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수생 9년만에 최대..입학도 하기전 또 수능준비

김제림,문광민,고민서 2021. 2. 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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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만명 9년만에 최대, N수생 중 55.7% 차지
올해 원격수업 지속..약대 모집에 반수 더 늘듯

◆ 코로나發 대학위기 ① ◆

서울 시내 한 대학교 취업정보센터 게시판에서 학생이 취업정보를 휴대폰으로 찍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졸업생 취업이 더욱 어렵게 되자 신입생들도 `반수`를 위해 자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지난해 부산의 한 사립대 공대계열에 진학한 A씨(21·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봤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도 못 하고 원격수업을 하는데, 전공 교수는 원서 번역 등 과제만 잔뜩 내줬다고 한다. 선배들이 진행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없었고 입소했던 기숙사 역시 인근에 확진자 발생으로 2주 만에 퇴소했다. 학과 동기들과는 며칠밖에 안 된 등교일에 인사를 나눈 정도가 고작이다. A씨는 "1학기에 학교 간 날이 채 한 달도 안 돼 여름방학 때 반수를 결심했다"며 "고3 때 생각했던 서울권 대학으로 지원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부권 한 대학의 행정학과 B교수는 작년 여름방학 때 신입생 전원에게 전화를 돌렸다. 원격수업에 실망한 신입생들이 대거 '반수'를 결심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치러진 2021학년도 수능에서 대학 한 학기 수강 후 대입에 재도전한 '반수생'이 7만90명으로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부실해진 대학 교육에 실망한 학생들이 상위권 학교나 전공을 바꿔 진학하려는 수가 늘어나서다. 학령인구 감소로 '정원 미달' 쇼크를 받은 대학들이 '신입생 대거 자퇴'까지 맞게 돼 등록금 수입 등 재정 부족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5일 매일경제가 종로학원하늘교육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작년 수능에서 N수생 응시자 12만5918명 중 반수생 비율은 55.7%로 전년 49.8%보다 늘어났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전체 응시생은 급감하는데 반수생은 오히려 증가했다"며 "올해(2022학년)도 코로나19 지속에 따라 약대가 통합 6년제로 모집해 반수생이 더 늘어나 대학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13년간 등록금 동결로 재정 부족을 겪고 있는 대학가는 자퇴생 막기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 주요 10개 대학 자퇴생은 2010년 2179명에서 2019년 4014명으로 10년간 1.8배 증가했다.

[김제림 기자 / 문광민 기자]


"대학인가 백수 양성소인가"…취포족 된 20대의 한숨

꿈·진로 사라진 상아탑

대학 나와도 37%는 놀아
문과·지방 국립대는 더 암울

취업률 비교적 높은 이공계도
의대·치대로 갈아타려고 재수

전문가 "지식만 전달해선 안돼
과감한 산학협력·현장 교육을"

경북의 한 사립대학에서 어문계열을 전공했던 배지영 씨(가명)는 작년 2월 졸업했지만 여전히 '취업준비생' 신분이다. 그동안 인턴부터 신입 공채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기업에 지원했지만, 단 한 곳도 최종 합격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달부터 부모님 권유로 공인중개사 시험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대학 4년을 다니며 학점도 잘 받았는데, 백수로 지내게 돼 등록금을 대준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라며 "취업이 1년 이상 안 되니 낙오자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원격수업 장기화로 대학이 '실업자 양성소'로 전락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대학을 나와도 10명 중 4명은 취업하지 못하는데, 코로나19로 채용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대학교육 무용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침체된 경기 탓에 기업이 신입 공채 대신 상시·경력을 선호하는 구조적인 채용 변화를 대학교육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식 전달 위주의 대학교육이 전면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대학 간판'만 내걸고 신입생을 유치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5일 교육 통계 서비스에 따르면 4년제 일반대학 취업률(2019년 말 기준)은 63.3%로, 전년보다 0.9%포인트 떨어졌다. 코로나19로 뒤덮였던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60%도 넘기지 못할 것으로 대학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대학 졸업장을 받고도 10명 중 4명은 백수로 전락한다는 얘기다.

특히 졸업생 500명 이상인 전국 4년제 대학 156곳 중 취업률이 80%를 넘는 곳은 단 3곳뿐이다. 70%대인 대학도 24곳에 그치며, 나머지 129개 대학은 취업률이 60%를 밑돈다. 부산대, 경북대 등 지방 거점 국립대는 평균 취업률이 57.4%다. 전공별로 보면 의약계열이 84.4%로 가장 높고, 공학이 67.0%로 평균을 웃돈다. 반면 인문계열 취업률은 평균 55.6%에 불과하다.

취업률 하락이 학생들의 '대학 외면'에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재수학원 관계자는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 자연·공학계열 학생도 지방 의대·치대·한의대(의치한) 입성을 위해 재수·삼수하는 것이 일반화된 현상"이라며 "공대 출신이 문과보다 취업은 잘되지만, 공대도 취업 시장에서 뜨는 곳과 지는 분야가 나뉘어 신입생이 반수에 나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입생 반수' 움직임은 서울 명문대도 지방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 간판' 갈아타기가 여의치 않은 학생들은 전공 공부는 포기하고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이나 공인중개사 등 자격증 취득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해 말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대학생·취업준비생 1962명을 대상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 여부를 묻는 설문에 응답자 가운데 37.4%가 '그렇다'고 답했다. 취업준비생만 보면 과반인 51.4%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대학교육을 외면하는 학생을 줄이려면 4년간 학점을 이수하는 교육 방식보다 취업에 도움이 될 실질적인 교육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장범식 숭실대 총장은 "대학이 학생 취업과 직업 활동에 도움을 주려면 지식 전달 방식을 바꿔야 한다"면서 "상경계열이라면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펀드매니저에게 자산 운용 방식을 직접 배우는 등 전문가 그룹을 활용한 직무 역량 강화 수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청 한양대 석좌교수는 "교수들이 자기 전공과 과목 체계를 그대로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부터 벗어나야 한다"며 "예를 들어 역사학과라고 하면 역사 콘텐츠 전달자 등을 키우는 식으로 커리큘럼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외국 대학처럼 각 전공에서 일정 기간 실무 경험을 거치면 '기술사'라는 자격증을 부여해 프로젝트를 맡기고 연륜이 쌓이면 권위와 대우를 보장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학생들이 대학 전공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 /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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