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복붙' 사과..그마저 옥살이 피해자 외면한 채 언론에 뿌렸다

이재호 2021. 2. 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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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들
"고문경찰 고소해 책임 묻겠다"
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최인철(왼쪽)씨와 장동익씨가 4일 오전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꽃다발을 들고 있다. 오른쪽은 박준영 변호사. 연합뉴스

“이것은 언론플레이지, 사과가 아닙니다.”

경찰의 고문과 강압수사에 못이겨 허위자백을 하고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21년 옥살이를 한 최인철(60)씨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씨는 5일 <한겨레>에 “지난해 재심이 시작된 이후 단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경찰이 어제 재판 결과가 나오자 기자들을 통해 ‘사과문’을 낸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우리를 고문한 사하경찰서 (전직)경찰에 대해 ‘위증죄’를 묻고 손해배상금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4일 부산 사하구 낙동강변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 있던 30대 남녀가 가스총 등으로 위협당한 끝에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고, 달아나던 남성은 폭행당한 사건이다. 사건 당시 범인을 검거하는데 실패했던 부산 사하경찰서는 이듬해 11월 공무원 자격 사칭 등의 혐의로 붙잡아 조사하던 최씨와 장동익(63)씨가 범인이라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두사람의 2·3심 변호인을 맡은 사건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최씨와 장씨는 21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다 2013년 모범수로 석방됐지만 2017년 5월 억울함을 호소하며 부산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과정에서 두 사람이 경찰의 물고문 등 강압수사에 못이겨 죄를 허위자백한 사실이 확인됐고 법원은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장씨는 “당시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쇠파이프를 무릎 사이에 끼워 몸을 거꾸로 매달고 얼굴에 수건을 씌운 뒤 물을 부어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했다”고 말했다.

무죄 판결이 나오자 경찰청은 공식입장문을 내고 누명을 썼던 최씨와 장씨와 관련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경찰은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재심 청구인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 등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와 사과말씀 드린다”며 “당시 적법 절차와 인권 중심 수사 원칙을 준수하지 못한 부분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며, 이로 인해 큰 상처를 드린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이러한 사과에 대해 피해 당사자들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반발하며 고문 경찰을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씨는 “지난해 1월 재심이 시작될때 ‘경찰이 손 내밀면 잡을 용의가 있고, 용서할 수 있다’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는데 1년 동안 단 한번 연락이 없다가 이렇게 무죄 판결이 나오니 기사를 통해 사과하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다”며 “나에게 전화 한통 하지 않고 기사를 통해서 사과문을 보고 나서 오히려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최씨와 장씨 모두 경찰에서 ‘사과전화’를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고문 피해자인 장동익(왼쪽)씨와 최인철씨가 2017년 부산고법에 재심을 신청한 뒤 법원을 나오고 있다. 최인철씨 제공

경찰이 앞선 강압사건 사과문의 내용과 똑같은 내용을 ‘복붙’(복사+붙이기)한 부분도 피해자들의 화를 키웠다. 이날 경찰이 배포한 사과문을 보면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보호는 준엄한 헌법적 명령으로 경찰관의 당연한 책무다. 경찰은 이 사건을 인권보호 가치를 재인식하는 반면교사로 삼아 억울한 피해자가 다시는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앞으로, 경찰은 수사단계별 인권보호 장치를 더욱 촘촘히 마련하여 수사의 완결성을 높이고 공정한 책임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러한 내용은 지난달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54)씨가 무죄 선고를 받았을 때 내용과 똑같은 것이었다.

두사람의 변호를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앞서 약촌오거리 사건이나 강압수사로 허위자백한 사실이 밝혀진 사건이 수차례 있었지만 매번 경찰은 당사자에게 사과 한번 않고 기사를 통해서 피해자가 듣게 해왔는데 이런 사과는 안하니만 못하다”며 “매번 형식적으로 문제점을 확인하고 재발방지 힘쓰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뭐가 잘못됐는게 아직 모르는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사건 당시 고문을 지시하고 가담했던 경찰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변호사는 “약촌오거리 국가 배상 소송에서 당시 경찰과 검찰을 피고로 소송을 제기해 배상책임을 물었었다”며 “이번 낙동강변 살인사건 재심 과정에서 법정에 나와 고문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전직) 경찰 네명에 대해 위증을 문제삼아 고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우리를 고문하고 구속했던 경찰들이 당시 조사를 받았던 아내(4달)와 처남(6달)까지 위증죄를 뒤집어 씌워 구속시켰었다”며 “우리 가족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취재내용을 종합하면 당시 두사람의 고문을 지시·가담한 경찰관은 모두 다섯명이지만 모두가 퇴직하고 경찰제복을 벗은 상황이어서 경찰 내부에서의 징계 등 조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지나 고문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는 힘들지만 사건 해결의 공로로 특진한 내용이 있으면 특진을 취소하고 일부 연금액을 깎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해결한 공을 인정받아 특진한 경찰관은 한명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달 무죄 판결을 받은 윤성여씨를 강압수사하고 특진한 경찰에 대해서도 특진 취소 적용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윤성여씨 수사 경찰에 대해 검토중이고, 최씨와 장씨에 대해서도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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