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부터 현재까지 300년 버블의 역사..무엇이 버블을 만들고 누가 이득을 챙겼나 [화제의 책]

백승찬 기자 2021. 2. 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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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버블: 부의 대전환
윌리엄 퀸·존 D 터너 지음, 최지수 옮김
브라이트 | 452쪽 | 1만8000원

퀸스대에 재직 중인 경제학자 2명이 집필한 <버블: 부의 대전환>의 원제는 ‘Boom and Bust’, 즉 ‘호황과 불황’이다. 번역서는 버블 붕괴 이후 부가 어디로 재분배되는지 알려주는 듯한 부제를 붙였지만, 이 책에는 돈 버는 방법이 실려 있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버블에서 이득을 보는 건 노련한 투자자, 전문가, 내부 관계자들이다. 이들이 쌓는 부는 성급하게 버블 시장에 뛰어든 초보 투자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물론 모든 초보 투자자들은 자신이 성급하지 않고, 시장에 대해 많이 공부했으며,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2005년쯤부터 부풀어오르기 시작한 중국 주식시장에 모인 투자자들이 그랬다. 택시기사부터 벨보이까지 모두 주식시장에 대해 이야기했고, ‘행운의 수’여서 혹은 시진핑의 생일이라서 주식을 샀다. 카지노와 도박이 불법이었기에, 주식시장은 중국인들의 도박 욕구를 해소하는 합법적인 터전이 됐다.

이 책이 사용하는 버블의 정의는 “가능한 범위를 뛰어넘는 상향세를 보이다가 결국엔 무너지는 가격 움직임”이다. 불이 나려면 산소, 연료, 열이 필요하듯이, 버블에도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먼저 산소에 해당하는 ‘시장성’은 “자산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용이성”을 뜻한다. 예를 들어 마약이나 고가의 미술품은 자유롭게 사고팔기 어렵기에 버블이 되기도 어렵다.

둘째로는 버블의 연료가 되는 ‘돈과 신용’이다. 시중에 투자할 만한 자본이 충분히 풀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낮은 이자율과 느슨한 신용조건이 이러한 배경을 촉진한다. 마지막으로 열에 해당하는 요소는 ‘투기’다. 거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큰 액수에 팔기 위해 집을 산다면 그것이 투기다. 여기에 기술혁신 혹은 정부 정책이라는 ‘불꽃’이 더해지면 불이 나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저자들은 지난 300년간 세계사의 버블을 살핀다. 스페인,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중남미 국가들이 19세기 초반 독립을 선언하자, 영국에는 중남미 광산 투자 붐이 일었다. 최초의 ‘이머징 마켓’ 버블이었다. 영국의 풍부한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면 중남미의 금과 은을 더 많이 채굴할 수 있다는 유혹에 1824~1825년 사이 624개의 회사가 생겼다. 도로망이 부실하고 숙달된 노동자가 부족하다는 현지 사정을 무시한 투자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1840년대 중반 영국의 철도 광풍에는 증기기관차라는 신기술이 불꽃 역할을 했다. 철도 회사 수백개가 인가받았고, 신규 철도 계획안 수백개가 의회에 제출됐다. 저자들은 이때 ‘투기의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본다. 이전까지 버블 투자가 돈을 모두 잃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상류층의 일이었다면, 주식 액면가가 낮은 데다가 분할 불입할 수 있었던 철도 주식은 중산층부터 노동자까지 누구나 살 수 있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1만4000달러를 버는 캘리포니아의 멕시코 출신 딸기 농부가 72만4000달러를 대출받아 집을 샀다.

버블이 해로운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쏟아진 거액의 투자금이 해당 산업의 혁신적인 기술 프로젝트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자전거 버블은 자전거, 자동차, 오토바이 등 이동수단에 대한 ‘창조적 파괴’로 이어졌다. 2000년대의 닷컴 버블 역시 몇몇 정보통신 기업의 성장에 기여했다.

최초의 버블 이후 다음 버블까지는 한 세기가 걸렸다. 1929년 월스트리트 버블 붕괴 이후엔 50년간 잠잠했다. 1990년대 이후로는 6년에 한 번꼴로 버블이 발생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 은행 등 금융시장 규제완화, 알고리즘·초단타 매매 성행 등이 원인이다. 저자들은 지금 세계 경제가 “거대한 불쏘시개 통”이라고 표현한다.

1989~1990년 일본의 주식·부동산 버블 붕괴 직전 누구도 회의론자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신분 노출에 부담을 느끼던 회의론자들은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 뒤에야 텔레비전에 출연했다. 지금 한국의 주식시장 주변에는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낙관이 넘친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차분하고 심지어 음울한 비관에도 귀 기울여야 할 시기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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