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바이러스와 가짜뉴스, '확산의 패턴' 똑같다

오남석 기자 2021. 2. 5. 10: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패턴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면 금융위기, 폭력, 자살, 가짜 뉴스 등 사회 현상들의 진행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애덤 쿠차르스키 지음│고호관 옮김│세종서적

팬데믹·금융위기·폭력 등

수학적 모델로 성쇠 예측

금융자산의 상승과 몰락은

전염병과 완전히 동일패턴

전세계 뒤흔든 코로나 퇴치

비과학적 추론·선입견 안돼

영어 단어 아웃브레이크(outbreak)는 ‘전쟁이나 질병, 사고 등의 발생’을 뜻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인 최근에는 주로 전염병 발생의 의미로 쓰이는데, ‘점화 - 성장 - 정점 - 쇠퇴’ 등 네 단계를 거치고, 이런 패턴이 반복되기도 한다.

작은 충돌이 항상 전쟁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바이러스나 세균이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낳지는 않는다. 팬데믹에 이른 바이러스가 하나 있다면, 어떤 사람도 감염시키지 못한 바이러스는 수백만 개가 있다. 그럼 어떤 것이 아웃브레이크가 되고 어떤 것은 안 되는가. 또 어떤 아웃브레이크가 빨리 퍼지는가. 아웃브레이크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언제 정점에 이르는가. 정점은 한 번만 오는가. 어떻게 해야 아웃브레이크를 단축하거나 연장할 수 있는가.

영국의 수학자이자 역학자인 애덤 쿠차르스키가 쓴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원제 Rules of contagion)는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저자가 동원하는 무기는 수학적 모델링인데, 이를 이용해 전염병뿐 아니라 금융위기, 총기 사용 등 폭력, 자살, 가짜뉴스, 컴퓨터 바이러스 같은 부정적 사회 현상과 입소문을 이용하는 바이럴 마케팅 등 홍보의 영역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엄밀함의 상징인 수학적 지식을 동원해 아웃브레이크를 측정하고 예측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말라리아에 대한 인류의 투쟁사다. 말라리아라는 이름은 중세 이탈리아에서 열병에 걸린 사람들이 종종 그 원인을 ‘말라 아리아(mala aria·나쁜 공기)’에 돌린 데서 유래했다. 마법의 주문으로 통하는 ‘아브라카다브라’도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로마 시대의 주문이다. 엉터리 진단에서 적절한 처방이 나올 수는 없었다.

영국의 열대병 학자 로널드 로스가 1910년 수학 기반 역학(epidemiology)의 문을 연 책 ‘말라리아 예방’을 내놓은 뒤에야 사태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로스의 접근법은 전염병을 정적인 패턴의 집합이 아니라 일련의 상호작용 과정으로 보고 동역학적 조사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수학적 모델링에서 핵심은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이에게 익숙해진 감염재생산지수라는 개념이다. 수학자 클라우스 디츠가 체계화한 R값 또는 R0라고도 부르는 이 수치는 감염자가 평균적으로 감염시킬 수 있는 2차 감염자 수를 말한다. R값이 1을 넘으면 아웃브레이크의 확산을, 안 넘으면 쇠퇴를 예상할 수 있다. 팬데믹 독감은 보통 1∼2, 천연두는 4∼6이고 홍역은 20에 달한다.

저자는 R값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전염성을 띠는 기간(Duration)과 전염성을 띨 때 하루 동안 전파할 수 있는 기회의 평균값(Opportunity), 기회가 전파로 이어질 확률(Transmission Probability), 인구 집단 중 감염될 수 있는 사람의 평균 비율(Susceptibility) 등 네 가지를 꼽고, 이를 DOTS로 부른다. R값을 떨어뜨리거나 높이려면 이들 DOTS에 변화를 줘야 한다. 코로나19 대응을 예로 들면, 사회적 거리두기나 봉쇄는 O를, 집단적인 백신 접종은 S를 낮춤으로써 확산세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R값은 전염병뿐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들 모두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인 만큼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관찰한 생태학자 로버트 메이는 “금융 자산의 상승과 몰락은 홍역 혹은 다른 전염병 아웃브레이크의 전형적인 성쇠와 모양이 완전히 똑같다”고 밝혔다. 폭력과 살인에 골머리를 앓던 미국 시카고시는 천연두 퇴치 메커니즘을 활용해 효과를 거뒀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인터넷에서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더 널리, 더 빨리 확산되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대규모 백신 접종을 통해 집단 면역체계를 형성하듯, ‘사회적 감염’에도 백신이 필요하다. 사회적 감염을 막는 백신은 적절하고 신속한 대응이다. 특히 가짜 뉴스 확산과 그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팩트체크와 대응이 필요하다. 가짜 뉴스는 온라인상에 돌던 루머를 정치인이나 언론처럼 영향력 있는 주체가 인용했을 때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경향이 있다. 잘못된 소문이나 가짜 뉴스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 기업 등이 신속히 대응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확산을 막을 수 있다.

가짜 뉴스는 SNS 팔로어가 많은 사람이 마치 슈퍼 전파자처럼 대량으로 퍼뜨리기보다는 팔로어가 적은 사람들에 의해 더 많이 확산된다는 저자의 통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는 특이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슈퍼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380쪽, 1만9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