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왕' 신춘호 농심 창업 56년 만에 경영서 손 뗀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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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 신춘호 농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56년간 농심 등기이사직을 수행했던 신 회장 대신 이 부사장을 넣은 것이다.
이에 신 회장은 사명을 롯데공업에서 농심으로 바꿨다.
1980년대 출시된 농심의 주요 라면과 스낵은 대부분 신 회장이 기획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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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 신춘호 농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농심을 창업한지 56년 만이다.
5일 농심(004370)은 다음달 25일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신동원 부회장과 박준 부회장, 이영진 부사장을 사내이사 후보로 올렸다고 밝혔다. 56년간 농심 등기이사직을 수행했던 신 회장 대신 이 부사장을 넣은 것이다. 신 회장의 사내이사 임기는 다음달 16일 만료된다.
호적상 1932년생으로 기록돼 있는 신 회장은 실제로는 1930년 울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는 형제 사이다.
일본 롯데에서 일하다 신격호 명예회장과 마찰을 빚은 그는 1965년 한국에서 롯데공업을 창업해 롯데라면을 출시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은 사업이 겹친다는 이유로 동생의 라면사업 진출을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이에 신 회장은 사명을 롯데공업에서 농심으로 바꿨다.
당시 일로 두 형제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 신춘호 회장이 빈소를 찾지 않을 정도였다. 그를 대신해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이 자리를 지켰다.
미디어 노출을 꺼리는 '은둔형 경영인'이었던 신춘호 회장은 마케팅 감각과 기획 능력이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0년대 출시된 농심의 주요 라면과 스낵은 대부분 신 회장이 기획한 작품이다. 너구리(1982), 안성탕면(1983), 짜파게티(1984), 신라면(1986) 등은 장수식품으로 농심의 기둥이 됐다. 1985년 국내 라면·스낵 업계 1위에 올라선 농심은 그 후로 왕좌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해외 수출에도 적극적이었다. 라면을 처음 수출한 것은 1971년. 창업 6년 만이었다. 1981년엔 일본 도쿄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했다. 1996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공장을 세웠다. 2005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공장을 지었다. 지금은 미국에 제 2공장을 짓고 있다.
농심의 라면 수출액은 2004년 1억달러를 넘었고, 2015년엔 5억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농심은 전체 매출의 약 40%인 1조1000억원을 미국과 중국 등 해외에서 기록했다.
신 회장은 슬하에 3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농심을, 차남인 신동윤 부회장은 율촌화학을, 삼남인 신동익 부회장은 메가마트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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