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판사 "대법원장이 법관 탄핵에 관여하고 유도한 것 아닌가"
(시사저널=조해수 기자)
이른바 '박근혜 세월호 7시간'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안이 2월4일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통과됐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남아 있지만, 임 부장판사는 2월28일이 퇴임일이어서 헌재가 탄핵 판단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날 임성근 판사의 변호인은 지난해 5월 김명수 대법원장과 임 판사가 주고받은 면담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임성근 판사에게 "사표 수리, 제출 그러한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그걸 생각해야 하잖아. 그중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라면서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여당에서) 저레(저렇게) 나가고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와 만난 사실은 인정했으나 '정치권의 탄핵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부인하다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꼼짝없이 거짓말한 게 들통났다.
김 대법원장의 녹취록 발언은 민주당의 판사 탄핵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김 대법원장 거취 문제로까지 확산됐다. 거짓말 논란에, 사법부 독립을 수호해야 할 대법원장이 집권당의 눈치를 보며 "정치적 상황도 살펴야 한다"고 말했으니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위배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2월4일 오후,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와 긴급 인터뷰를 가졌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지적해 온 'Mr. 쓴소리' 김 부장판사는 "대통령이 압력을 행사해도 법관을 지켜줘야 할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했다. 녹취록 내용은 사법부의 수장이 법관 탄핵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충분히 받을 만하며, 지금의 민주당 탄핵 상황을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사정이 여의치 않고,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없다"며 사표를 냈다. 그는 2월21일까지 근무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 대법원장 녹취록이 공개됐다.
"너무 놀랐다. 대법원장은 법원 조직의 수장이다. 모든 법관이 의지하는 존재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평소 판사들이 자유롭게 판결을 내릴 수 있는 분위기를 강조해 왔다. 이는 대법원장의 의무이기도 하다. 처음에 (김 대법원장이) 법관 탄핵에 대해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몫'이라고 남의 일처럼 말한 것을 듣고 굉장히 실망했다. 그런데 (녹취록을 들어보니) 김 대법원장은 (법관 탄핵에서) 한발 물러나 있으려고 한 정도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임성근 부장판사)을 다치게 하는 부분(법관 탄핵)에 '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직 구성원을 (탄핵의) 대상자가 되라며 '던져놓는 행위'까지 했다. 지금상태가 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김 대법원장이 '정치적 행위'를 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녹취록) 대화 내용 중에 '정치적인 고려·상황·영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표를 내는 사람(임 부장판사) 앞에서 '나는 정치적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거다.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와서 은근히 압력을 행사해도 판사들이 개의치 않고 열심히 재판할 수 있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한숨)…지금 정치적 고려라고 하는데, 그 대상이 누구냐 하면 국회 전체도 아닌 일부 여당 의원이다. (판사 탄핵에) 아주 적극적인 판사 출신 몇 분들… 대법원장이 그런 분들에 대한 정치적 고려 때문에 구성원에 대한 인사까지 이런 식으로 결정하면…(한숨)…판사들의 방패막이 너무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대법원장으로서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
국민의힘 등 야당은 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인도 아니고 사법부의 수장이 거짓말을 한 형국이 되어 버렸다. 물론 해명은 '기억에 없었다'고 하지만, '기억이 분명치 않다'는 얘기는 (녹취록이 공개되기 전인) 어제나 그제 했어야지. 녹취록이 나오니까 그제서야 이렇게 말하면 그 말의 진실성을 어떻게 믿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이다. 왜 정치판에서 법원을 끌어들여서…(한숨)…법관 탄핵한다고 설쳐댔을 때부터 결국 이렇게 사달이 벌어질 줄 알았다."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어떻게 예상하나.
"무죄(임 부장판사, 직권남용 1심 무죄)가 난 사안에 대해 탄핵한다는 것은 큰 틀에서 맞지 않다. 죄가 없는 사람을 왜 탄핵하나. 자기들(더불어민주당)이 핑계로 삼는 게 판결문에 있는 '위헌'이라는 표현인데, 그것은 방론이다. 곁다리다. 방론은 정권이나 힘 있는 사람에 대한 재판일 때, 아니면 여론이 굉장히 강할 때, 그걸 싹 다 무시하기는 힘드니까 '달래기용'으로 쓰는 거다. 법적 구속 요인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치 큰 위법이 있는 것처럼, 헌법 위반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 그걸 그렇게 쓰려면 지금 대법원장에 대한 부분(녹취록 발언)은 어떻게 할 거냐."
정치가 사법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치가 사법의 영역에 들어오는 일이 너무 많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을 듣고 내가 한 첫 말이 '미친 짓'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법조인이 출금 공문서를 그런 식으로 조작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일반인으로 치자면 강도·강간 이상의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러고도 나라가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정권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니까 (법원을) 괴롭히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가 있다. 물론 입증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도 대의명분을 얻으려면 '오비이락(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을 피해야 한다. 내내 가만히 있다가 (정부·여당에 대한) 불리한 판결이 잇따라 나오니까 탄핵안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법원이 여당을 위한 판결을 계속 내렸어도 탄핵안을 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법원 내에 특정 정치 세력이 존재한다는 시각도 있다.
"대다수의 판사는 정치와 전혀 무관하다. 몇몇 사람의 목소리가 워낙 크고, (그들이) 무리를 만들고, 조직화된 목소리를 내고 떠드니까 마치 그게 전부의 목소리인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모든 법관의 대표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아주 소수의, 목소리 큰 사람들이 장악한 조직에 불과하다. '법원의 목소리'라는 걸 내기 위한 도구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전위대, 정치노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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