아제베두 전 사무총장의 뒤를 이을 사람을 뽑는 자리에 유명희 본부장이 후보로 나서면서 관가 안팎의 큰 기대를 받았다.
유명희 본부장은 '현직 통상 장관' 타이틀을 내세웠다. 25년간 통상 분야에서만 전문성과 경험을 쌓은 통상 외길 전문가라는 이력을 무기로 내세웠다. 통상 경력은 응고지 후보의 약점으로 꼽혀 유명희 본부장에게 충분한 메리트가 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저지에 성공한 국가의 고위 관료로서 K-방역 경험을 적극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점도 경선에 도움이 됐다는 전언이다.
청와대와 정부도 유명희 본부장의 지원 사격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등 각국 정상과 통화하며 유명희 본부장의 지지를 당부했다. 별도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외교부는 각국 재외 공관을 동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명희 본부장의 대면 유세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공관 차원에서 선거를 지원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응고지 후보의 반격도 만만찮았다. 나이지리아 출신이지만,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개발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세계은행(WB)에서 25년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의 인지도가 탄탄했다.
여러 주요국의 지지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 당부에도 불구하고 유럽 연합(EU)은 응고지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표면적 이유로 '아프리카 대륙과의 상호 신뢰 구축과 WB 근무 이력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을 내세웠지만, "나이지리아 출신 개발 경제학자에게 힘을 실어 난민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복안"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은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복수의 일본 관료는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응고지 후보를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조율하고 있다" "유명희 본부장이 당선될 경우 (한-일 무역 갈등 관련 WTO 제소) 분쟁이 공정하게 처리될지 불안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유명희 본부장은 2019년 "일본 기업은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라"고 한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수출 규제 강화로 대응한 일본을 한국 정부가 WTO에 제소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WTO 사무총장이 되면 개별 국가 간 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지만, 일본은 유명희 본부장이 당선되면 자국에 불리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은 유명희 본부장을, 중국은 응고지 후보를 지지하면서 WTO 사무총장 선거는 제2의 미-중 갈등으로 격화했다. 세계 최강대국인 두 국가가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면서 WTO 사무총장 선거가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다.
당시 WTO는 "회원국 간 의견을 모은 뒤 2020년 11월9일 일반 이사회 회의를 열고 차기 사무총장을 추대하겠다"고 했지만, 계속된 논의에도 의견은 합치되지 않았다. WTO는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일반 이사회 회의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했지만, 당시에는 사상 최초로 회원국별 투표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관세율을 인상하고, 중국이 보복 조처로 맞붙었던 2018년의 전쟁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면서 "일각에서는 한국이 WTO 사무총장 선거에 뛰어드는 것 자체가 '독이 든 성배'를 쥐는 것과 같다는 평가까지 내놨다"고 했다.
정부는 WTO 사무총장 후보 중도 퇴진을 결정했지만, 향후 이뤄질 WTO 논의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명희 본부장은 "WTO 사무총장 선거 최종 라운드까지 진출하는 과정에서 다자 무역 체제를 바탕으로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에 많은 회원국이 긍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이번 선거를 통해 더 높아진 대내·외 기대치에 부응하면서 한국의 국가적 위상을 계속 드높이겠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tr8fw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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