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고지쟁탈전서 전사한 故 조창식 하사 가족 품으로

박대로 2021. 2. 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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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고지쟁탈전에서 전사한 고 조창식 하사가 5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약 4만5000여명으로 미수습전사자에 비해 시료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유해를 발굴해도 누구의 유해인지 알 수 있는 전사자 위치 정보나단서(인식표 등)가 대부분 없기 때문에 유가족 시료를 확보해야만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확인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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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청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개최
강원 인제군 서화리 일대 노전평 전투서 전사
[서울=뉴시스] 160번째 신원확인 고 조창식 하사 최초식별현장. 2021.01.29. (사진=국방부 제공)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6·25전쟁 당시 고지쟁탈전에서 전사한 고 조창식 하사가 5일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날 오전 충북 괴산군청 대회의실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열었다.

조 하사는 국군 8사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강원 인제 서화리 일대에서 발생한 노전평 전투(1951년 8월9일~9월18일)에서 전사했다.

1951년 7월10일 개성에서 제1차 휴전회담이 열렸다. 당시 유엔군사령부와 공산군(북한·중국군)은 회담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전평 일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지역은 강원 인제 서화리 축선과 인접한 고지군을 점령하기 위한 요충지였다. 전투는 전형적인 고지쟁탈전 양상을 띠었다.

전사 후 66년이 지난 2017년 조 하사의 머리뼈와 팔뼈 등 유해와 전투화 등 유품이 후배 전우들에게 발견됐다.

고인은 1928년 12월2일 충북 괴산군 문광면 일대에서 4남 중 셋째로 태어났다.

[서울=뉴시스] 160번째 신원확인 고 조창식 하사 유품. 2021.01.29. (사진=국방부 제공)

조 하사는 초등학교 졸업 후에 농업에 종사하는 맏형을 도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갔다. 그는 건장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동네에서 지도자 역할을 했다.

6·25가 발발하자 고인은 23세의 나이로 국가의 부름을 받고 참전했으며 6개월 만에 전사했다.

고인의 조카 조철주(73)씨는 "말로만 듣던 셋째 숙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는데 늦게나마 유해를 찾게 돼 감사하다"며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숙부를 비롯한 6·25전쟁 중 나라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신 분들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조 하사 신원 확인이 이뤄진 것은 조카 조철주씨가 지난해 시료채취에 참여했기에 가능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약 4만5000여명으로 미수습전사자에 비해 시료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유해를 발굴해도 누구의 유해인지 알 수 있는 전사자 위치 정보나단서(인식표 등)가 대부분 없기 때문에 유가족 시료를 확보해야만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확인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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