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감성여행] 철새들의 낙원, 끝없이 펼쳐진 순천만 갈대밭
순천만은 강물을 따라 유입된 토사와 유기물 등이 바닷물의 조수 작용으로 퇴적되어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전체 갯벌의 면적이 22.6㎢에 이르며 썰물 때에 드러나는 갯벌의 면적은 12㎢에 이른다. 순천의 동천(東川)과 이사천(伊沙川)의 합류 지점에서 순천만의 갯벌 앞부분까지 총면적 5.4㎢에 이르는 거대한 갈대 군락이 펼쳐져 있다. 오염원이 적어 다양한 생물이 풍부하게 발달되어 있으며, 흑두루미, 먹황새, 검은머리물떼새, 노랑부리저어새 등 220여 종의 보호 조류가 발견되어 국제적으로 희귀한 조류의 월동지이자 서식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은 지난 2003년 12월부터 습지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2004년에는 동북아 두루미 보호 국제네트워크에 가입하였다. 2006년 1월 20일에는 국내 연안습지로는 최초로 람사르 협약(국제습지조약)에 등록되었으며, 갈대밭과 S자형 수로 등이 어우러진 해안 생태경관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 6월 16일 문화재청에 의해 명승(名勝) 41호로 지정되었다.
무엇보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유명한 순천만을 방문하는 일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연안습지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해안에 있는 습지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순천만, 무안습지, 장도습지 등이 대표적인 연안습지다. 특히 순천만의 갯벌과 습지는 스스로 오염 물질을 걸러내기 때문에 아주 깨끗하다.
습지에는 갈대와 칠면초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순천만의 갈대 군락지는 전국에서 가장 넓고 이 갈대밭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생물의 종류도 500여 종이나 된다. 갯벌과 습지의 풍부한 먹이와 겨울의 찬 바람을 막아주는 갈대밭 덕분에 순천만은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 민물도요새 등 국제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철새들이 날아와 겨울을 나는 곳으로도 이름이 난 곳이다.
갈대는 환경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뿌리에서 나오는 산소는 미생물들이 좋지 않은 물질들을 분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잎과 줄기에 질소, 인, 염 등 오염 물질을 저장하여 주변 오염 물질의 농도를 낮추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순천만 인근 갈대밭으로 겨울이면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가 찾아온다. 그러나 흑두루미가 아무 이유 없이 이곳을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9년 전깃줄에 부딪힌 아기 흑두루미가 죽는 불상사가 있었던 이후로 순천시는 철새 보호 및 생태계 개선을 위해 전신주 제거 작업을 시행하였다. 농민들은 농사에 필요한 전기를 쓰려고 세워둔 전봇대와 전깃줄에 두루미 날개가 부러지는 등 사고가 잦자 2백 개가 넘는 전봇대를 모두 뽑아버려 위험을 줄였다. 뿐만아니라 두루미들이 겨우내 먹을 수 있게 수확한 낟알을 뿌려주기도 한다. 또 순천만 인근에는 흑두루미들이 낮에 와서 먹이 활동을 하며 편히 쉬는 공간도 있고 밤이면 불빛을 차단하고 소음도 막아주는 잠자리도 있다. 이렇게 순천시는 순천만을 생태도시로 보존하기 위해 주민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순천만 습지에 입장하면 왼쪽에 천문대가 있다. 천문대에서 낮에는 흑두루미, 청둥오리 등 다양한 철새들을 볼 수 있고, 밤에는 달과 멀리 있는 별 등을 관측할 수 있으며 천체에 관한 다양한 영상물을 관람하고 야광 별자리판, 앙부일구(옛날 해시계) 등을 만들어보는 등 재미있는 과학 체험 활동도 할 수 있다.
필자는 갈대숲 탐방로와 용산 전망대에서 일몰을 보려고 계획했기에 갈대숲 탐방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흑두루미 소망터널을 지났다. 이 터널은 소망패에 소원을 적어 소원을 비는 길로 만들어져 있는데 소망패는 체험선 매표소에서 구할 수 있다. 갈대숲 탐방로로 가기 위해 아치형 다리인 무진교를 건넜다. 무진교를 건너 테크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면 갈대숲을 만날 수 있다.
순천만 자연 생태관은 순천만의 다양한 생태 자원을 보존하고, 학자들의 연구와 학생 및 일반인들의 생태 학습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갯벌에서는 활발하게 폴짝폴짝 뛰는 짱뚱어와 함께 어울려 노는 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의 갯벌은 다른 곳과 달리 질어서 자칫 빠지면 위험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다.
갈대밭에 다다르니 그 넓이가 가히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갈대숲 탐방로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조금 멀리서 사진을 찍으면 테크길이 보이지 않고 사방이 온통 갈대로 무성한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김승옥 소설 <무진기행>이 떠올랐다. 문학소녀 시절 이 소설을 읽으며 무진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여 백과사전을 뒤졌던 기억이 있다. 호기심에 안개로 온통 뒤덮인 무진이라는 소설의 무대를 찾아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뒤져도 무진이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후일 어느 문학모임에서 <무진기행>의 무대가 바로 순천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그때의 반가움이란, 지금 생각해도 기쁨 그 자체였다. <무진기행>은 무진(霧津)으로 훌쩍 떠나온 주인공의 1인칭 서술 작품이다. 그런데 그 무대가 바로 순천만 갈대밭 일대라고 하니 참으로 오랜 시간을 돌고돌아 겨우 목적지에 온 느낌이 들어 감회가 새로웠다. 순천시는 이 소설을 기념하여 갈대밭 상류의 이사천 교량교에서 갈대밭 중심인 대대포구까지 약 3km의 둑길을 ‘무진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순천만의 엄청난 갈대밭에 갯벌까지 드러나면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을 연출한다. 한여름에는 갯벌에서 뻘배를 타고 짱뚱어를 낚는 어부들의 모습도 볼 수 있고, 겨울이면 2백여 종의 철새가 군무를 추는 장소이기도 하다.
바람을 막아줄 곳이 없는 이곳은 인정사정없이 추웠다. 계절이 12월 하순을 치닫는 시간이라 안 그래도 추운데 바람을 막아줄 것이 없는 허허벌판에 서 있으니 더욱 추울 수밖에……. 그런데 이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연인,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갈대밭 여기저기에 꽤 많이 흩어져서 아름다운 순천만의 모습을 눈으로 담고 있었다. 발길을 돌려 갯벌에 선명하게 나타나는 그 유명한 S자 물길과 지는 일몰을 보기위해 갈대밭을 나왔다.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은 특히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갈대밭 위로 지는 태양의 붉은 빛이 매혹적이다. 순천만의 일몰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11~12월에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 이유는 이때 공기 중의 수증기 양이 적어 일몰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용산 전망대에서 보는 일몰이 최고라고 들었기 때문에 전망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망대에 오르기 전에 이정표를 보니 정상까지 왕복 40분이라고 쓰여 있었다. 너무 늦으면 일몰을 볼 수 없고 내려오는 길도 어둑어둑하다고 해서 속도를 내어 걸었다. 길은 잘 닦여있었으나 경사가 있어서 빨리 걸으니 숨이 찼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하여 아름다운 일몰은 볼 수 있었으나 해수면이 150cm 이하가 되어야 볼 수 있다는 S자 물길은 보지 못했다. S자 물길은 음력 1일에서 5일, 15일에서 20일 사이에 가야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이 물길을 꼭 보고 싶다면 순천만 물때 시간을 사전에 조사하여 알아보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갯벌을 물들이며 서서히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저물어가는 2020년을 잘 보내고 다가오는 2021년을 잘 맞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고, 아울러 마음속으로 새해 소망을 기원하였다.
<글.사진 전정희 작가>
rea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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