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P] 민주당 "정책역량 키워야 하니 당에 보좌진 보내야" 논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책역량 강화 방안'을 두고 시끄럽다. 당·정 관계에서 정책 주도권을 쥐기 위해 당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인데 인력 부족이란 벽에 부딪힌 것이다. 정당이 고용할 수 있는 직원 수는 법으로 제한돼 있다. 민주당에선 이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갈등은 지난달 26일 민주당 '더혁신위원회'가 발표한 정책역량 강화 방안에서 출발했다. 각 정당엔 정책을 연구·개발하는 조직인 정책위원회가 있다. 집권여당이 되면 정부의 카운터파트가 돼 정부 정책에 상당히 관여한다.
민주당 혁신위는 "정책 수립을 행정부 중심에서 정당 주도로 바꿀 시기가 왔다"며 정책연구위원을 300명 수준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다만 이는 법 개정이 필요해 당장은 소속 국회의원들이 보좌진 1명씩을 파견하자고 했다. 이 방안이 알려지자 민주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는 즉각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표면적으론 서로 이해가 달라서 벌어진 대립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정당을 위해 일할 사람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는 데 있다.
정책연구위원 제도는 1988년 국회법이 개정되면서 생겼다. '교섭단체 소속 의원의 입법활동을 보좌'할 목적으로 정책연구위원을 두도록 했다. 이 때문에 정당을 위해서 일하는데, 지위는 별정직 공무원이다. 월급도 국가가 준다. 숫자도 77명으로 정해져 있다. 정당별 배분은 의석수에 비례해 이뤄진다. 21대 국회에선 민주당 몫이 44명, 국민의힘 몫이 33명이다. 의원수가 20명 미만인 비교섭단체정당엔 정책연구위원이 배정되지 않는다.
정책연구위원이 모두 당 정책위 전문위원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민주당 정책위 전문위원의 숫자는 26명인데 이 중 국회법상 정책연구위원은 11명에 그친다. 나머지 15명은 정당이 월급을 주는 유급사무직원이다.
국가에서 급여를 받는 44명의 정책연구위원 중 나머지 33명은 원내대표 부속 조직, 중앙당, 시도당 사무처 등에 산재돼 있다. 정책연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자리에 이들이 배치돼 있는 이유는 정당이 자기 돈을 써서 고용할 수 있는 직원 수에도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정당법상 정당은 직접 월급을 지급하는 유급사무직원을 최대 200명까지만 채용할 수 있다. 2019년 기준 민주당의 유급사무직원은 188명이었다. 결국 최대 244명(정당법상 유급 당직자 200명+별정직 공무원인 정책연구위원 44명)의 인력으로 당 전체를 운영해야 하는데 정책연구 이외의 업무에도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이른바 '돌려막기'가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정책위는 정책위대로, 중앙당은 중앙당대로 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정책위 관계자는 "전문위원 한명이 부처 2~3개를 상대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1명이 공무원 수백, 수천 명과 싸워야 하는데 상대가 되겠나"라고 말했다. 한 중앙당 당직자도 "당 규모는 점점 커지는데 일하는 사람의 숫자는 묶여 있다 보니 해가 갈수록 업무과중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정책연구위원의 활용을 둘러싸고 해석 차이도 벌어진다. 정책위 관계자는 "'정책연구위원'은 말 그대로 정책을 연구하는 조직의 인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이와 무관한 중앙당이나 시도당 인력으로 배치하면 안 된다"고 했다. 전직 도당위원장 출신인 한 관계자는 "시도당에서 의원들 입법보조를 하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반면 또 다른 중앙당 당직자는 "정책연구위원의 역할을 그 용어만 놓고 보면 안 된다"며 "시도당에서 해당 지역구 의원들의 정책 보좌를 포함해 이를 넘어선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꼭 중앙당 정책위에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른 당직자도 "입법부인 국회의원의 모든 활동이 입법활동"이라며 "정책위에서만 일해야 한다는 것은 편협한 해석"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력난의 불똥이 보좌진 파견으로까지 튄 것이다. 신분은 국회 소속인 보좌진을 활용해 '244명의 벽'을 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안을 두고 당내선 "불가능하다"는 회의론과 "일단은 해보자"는 반응이 엇갈린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김태년 원내대표는 비공개석상에서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여야를 떠나서 결코 의원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야당과도 대화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 민주당 의원은 "보좌진 중에서 가장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반면 혁신위원장인 김종민 최고위원은 "정책전문위원이 늘게 되면 결국 혜택을 보는 건 국회의원"이라며 "개인 보좌진을 여러 명 쓰는 것보다 상임위 보좌진이 탄탄해지고 그 지원 위에서 입법과 정책활동이 만들어지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정당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력 제한을 풀어주는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김 최고위원은 "유급사무직원 숫자가 제한돼 있다 보니 정책위가 아닌 조직에서 편법으로 정책연구위원을 가져다 쓰는 일종의 '돌려막기'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급사무직원 수를 제한하는 조항은 2000년 최초로 도입됐는데 취지는 "고비용 정치구조 개선"이었다.
문제는 나랏돈이 드는 국회 소속 정책연구위원을 늘릴 것이냐, 정당이 국고보조금, 후원액, 당비 등을 지출해 쓰는 유급사무직원을 늘리느냐다. 김 최고위원은 "기본적으로는 국회 소속 공직자를 늘리는 쪽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안정적인 의정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국가예산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며 "정당법을 개정해 정당 소속 정원을 늘려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여야는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정책연구위원 숫자를 10명 늘리는 안을 통과시켜 '자리 늘리기'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정당 자체 재원을 활용한 인력 채용을 늘리는 것엔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이미 운영되고 있는 조직의 신뢰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우선 "정책연구위원은 엄밀히 말하면 '국회 내 교섭단체'의 정책역량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국회의 역량'을 위한 인력"이라며 "정책연구위원과 정당 유급사무직원은 논리적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OECD 국가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처럼 정당이 자기 돈 가지고 유급직원 두는 걸 제한하는 나라는 없다"며 "정당이 자체적으로 정책역량을 강화하려면 자력으로 하는 게 우선"이라고 정당법 개정에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반면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연구원 같은 정책연구소부터 활용을 잘 하는 게 우선"이라며 "표면은 정책연구소지만 사실상 선거를 위한 조직처럼 운영되고 선거가 끝나면 핵심 당직자들이 자기를 도왔던 사람들에게 자리를 나눠주는 용도로 쓰이는데 이를 본래 목적에 맞는 조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어 "비록 국가예산이 더 투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국민들은 현재 지급되고 있는 세비마저 깎아야 한다고 할 만큼 국회에 대한 불신이 강한 상황에선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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