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지역 들어가면 현금청산.."서울 222곳 피해 집 사란 말이냐"
투기와 무관해도 대책일 이후 매입하면 사실상 '수용' 당해
예정지 원주민도 집 못팔아 이사도 못가..재산권 침해 우려
빌라 등 거래 직격탄..강남 재건축·신축으로 수요 몰릴듯
“집을 사려면 공공 주도 개발 가능성이 없는 비싼 신축 아파트나 강남 재건축밖에 선택지가 없다.”
“개발 예정지에 집을 보유한 사람은 개발이 끝날 때까지 옴짝달싹하지 말라는 말이냐.”
정부가 ‘2·4 부동산 대책’을 통해 ‘거래 제한법’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강도 높은 투기 억제책을 내놓자 인터넷 부동산커뮤니티 등에서는 원성이 쏟아졌다. 정부가 지난 4일 이후 부동산 매수자에게는 공공 주도 개발 이후 우선공급권(입주권)을 주지 않기로 한 건 과하다는 것이다. 투기 수요와 실수요 구분 없는 규제이기 때문이다. 재산권 침해와 위헌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정부가 급하게 대책을 준비하면서 파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 소유자와 예비 매수자 모두 피해”
이번 투기 방지 방안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대거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 이후 산 아파트 등 부동산이 향후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등에 포함되면 개발이 이뤄진 이후 무조건 현금청산되기 때문이다. 매입 당시 정비사업과 무관한 실거주 목적의 주택이어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당장은 아니지만 몇 년 뒤 공공 주도 개발이 추진될 수도 있어 매수자는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전·월세를 살고 있는 무주택자들이 집을 사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워졌다는 얘기다.
재개발 가능성이 있는 곳 등의 주택 소유자도 피해를 보게 됐다. 매수 수요가 사라지면서 집을 팔기가 어렵게 됐다. 환금성이 떨어지면 시세도 내릴 수 있다.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한 무주택자는 “예상 개발지역 222곳이라도 피해서 집을 사야 할 상황”이라며 “아파트 전세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 빌라를 사서 이사를 가려는데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러도 하반기에나 사업지 지정이 이뤄질 텐데 그 전까지는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 손발이 완전히 묶인 셈”이라며 “예비 매수자들이 전·월세로 남아 임대차 시장의 수급불균형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공공 주도 개발 가능성이 낮은 곳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나 이미 개발을 끝낸 신축 아파트에 매수세가 쏠릴 수 있다는 얘기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당장은 아니지만 몇 년 뒤 공공 주도 개발 대상지가 될 수 있는 일반 아파트를 사기도 꺼려질 수 있다”며 “가뜩이나 ‘똘똘한 한 채’로 심해진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산권 침해 논란 커질 듯”
법조계와 학계 등에선 재산권 침해 등 위헌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쟁점은 소급 적용 여부다. 기존 재건축 및 재개발에선 조합이 설립된 주택을 구입해도 무조건 현금청산되지는 않는다. 재개발은 관리처분인가 이후 매입한 경우에만 신축 입주권 부여가 제한된다. 반면 2·4 대책에선 4일 대책 발표일 이후 모든 구매자를 잠재적 현금청산 대상자로 정했다.
집을 매도하려는 원주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도 문제다. ‘물딱지’(입주권을 받을 수 없는 주택)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택을 사려는 수요가 얼어붙어 원주민의 재산권 행사가 제한받는다는 설명이다. 기존 집을 팔고 이사할 수가 없어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막을 수 있다.
계약 시점 등을 둘러싼 혼란도 예상된다. 대책 발표 전 가계약을 맺고 대책 발표일 후 본계약 체결이 예정된 경우에도 현금청산 대상자가 되는지 등에 대한 해석이 분명하지 않다. 김향훈 법무법인 센트로 대표변호사는 “실거주 목적의 수요자까지 전부 투기세력으로 보고 일괄적으로 현금청산하는 것은 명백한 재산권 침해”라며 “경과 규정을 마련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우선공급권 부여 제한 시점은 대책일 이후가 아니라 사업지 지구 지정 이후 등으로 세부 시행 지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투기 방지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손바뀜이 많이 일어난 지역은 주민 3분의 2 동의율을 채우기 어려워 공공 주도로 개발될 가능성이 낮다”며 “‘거래절벽’ 우려가 큰 만큼 입법 과정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정/신연수/전형진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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