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넷에 빠진 삶, 더 좋아졌나.. '인터넷시대의 몽테뉴' 뼈아픈 성찰

기자 2021. 2. 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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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트릭 미러 | 지아 톨렌티노 지음 | 노지양 옮김 | 생각의힘

존재감 경쟁하는 온라인 자아

과시 넘치는 광기의 지옥으로

페미니즘도 인터넷서 왜곡돼

상업주의 타협·자기연출 찬양

현실의 삶 속에서 솔직한 비판

자기경험 통해 시대 민낯 고발

지아 톨렌티노는 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태그이자 인터넷 시대의 몽테뉴라고 불린다. 동시대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자기 삶에 대한 성찰의 힘을 골고루 갖추었다는 뜻이다. 덧붙일 정체성도 있다. 톨렌티노는 소셜 미디어 시대의 글로리아 스타이넘이기도 하다. 가부장제로 일그러진 트릭 미러의 세계에서 그녀는 페미니즘을 교정 안경 삼아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첫 번째 책인 ‘트릭 미러’(생각의힘)에 실린 에세이들은 탁월한 솔직함, 섬세한 묘사, 풍부한 감성, 폭넓은 조사, 깊이 있는 사유, 예리한 비판, 선명한 적대 등을 골고루 갖춘 신세대 문화비평의 전범이다.

톨렌티노는 열한 살 때인 1999년 처음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려서 ‘인터넷 시민’이 됐다. 몽테뉴는 책으로 가득한 서재에 틀어박혀 자신에 대한 글을 썼지만,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인터넷에 신상을 등록”해야 하는 세대답게 그녀는 자기 기록을 웹 클라우드에 남겼다. 열두 살에는 라이브저널에, 열다섯 살에는 마이스페이스에, 스물다섯 살에는 제제벨에서 포스트 하나당 수천 명씩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전업 작가를 꿈꾸었다. 서른 살,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돌아보며 묻는다. “삶과 넷을 분리할 수 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더 자유로운가.” “더 나은 버전의 나, 더 진실한 나를 보여 주겠다는 꿈은 달성됐는가.”

전혀 아니다. 인터넷은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로 정의된 세계”다. ‘온라인 자아’는 과시적일 수밖에 없다.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의 나는 예쁘고 섹시해야 하고, 페이스북에서는 거들먹거리면서 성취를 자랑하고, 트위터에서는 ‘미덕 과시’에 나선다. 인간은 증오와 반목, 조롱과 비난, 과격과 극단에 더 쏠리므로, 우리의 온라인 자아는 존재감 확보를 위해 갈수록 사실보다 의견에 집중하고, 분노와 혐오에 익숙해지며 악플과 배틀을 즐기게 된다. 인터넷은 “광기 어리고 과열된, 숨 막히게 하는 지옥”으로 변했다. “관심을 착취하고 자아를 물화하는 생태계”를 건설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중앙집권적 플랫폼이 정한” 조건에 따라서 살아가는 일종의 노예로 전락했다.

소셜 미디어는 인간의 삶을 “영원히 끝나지 않는 면접”으로 만든다. 우리의 자아는 ‘하트’와 ‘좋아요’ 숫자라는 면접 점수를 얻으려고 한없이 일그러진다. 때로는 수년 전 어딘가 쓴 짤막한 댓글이 줄줄이 불려와 온라인 조리돌림의 대상이 돼 입사 취소 통보를 받기도 한다. 지나친 가시성, 그늘 없이 노출되는 자아는, 진보든 보수든 ‘꾸며진 나’로 ‘현실의 나’를 대체하게 만든다.

올바른 정치적 발언을 하는 나와 올바른 정치적 행동을 하는 나는 다른 존재다.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어렵다. 세상을 정말로 바꾸려면 정치가 관람이 돼서는 안 된다. 인터넷은 우리가 댓글 놀이에 집중하기를 바라나, 그사이 현실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한다. ‘좋아요’와 ‘하트’는 플랫폼 수익만 증가시킬 뿐 현실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고, 그곳에 쓴 글을 통해서 명성을 얻은 톨렌티노로서는 머릿속 세계와 현실 세계의 어긋남은 뼈아픈 일이다. 인터넷이라는 요술 거울은 우리를 자발적 기만에 빠뜨린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혼란스럽고,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으며, 진실과 먼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고. 페미니즘 역시 인터넷과 만나서 일그러진다. 페미니즘에 대한 신선하고 진전된 성찰로 가득한 글들에서 톨렌티노는 여성의 삶을 둘러싼 요술거울을 깨뜨리려고 애쓴다.

오늘날 주류 페미니즘은 상업주의와 타협했다. 이들은 요가나 필라테스를 통한 몸매 관리, 물광 나는 민낯 등 미모 노동의 가치를 인정한다. 인스타에 넘쳐나는 “아름답고 행복하고 자유롭고 완벽한 능력까지 갖춘” 여성의 자기 연출은 차라리 찬양된다. 그러자 ‘아름다운 신화’가 저문 자리에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기 삶을 꾸미는 ‘라이프스타일 신화’가 번져갔다.

‘셀러브리티 서사’를 채택해 성공한 여성에 대한 억압의 역사를 전복했던 팝 페미니즘도 문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인기, 돈, 권력을 쟁취했다는 이유로, “이기적이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가식적인 여성들이 무조건적 방어, 자동적인 축하, 어떤 죄도 덮어주는 자기기만의 천막”을 얻는다. 그러나 성공한 여성에 대한 ‘까방권’ 행사나 ‘개념 연예인’의 발언에 대한 리트위트는 성차별로 고통당하는 평범한 여성의 일상을 바꾸지 못한다.

톨렌티노 글의 매력은 이론적 논의를 자기 삶에 대한 냉정한 솔직함과 가혹한 비판을 통해 다룬다는 점에 있다. 종교전쟁 시대에 몽테뉴는 글로써 윤리를 정립하려 했듯, 톨렌티노 역시 글을 이 시대의 “자기기만을 털어내는” 무기로 삼는다. 좋은 에세이는 자기를 통해 시대를 드러낸다. 멋진 글꾼이 또 한 사람 탄생했다. 460쪽, 1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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