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방한 기운..관객마저 압도하는 中미술

전지현 2021. 2. 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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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국력·문화적 자부심으로
자국 예술가 작품값 끌어올려
세계적 인지도 있는 작가는
체제 비판도 어느 정도 허용
웨민쥔 예술의전당서 개인전
현실 풍자한 '웃는 남자' 눈길
부산시립미술관, 中작가 3인전
톈안먼사태 비판 쑹둥 퍼포먼스
주진스·류웨이 작품 등 38점
소더비 경매에서 55억원에 낙찰된 웨민쥔 1995년작 `처형`. [사진 제공 = XCI]
중국 미술시장 규모는 13조5000억원(2019년 아트바젤 집계)으로 세계시장 3위(점유율 18%)를 지키고 있다. 반면 한국 미술시장은 4100억원(2019년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불과하다. 이 엄청난 차이는 중국의 막강한 자본과 국력, 문화적 자부심에서 비롯된다. 중국 부자들이 세계 경매에서 자국 예술가들의 작품값을 수십억~수백억원대로 끌어올리며 뒷받침해주고 있다.
웨민쥔 2010년작 매장
중국 정부도 미술품을 검열하면서도 어느 정도 창작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대표 작가 웨민쥔(59), 주진스(67), 쑹둥(55), 류웨이(49)가 수도 베이징에 살면서도 체제 비판적인 작품을 계속 만드는 배경이다. 뚝심 있게 호방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이들의 전시가 국내에서 열리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 작가 작품을 통해 중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웨민쥔 2013년작 눈빛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중국 현대미술의 사대천왕으로 꼽히는 웨민쥔의 국내 첫 개인전 '한 시대를 웃다!'(5월 9일까지)가 한바탕 펼쳐진다. 팬티만 입은 채 눈을 질끈 감고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고 있는 남자들이 대형 화면들을 꽉 채우고 있다. 가수 리쌍의 노래처럼 그들은 웃는게 웃는게 아니다. 1989년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천안문 사태의 비극을 지켜본 작가가 1990년대초부터 줄곧 그려온 세상에 대한 냉소다. 정치와 종교, 신념의 자유가 거세된 채 획일화된 군중을 강요당하는 중국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한다. 실제 작가 얼굴을 빼닮은 자화상이기도 하다.

웨민쥔은 "내 작품 속 인물은 모두 바보 같다. 그들은 웃고 있지만 그 웃음 속에는 강요된 부자유와 허무가 숨어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표현한다. 이들은 내 자신의 초상이자 친구의 모습이며 동시에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웨민쥔 2018년작 푸른 바다
작가의 분신들은 죽음 앞에서도 실없이 웃는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을 패러디한 1995년작 '처형' 속 인물들은 총살을 앞두고도 하얀 이빨을 드러낸 채 자지러진다. 중국 체제를 실컷 비웃은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2007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590만달러(약 55억원)에 낙찰되면서 당시 중국 현대미술 최고가를 경신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는 실물을 전사한 복제화가 걸려 있다.

2010년부터 그려온 죽음의 이미지 해골 그림들도 전시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웃는 얼굴 눈동자 대신 해골을 그리거나 웃는 얼굴을 해골의 텅 빈 두 눈에 넣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에 빠져 머리만 내놓은 러시아 공산당 창시자 레닌, 웃는 남자, 피카소 초상화, 배트맨,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도라에몽 등의 이상한 공존 그림도 눈길을 끈다. 백합 등 꽃이 핀 인물화들에서는 해탈의 경지 '일소개춘(一笑皆春)'을 보여준다. 한 번 크게 웃으니 온 세상이 봄이라는 뜻이다.

주진스 남과 북
주진스 쇠락하던 시대의 도약
이번 전시를 기획한 윤재갑 상하이 하우아트뮤지엄 관장은 "웨민쥔은 내가 나비일 수도 있다는 장자(송나라 사상가)의 사상에 경도돼 있다. 삶과 죽음이 순환되며, 내가 레닌이나 도라에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 폭이 넓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방탄소년단 RM(김남준)이 다녀가면서 화제가 된 전시장에는 동물과 사람 얼굴이 앞뒤로 붙은 청동 조각 '짐승 같은 인간', 도예가 최지만이 웨민쥔 작품 속 웃는 얼굴을 빚은 조각 등 100여 점으로 구성돼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중국동시대미술 3부작 '상흔을 넘어'(28일까지)는 쑹둥, 주진스, 류웨이 작품 38점을 펼쳤다. 세 작가 모두 반골 기질이 강하다.

쑹둥 `입김`. [사진제공 = 부산시립미술관]
쑹둥 가난한 자의 지혜_비둘기와 함께 생활하기
쑹둥은 1996년 1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벌인 퍼포먼스 '입김' 기록 사진을 걸었다. 영하 19도 날씨에 40분 동안 바닥에 엎드려 숨을 내쉬는 동작을 반복했다. 관객은 쑹둥의 부인과 인민해방군인 2명 뿐이었다. 쑹둥이 아무리 입김을 불어넣어도 광장에 영향을 줄리 없다. 한 개인의 지속적인 노력이 사회를 변화시키기에 역부족이라는 현실을 드러낸다. 재개발로 이사를 가야 하는 사람들을 찍는 '가족 사진관', 지붕 위 비둘기 집에 가난한 사람이 거주하는 '가난한 자의 지혜-비둘기와 함께 생활하기' 등은 중국의 급격한 경제 개발에 소외당한 사람들을 대변한다.

중국 아방가르드(전위예술) 1세대 주진수는 쌀종이 1만3200장을 일일이 구기고 펴서 남·북한의 상흔을 담은 길이 24m 대형 반원 모양 작품 '남과 북'을 설치했다. 엄청난 양의 밝은색 물감을 바른 추상화 '쇄락하던 시대의 도약'은 코로나19로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작품이다.

류웨이 `마이크로월드`. [사진 제공 = 부산시립미술관]
류웨이 반물질 세탁기
류웨이는 해체한 세탁기·냉장고·선풍기 부품으로 만든 설치 작품 '반물질 시리즈'를 통해 자본의 개방을 받아들인 중국의 물질주의를 풍자한다. 도시에 대한 철학을 담은 설치작 '마이크로월드'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이다. 신체 일부를 찍은 흑백 사진을 수묵화처럼 펼친 작품 '풍경'도 흥미롭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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