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나가라" "못 나간다"..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 갈등 왜?

윤재영 기자 2021. 2. 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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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들 "환자 이송은 '이사', 치료 포기하란 것과 마찬가지"요양병원측 "고령에 기저질환자들..직원 퇴직도 문제"서울시 "환자 이송 가능한 병원 명단, 오늘 중 전달 계획"

"우리 환자 보호자는 한발자국도 이곳 행복요양병원을 나가지 않을 것임을 다시금 천명합니다. 아니 나갈 수가 없습니다."

5일 오전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 앞에 '감염병전담요양병원 지정을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요양병원 환자의 보호자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서울시가 '감염병전담요양병원'으로 지정한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감염병전담요양병원은 요양병원에서 코로나에 걸린 환자들만 맡아서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이번 3차 유행 때 요양병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는데 병상이 없어 환자를 이송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정부는 시도별로 미리 요양병원을 지정해 병상을 확보해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행복요양병원의 반대가 거셉니다. 서울시는 다가오는 15일까지 입원 환자 약 260명에게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라고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보호자들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입원 중인 한 보호자는 "요양병원 환자 한 명의 이송은 '이사'다. 제대로 치료를 받으려면 주치의, 간병인이 모두 따라가야 한다"면서 "갑자기 나가란 건 치료를 포기하란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보호자도 "근처 어느 병원으로 갈 수 있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무작정 옮기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5일 오전 강남구립행복요양병원 앞에 '감염병전담요양병원 지정을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병원도 부정적입니다. 요양병원은 일반 병원과 달리 환자 대다수가 고령에 기저질환자라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단 겁니다. 또 직원들이 대거 관두는 일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병원은 서울시를 최대한 설득해보고 협의가 잘 안 되면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반면 서울시는 단호합니다. 이미 지난해 말 구로 미소들요양병원 등에서 환자가 200명씩 쏟아져 나오는데 병상이 없어 손을 못 썼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리 병상을 확보해두지 않으면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면서 "보호자들의 안타까움은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이 공공병원인 점도 강조했습니다. 공공병원이 나서지 않으면 민간병원 협조를 얻기는 더 어렵단 겁니다. 서울시 측은 "서울의료원 등 시립병원은 이미 전담병원으로 운영되고 있고, 다른 시도도 공공병원이 먼저 나선다"고 말했습니다. 환자 모두를 옮길 수 있을 만큼 다른 요양병원에 자리가 남아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의 대처에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보호자들은 "한 번의 의견 청취나 협의도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는 겁니다. 서울시는 보호자들이 이미 거리로 나온 뒤인 오늘에서야 "환자들이 이동할 수 있는 병원 목록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이 일반적인 공공병원과 달리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장문주 행복요양병원장은 "일반 공공병원처럼 직원들이 공무원 신분인 것도 아니어서 대부분이 관둘 것으로 보인다"면서 "건물만 남게 되는 꼴"이라고 했습니다.

감염병전담요양병원 제도가 요양병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전병율 차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요양병원은 시설과 장비가 코로나 환자를 보기에 열악한 곳이 많다. 전문인력이나 시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운영한다면 사실상 환자를 관리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운영에 충분한 지원이 뒤따르는 것도 과제입니다. 앞서 먼저 전담요양병원으로 지정돼 운영을 준비 중인 구로미소들요양병원은 '정부 지원이 부족해 아쉽다'고 전했습니다. 파견 인력에 대해선 임금 지원을 해주지만, 기존에 남아있던 인력에 대해서 아무런 지원이 없단 겁니다. 윤영복 구로미소들요양병원장은 "병원 자체 재원으로 남은 인력들의 월급을 올려줬고, 음압기도 병원에서 알아서 사라고 하더라"며 아쉬워했습니다.

서울시가 병원을 비우라고 통보한 기한까지는 열흘이 남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서울시는 병원과 환자, 또 보호자와 소통이 필요해 보입니다. 단순히 빈 병상을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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