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리호', 속도감·연기력이 다 했다.. 상상력·참신함은 '글쎄' [리뷰]

[경향신문]

영화 <승리호>의 한 장면.사진·넷플릭스 제공

2092년, 숲이 사라지고 사막이 지구를 뒤덮었다. 토양 산성화로 지구에서는 식물이 자취를 감췄다. 다국적 우주개발 기업 UTS는 위성 궤도에 인류의 5% 정도만 살 수 있는 인공행성을 띄웠다. 나머지 인류는 황폐화된 지구에서 목숨만 겨우 이어가는 ‘3등 시민’이다. 인공행성 주위에는 돈을 벌기 위해 우주선을 개조해 우주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우주해적들이 돌아다닌다. 2월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인 공상과학(SF) 영화 <승리호>의 배경이다.

<승리호>는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다. 주인공은 송중기(태호 역), 김태리(장선장 역), 유해진(업동이 역), 진선규(타이거 박 역) 등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들이다.

SF라면 <스타워즈> 시리즈와 <인터스텔라>를 먼저 떠올리는 관객들에게 한국어가 들려오는 SF 영화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승리호>는 독특한 설정과 정교한 컴퓨터그래픽(CG)으로 초반부부터 영화에 어색하지 않게 몰입하게 만든다. 장선장, 태호, 타이거 박, 업동이는 우주 쓰레기 수거선인 ‘승리호’ 선원들이다. 승리호가 다른 수거선들과 경쟁을 벌이며 위성과 우주 건축물 사이를 질주하는 초반 비행신이 볼 만하다. <인터스텔라>처럼 우주공간을 극사실적으로 재현하지는 못했어도, <스타워즈> 같은 속도감은 잘 구현해냈다. 2일 기자간담회에서 조성희 감독은 “우주공간에서 닿는 빛의 느낌이 어떻게 하면 자연스러운가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이어 “우주선의 속도를 너무 빠르게 하면 작고 가벼워 보이고, 너무 느리게 하면 저희가 원하는 박력이 없어져 그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의 연기력 덕에 한국형 SF는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특히 유해진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유해진은 <스타워즈>의 안드로이드로봇 R2D2를 연상케하는 안드로이드로봇 업동이를 맡았다. 대사만 덧씌운 것이 아니라 모션 캡처 기술을 통해 몸짓 일부도 연기했다. 유해진의 익살스러운 캐릭터가 로봇에 훌륭하게 입혀져, 업동이가 나오는 장면마다 일단 웃게 된다. 유해진은 “딱히 참고로 한 해외작품이나 캐릭터는 없다”며 “그냥 부딪혀보는 게 항상 답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특유의 상상력과 참신함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배경은 근미래지만, 영화 기저에 깔려있는 것은 한국적 신파라 할 만한 가족애와 따뜻한 감성이다. 승리호 선원들은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 하나씩을 품고 있다.

<승리호>는 지난 여름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지연되다가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김태리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일단 관객들을 만나게 돼 행복하다”며 “집에서 보실 때 마치 영화관처럼 사운드를 빵빵하게 키워서 봐달라”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