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의 복직은 어느 노동자 한 명의 복직이 아니다
[성지수 녹색당 당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투기자본 매각 반대와 자신의 복직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 30일 부산에서 출발했다. 월요일을 빼고 매일 걸어서 청와대까지 행진 중이다. 2월 7일을 도착일로 하는 행진은 애초 김 지도위원을 포함해 3명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50~60명으로 늘어났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지난달 22일부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5명이 단식을 진행 중이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행진을 하고 단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실을 예정이다.
김진숙 님께 . 김진숙 님 안녕하세요? 저는 성지수라고 합니다.
사실 저는 며칠에 걸쳐 여러 차례 이 편지를 썼다 지웠다 다시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스스로 당신께 말을 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35년 투쟁 현장을 저는 너무나 늦게 알았기에 그 긴 시간의 무지함이 부끄러웠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추운 거리를 또 다시 걷고 있는 당신의 걸음을 방구석에 앉아 SNS로나 공유하면서 응원하고 있는 스스로가 민망했습니다.
벌써 40일 넘게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계신 분들을 몇 차례 방문하기도 하고, 동료 예술인들이 제안한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즉각 제정촉구를 위한 문화예술계 릴레이 단식'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멋쩍습니다.
그렇지만, 혹은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저는 당신을 늘 먼발치에서만 뵈었지만, 당신과 가까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른한 살 청년입니다. 정의가 바로 서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약속했던 이가 촛불 혁명으로 대통령이 된 이 땅에서, 왜 아직도 당신의 복직이 이뤄지지 못했을까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정부와 국회 차원의 판단과 복직 권고는 이미 여러 번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전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었을 때 한 손에 촛불을 꼭 쥔 저는 순진하게도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과정이 더 이상은 고통스럽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도래한 거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암 수술을 하고 투병 중인 당신이 오늘도 차디찬 거리를 걷고 있습니다. 폭설이 쏟아진 청와대 앞에 텐트도 하나 없이 당신과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은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 따듯한 식사를 하지 못합니다. 제가 도래했다 믿었던 그 사회는 여전히 많은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고통으로 만들어가는 중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래서 당신의 복직은 어느 노동자 한 명의 복직이 아닙니다. 당신의 복직은, 이제 막 사회를 알아가고 있는 청년인 저에게 우리 사회의 정의와 원칙과 상식이 이전보다 더 바로 섰는가를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종이 같습니다.
또, 저는 공연예술과 축제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말을 빌리자면 '자기가 좋아서 하는' '노동은 아닌' '먹고 사는 데 중요한 일은 아닌' 일을 하는 셈입니다. 예술인의 예술노동은 노동이 아니고, 따라서 예술인은 노동자가 아닌 사회에서 저와 저의 동료들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들의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광주시립극단 사태에서 보듯 인권 유린이나 성희롱이 발생하더라도 '법대로' 처리할 수 있는 방편이 많지 않습니다. 김천시 소유의 공공 극장에서 작업 중 사망한 고 박송희 님의 유가족은 여전히 시를 상대로 소송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켓을 들기도 하고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며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라고, <공연법>을 시설이 아닌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도록 개정하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만, '이미 노동자'인 당신 한 사람 못 지켜주는 현실을 생각하면 좌절감이 밀려올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코로나 덕에 칩거하며 새 작품을 썼다"며 어수선한 틈을 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복귀하려는 몇몇 성폭력 가해 예술인들을 생각하면, 다시 힘을 내어 나와 동료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하고, 그러려면 제겐 희망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안위는 반드시 빛나야 할 희망의 별입니다.
그리고 저는 녹색당 당원입니다. 당신이 일선에서 은퇴하면 입당해서 텃밭을 가꾸고 싶다고 하신 그 정당의 일원입니다. 요즘은 기후위기를 알리는 일과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맞서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글을 읽은 후로는 당신이 기를 그 텃밭이 기후위기 때문에 피해 입지 않기를 소망하는 마음도 담고 있어요. 멀리서 보내는 미약한 힘이나마 더하고 싶어서요. 녹색당의 운영위원장 성미선 님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그 밭에서 난 채소들로 맛있는 밥상을 차려 함께 마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청와대 앞 동조 단식을 시작하셨지요. 저는 그 자리에서 춤이라도 추고 우쿨렐레라도 연주하며 흥을 돋우는 역할로 함께 하겠습니다.
그러니 김진숙 님, 부디 건강하셔요. 아프지 마셔요. 하루 빨리 좋은 날을 함께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지수 녹색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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