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 그늘에 갇혔던..'페미니즘 아이콘'의 삶과 사상
당시 보부아르는 스물한 살이었다. 최연소 합격에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그의 성취가 더 뛰어나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서로의 지성에 매혹돼 그들은 3개월 뒤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며 전무후무한 '계약'을 맺는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우리'의 관계는 '필연적인' 사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각자 '우연적인' 연애를 경험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요"라고 제안했다. 서로를 가장 중요한 상대로 여기되 자유로운 연애를 허용하자는 것이었다. 새 애인이 생기더라도 헤어질 필요가 없고, 모든 것을 숨김 없이 털어놓으면 됐다. 계약 기간은 애초 2년이었다. 하지만 공개적 연인 관계는 사르트르가 먼저 세상을 떠났던 1980년까지 장장 51년간 이어졌다.
보부아르의 저작 '제2의 성'(1949년)은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지금도 읽히고 있다. 이 책에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선언한다.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그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젠더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시대를 앞서 나간 그의 삶을 저자는 유년기부터 촘촘하고 세밀하게 그려 나간다. 보부아르는 1908년 파리에서 부르주아 집안의 두 자매 중 맏딸로 태어난다. 이름에 '드'가 붙는 것은 귀족 출신임을 뜻한다. 사회적 지위는 높았지만 한량인 아버지의 주식 실패로 집안은 서서히 몰락해 10대 시절에는 하인을 집에서 내보내기에 이른다. 상층 부르주아의 가장 확실한 몰락의 표시는 입주 하인을 둘 수 없는 것이었다.
집안이 기우는 사이 철학에 더욱 심취했고 소르본대에서 사르트르를 만났다. 처음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키가 160㎝도 되지 않는 데다 안경까지 쓴 괴팍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지낸 지 13일 만에 이렇게 일기에 털어놓는다. "사르트르는 나를 이해하고, 내다보고, 사로잡았다." 철학을 좋아하고 문학에 빠져 있었으며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마저 그림자처럼 똑같았다. 대화가 척척 통했다.
계약 결혼의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사르트르는 유려한 말솜씨로 외모 열등감을 극복해 나갔다. 그는 섹스보다 유혹을 더 좋아한 남자였다. 수많은 여성을 유혹하며 쾌감을 느꼈다. 보부아르도 7년간 동거한 남자가 있을 정도로 뜨거운 연애를 이어갔다. 그들은 동성과 이성을 오가며 편력을 보였고 때론 연인을 공유하기도 했다. 문제는 상대에게 새 애인이 생길 때마다 불거지는 질투라는 감정도 그렇지만 이 둘의 관계에 낀 '우연적인' 제3자들이었다. 그들은 사랑을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혼란스러워했고 세기의 '권력 커플'에게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했다.
하지만 둘은 사랑에 관해, 또 정치적 노선에서 다른 태도를 견지했다. 사르트르는 모든 인간이 타자를 지배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인간관계는 지배자 역할과 피지배자 역할로 나뉘고 이 갈등 속에서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상호적이고 평등한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사르트르가 소련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중국 마오주의를 옹호할 때도 보부아르는 선을 그었다.
시대가 갈수록 보부아르는 페미니즘의 선구자이자 아이콘으로 더욱 추앙받고 있다. 언젠가는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의 연인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올까.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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