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화수분 정치

기자 2021. 2. 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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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이 '조선문단' 제4호에 발표되던 1925년은 일제의 수탈이 자심하던 시기다.

그 시절 찢어지게 가난한 서민의 생활상을 잘 드러낸 소설 '화수분' 속 아범은 남의 집 행랑살이를 하는 품팔이꾼이다.

그 행랑아범의 이름은 화수분.

그 안에 쌀이든 돈이든 어떤 재물이든 넣어 두면 스스로 복제돼서 끝없이 나온다는 설화 속 보물단지가 화수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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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논설위원

늘봄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이 ‘조선문단’ 제4호에 발표되던 1925년은 일제의 수탈이 자심하던 시기다. 그 시절 찢어지게 가난한 서민의 생활상을 잘 드러낸 소설 ‘화수분’ 속 아범은 남의 집 행랑살이를 하는 품팔이꾼이다. 세간살이라곤 입고 있는 단벌 홑옷과 조그만 냄비와 지게 하나가 전부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30대 아범과 어멈은 어느 날 아침 고갯길에서 서로 껴안고 얼어 죽은 채 발견된다. ‘입’ 하나 덜자고 갓 아홉 살 된 큰딸을 입양 보낸 이후다.

아범이 본래 그렇게 못살진 않았다. 아버지 생전에만 해도 벼 백 석지기로, 양평 시골에서 남부럽잖게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 사후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더니 거지 신세로 전락했다. 그 행랑아범의 이름은 화수분. 그 안에 쌀이든 돈이든 어떤 재물이든 넣어 두면 스스로 복제돼서 끝없이 나온다는 설화 속 보물단지가 화수분이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그의 삶은 너무나 궁핍했다.

화수분의 어원과 관련, 고려대 한국어사전은 진시황 설화에서 나온 ‘하수분(河水盆)’이 변한 말이라고 설명한다. 본래 ‘황하수(黃河水)를 채운 동이’(마르지 않는 물동이)라는 뜻에서 이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화수분이 단모음화해 하수분으로 바뀌긴 쉬워도 그 반대 현상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어원론을 떠나 의미로만 보면, 화수분은 재물이 자꾸 생겨 아무리 써도 줄지 않음을 이른다. 누구나 갖고 싶은 ‘흥부의 박’ 또는 도깨비방망이지만, 어디까지나 옛날이야기 속의 보물일 뿐 실재하는 물건은 아니다.

설화 속 화수분의 특성은 세 가지다. 복제용 종자 재물이 있어야 하며, 주인만이 사용할 수 있고, 사인(邪人)이 사용하거나 오용·남용하면 효능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코로나 방역 국면에 화수분이 등장했다.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라며 총리에게 맞섰다가 꼬리를 내렸다. 또, 김윤 서울대 교수는 지난 2일 한 공개토론회에서, 정부의 명령에 따라 문을 닫아야 하는 자영업자 호주머니가 화수분인지 묻고 싶다고 토로했다. 정치인들은 나라 곳간이나 사업자들의 주머니를 화수분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화수분의 특성을 잊으면 효능이 사라짐은 물론 큰 화(禍)를 당할 수도 있음을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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