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제주의 풍경 파고든, 그를 만나다
운명적 만남. 만일 한 사람의 인생이 신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다면 이런 것일까. 한 제주 소년이 6.25전쟁때 피난온 유명화가를 우연히 만나 예술에 눈을 뜨는 그런 과정. 제주출신 고(故) 김택화(1940~2006) 화백이 그랬다.
10대초반의 김 화백은 6.25전쟁통에 서울에서 피난온 서양화가 홍종명(1922~2004)을 만났다. 홍종명 화백은 1951년부터 54년까지 모슬포에서 머물며 김택화 화백을 비롯한 제주 소년들(강태석, 현승북 등)에게 미술을 가르쳤다. 홍 화백은 나중에 이중 강태석을 서울로 데려가 서울대 미대 입학을 돕기도 했다.
김택화 화백은 어렸지만 남달랐다. 홍 화백이 서울로 떠난 뒤에도 예술에 대한 갈증은 꺼지지 않았다. 미술 공부를 더 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 동북고교(야간)에 진학한 김 화백은 큰 형이 일하던 체신부에서 낮에는 일손을 돕고, 밤에는 그림을 그렸다. 말그대로 주경야독, 고학(苦學)을 했다. 그런 노력끝에 1959년 홍익대와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전국 고교생 미술대회에서 입상하면서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다. 제주출신으로서는 처음이었다. 그때 홍익대에는 김환기 화백이 있었고, 김택화 화백이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 덕분에 김택화 화백은 ‘오리진’이라는 이름의 국내 첫 추상표현주의 그룹을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이어 1962년 국선에서 특선하고 화단에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지만 생활고까지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25세인 1965년에 귀향한 그는 제주의 한 고교에서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고향의 풍광이었다. 그의 작품세계가 ‘추상’에서 ‘구상’으로 넘어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제주로의 귀환이었던 것이다.
이후 김 화백은 새로 눈 뜬 제주 풍경을 파고들었다. 같은 장면, 같은 피사체를 몇 번씩 그렸다. 그것도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달라진 모습으로 그렸다. 한라산 소주(하얀색)의 패키지 그림 원화도 그의 작품이다. 그런 작업이 40여 년 간 이어졌다. 풍경화이지만 여백을 살린 추상화적 기법이 가미돼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성했다. 그 결과 스케치를 포함해 4000여점이 남아있다. 김 화백은 제주미술협회 회장을 두 차례 지냈으며 제주도립미술관 건립 추진위원장도 역임했다. 그의 작품은 조천읍 신흥리에 있는 김택화미술관(2019년 개관)에서 볼 수 있다.
한편 김택화 미술관(관장 이승연)은 1월 22일부터 2월 17일까지 제2전시실에서 ‘김택화 드로잉’전을 개최한다. 전시 관람 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주말은 오후 6시까지다. 목요일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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