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은 언제 끝날까..수학으로 통찰하는 사회현상 [책과 삶]

배문규 기자 2021. 2. 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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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
애덤 쿠차르스키 지음·고호관 옮김
세종 | 380쪽 | 1만9000원

전염병은 무엇 때문에 끝나는가? 100년 전만 해도 이유를 몰랐다. ‘감염될 사람이 없어서 전파가 끝난다’ 혹은 ‘전염병이 진행되면서 병원체의 감염성이 약해진다’는 설명이 나왔지만, 대부분 상황에 맞아떨어지진 않았다. 수학자 윌리엄 커맥과 역학자 앤더슨 매켄드릭은 어떤 수학 모형을 만들어 문제 풀이에 나섰다. 이 모형에서 전염병은 감염된 사람이 있을 때 불이 붙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감염 대상이 된다. 감염에서 회복된 사람은 그 질병에 면역이 생긴다. 인구는 무작위로 섞여 있고, 접촉 확률은 똑같다고 가정한다. 이 세 집단이 있는 수학 모형을 흔히 ‘SIR 모형’이라고 한다. 인구 1만명 집단에 인플루엔자 감염이 1건 발생했다고 하자. SIR 모형으로 시뮬레이션하면 처음 감염자는 1명이기 때문에 전염병이 커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50일이면 정점에 도달한다. 80일째가 되면 사실상 종료된다. 여전히 감염 대상이 2000명 정도 남았는데도 말이다.

코로나19 ‘집단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우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바로 ‘집단면역’이다. 초기에는 감염 대상이 많지만, 감염에서 회복되는 사람이 늘면서 감염 대상이 줄어들어 전염병이 쇠퇴하는 것이다. 면역된 사람이 충분해 전파를 막으면 그 인구 집단은 집단면역을 얻었다고 한다. 정부에서 올해 11월까지 집단면역 형성을 목표로 9월까지 전 국민 70%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시행한다고 밝힌 이유다. 집단면역은 예방접종을 받지 못한 사람까지 보호하고, 완전히 질병을 퇴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개념에서 특별한 광휘가 느껴진다.”

코로나19로 익숙해진 개념인 감염재생산지수 ‘R’
독감은 1~2, 천연두는 4~6, 수두는 6~8이다
2006년과 2014년 사이 시카고 총기 폭력 패턴 연구 결과
100명이 총에 맞을 때마다 후속공격 63건…‘R’은 0.63이다
전염병뿐 아니라 범죄·금융위기·가짜뉴스까지
분석과 예측을 가능케 하는 수학의 위력, 보이지 않던 것을 보여준다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는 제목 그대로의 책이다. 여기서 ‘전염’은 의학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학자이자 역학자인 애덤 쿠차르스키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 교수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팬데믹, 금융위기, 총기폭력, 가짜뉴스, 랜섬웨어, 인터넷 유행 등 각종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수학을 꺼내든다. 책에도 운명이 있다면, 시기를 잘 타고났다. 아웃브레이크(사건의 발발 혹은 질병의 유행), 슈퍼 전파자, 백신 접종 등 아주 현재적인 주제들이 코로나19는 물론 세상에 대한 이해를 확장한다. 질병관리청에서 왜 그런 발표를 하는지, 도대체 끝은 있을지 걱정스럽다면, 이 책을 읽으며 불안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알면 두렵지 않다고도 하지 않나. “보이지 않던 것을 수학으로 보여주는 책”(박형주 아주대 총장)이다.

전염병 관리에 처음 수학을 도입한 사람은 영국 열대병학자 로널드 로스였다. 그는 수학 모형을 이용한 말라리아 연구로 노벨 의학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로스의 개념 모형은 이랬다. 1000명이 사는 마을에 감염자 1명이 있고, 모기 4마리 중 1마리만 사람을 물 수 있다고 해보자. 이 지역에 모기 4만8000마리가 있다면 1만2000마리만 사람을 물 수 있다. 감염자는 1000명 중 1명이므로, 모기 1만2000만마리 중 12마리만 그 한 사람을 물어 기생충을 흡수할 수 있다. 기생충을 흡수한 모기가 감염성을 띠려면 일정 기간 생존해야 하는데 로스는 모기 3마리 중 1마리만 그 정도로 살 수 있다고 가정했다. 따라서 12마리 중 4마리만 감염성을 띤다. 앞서 4마리 중 1마리만 사람을 물 수 있다고 가정했으니 최종적으로 추가 전파에 성공하는 모기는 단 한 마리다. 여기서 모기 숫자 혹은 감염자가 더 많다면 더 많은 감염자가 생길 것이고, 반대로 회복자는 이 효과를 상쇄한다.

여기서도 익숙해진 개념 하나가 떠오른다. 감염재생산지수 ‘R’값이다. R<1이면 감염 사례가 줄고, 반대로 R>1이면 대규모 전염이 생길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체험한 일이다. 팬데믹 독감의 R은 보통 1~2 수준이라고 한다. 인간이 박멸한 유일한 감염병 천연두는 R이 4~6이고, 수두는 천연두보다 높은 6~8이다. R은 감염자가 일으키는 전파를 측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파 속도까지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R이 2라면, 전파 다섯 번째 단계에선 32명, 열 번째 단계에선 1024명으로 지수적 파악이 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수학적 모델의 위력은 예측과 대처까지 가능하다는 데 있다. 사람들이 감염되는 과정과 감염시키는 과정, 회복 속도 등 감염의 역학을 파악하면, 그 요소들을 건드려 전파를 멈출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R=전염성 띠는 기간×전파 기회×전파 확률×감염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이다. 방역당국의 조치들도 결국 R의 구성 요소를 낮추는 시도인 셈이다.

전염병의 통찰은 사회 현상으로 확장된다. 이를테면 “살인 아웃브레이크의 그래프는 콜레라 그래프와 닮았다”. 흔히 범죄를 둘러싼 논쟁은 나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질병과 폭력의 아웃브레이크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노출된 뒤 시간 지연이 있는 감염과 마찬가지로 폭력도 잠복기가 있을 수 있다. 때로는 폭력이 곧바로 다른 폭력으로 이어진다.

2017년 5월 미국 시카고 브라이턴파크에서 폭력조직 구성원 2명이 소총으로 10명을 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중 2명이 죽었는데 그날 오전 있었던 폭력조직 관련 살인 사건에 대한 보복이었다. 시카고 토박이였던 사회학자 앤드루 파파크리스토스는 시카고의 총기폭력 패턴 연구에 나섰다. 그는 경찰에서 2006년과 2014년 사이 체포된 46만2000여명의 데이터세트를 받아 체포된 사람들의 ‘공범 네트워크’를 그려봤다. 상당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체포된 적이 없었지만, 일련의 공범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 13만8000명 규모의 큰 집단이 있었다.

파파크리스토스 연구진은 사람들이 비슷한 사람과 엮이는 경향 혹은 공유하는 환경이 사건에 영향을 미쳤는지부터 확인했다. 그 결과 그럴 가능성은 작았다. 이는 ‘전염’ 때문일 가능성을 암시했다. 연구진은 한 총격 사건이 다음 총격 사건으로 이어지는 전파 사슬을 재구성했다. 추정 결과 100명이 총에 맞을 때마다 후속 공격이 63건 일어났다. 시카고 총격 사건의 R은 0.63인 셈이다. R이 1 밑이라는 것은 아웃브레이크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연구진이 시카고 폭력 사건 아웃브레이크를 4000건 이상 확인해보니, 대부분 규모가 작았고 추가 전염은 없었다. 하지만 한 아웃브레이크는 거의 500건이나 되는 총격 사건으로 이루어져 ‘슈퍼 전파’라 할 만했다. 시카고 전파 사슬에선 속도도 파악할 수 있었는데, 한 총격과 다른 총격 사이의 시간은 평균 125일이었다. 브라이턴파크 공격처럼 극적인 사건이 주목받긴 해도, 대부분의 불화들은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간다고 볼 수 있다.

연구에서 한 발짝 더 나가면, 강력범죄 역시 전염병처럼 관리할 수 있다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실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선 ‘폭력축소단’을 만들었는데, 폭력 피해자의 보복을 단념하게 하거나 구직 등 사회 적응을 도와 범죄를 크게 줄였다고 한다.

하지만 수학 모형은 어디까지나 모형이다. 특히 아웃브레이크 예측은 예측 자체가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전염병을 경고하면 그 때문에 감염이 억제되면서 예측이 틀리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위험을 과장했다며 불평하고, 예측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알고리즘의 편향성 문제도 있다. 범죄가 발생하는 지역을 예측한다고 해보자. 과거 사례를 기반으로 하기에 이전 범죄가 발생한 지역 위주로 탐색하고, 거기서 다시 범죄가 발생하면서 기존 믿음을 굳히게 되는 것이다.

책에선 최고의 수학 모형은 반드시 미래 예상을 정확히 해내는 것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핵심은 보통 모형이 ‘옳다’는 게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전염병 이론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네트워크로 얽힌 은행들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R과 같은 개념은 온라인 콘텐츠의 전파를 계량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반대로 HIV 감염자 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가짜뉴스를 전파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고민해야 할 지점은 이로운 생각을 빨리 퍼뜨리고 해로운 생각을 느리게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틀렸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고 보완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진실에 가깝다. “진실은 수많은 오류를 한데 모아야만 얻을 수 있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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