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취재]"카톡 계정 내놔"..전국으로 퍼지는 '신종' 학교폭력.txt

어환희 기자 2021. 2. 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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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한다는 신조어 테스트! 간단한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단펨' = ?
예시) 그 형이 단펨을 만들었는데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들리던 이 단어에, 머리를 굴렸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패밀리?
중학교 1학년 인터뷰이가 거리감을 느낄까봐 몇 초간은 혼자 알아내 보려 했습니다. 인터뷰에 집중하기 위해 결국 물어봤습니다.

"'단체 페이스북 메시지'요."

기자 '누나'로 다가가 보려 했던 생각을 쿨하게 접었습니다.
아이는 없지만, 동년배인(?) 학부모 즉, 어른의 입장에서라도 이 새로운 유형의 학교폭력을 파헤쳐보기로 했습니다. 문제의 시작도 어른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가 필요한 어른들, 10대에 미끼를 던지다

카카오톡 계정,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필요한 건 어른들입니다. 도박 사이트, 불법 홍보 사이트 등에서 아이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할 '업자'들이죠.

'#용돈벌이'로 학생들을 유인해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진행한다.

이들은 '용돈 벌이'라는 가벼운 말로 가해 학생들을 꼬드깁니다. 수사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쉬운 텔레그램으로 거래합니다. 카카오톡 계정을 개당 1만~2만원 대에 사들입니다.

'업자'들은 정보를 파는 10대들을 '사장님'이라 부릅니다. '신뢰 쌓는 관계'도 강조합니다. 거래를 이어가기 위해섭니다. 실제 10대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들의 카카오톡 계정, 전화번호를 뺏고 난 후에도 이들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정보도 가져오라고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피해 학생들은 강요에 못 이겨 다른 친구를 데려오거나 부모님 개인정보까지 손을 대게 됩니다. 가해 학생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카카오톡 계정과 전화번호를 빼앗는 건 '업자'들의 수요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가해 학생들은 카카오톡 계정을 빼앗은 후에도 주변 계정을 더 많이 구해오라고 압박한다.

"도박 사이트, 불법 홍보사이트, 성 관련 사이트, 요즘엔 자산관리 리딩 방까지…이런 음지에서 활동할 계정들을 업자들이 사들이니까요. 이런 계정들은 짧은 시간 내에 신고를 받으면 차단을 당하니 계속해서 새로운 계정들이 필요한 거예요." (신소영 사이버 불법 유해정보 대응센터장)

빼앗긴 계정이 신고로 끝나기만 해도 다행입니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면, 업자들은 정보를 다른 업자에게 정보를 넘겨버립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개인정보는 떠돌게 됩니다.

#미끼를 문 가해 학생들, 무슨 행동인지는 알고 있을까?

온라인에서의 개인정보 강요는 감금, 폭행 등 오프라인의 범죄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가해 학생 대부분은 '했던 짓'을 또 하고 있습니다.

'중간책' 역할을 하는 가해 학생. 피해 학생의 정보를 넘기고 돈이나 무선 이어폰 등 고가의 물건을 받는다.

경남 창원의 한 가해 학생은 친구 계정을 넘겨 교내에서 선도위원회가 열렸는데, 그 전날까지 후배에게 똑같은 행동을 해 결국 경찰에 고소됐습니다. 경기 시흥의 한 가해 학생은 계정을 안 준다고 초등학교 6학년을 폭행하고도 다른 후배들에게 계속해서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맘 같아선 '나 00이 엄마인데, 다 알고 있으니 우리 00한테 이제 연락하지 마!' 엄포를 두고 싶죠."

저를 만나기로 하고, 전날 밤잠을 설쳤다는 한 학부모는 복잡한 마음을 털어놨습니다. 화는 나지만 경찰 고소는커녕 학폭위 접수조차 망설여집니다. 아이가 당할 2차 피해 때문입니다.

#아날로그 속도로 대응하는 어른들…그 사이 5G 타고 퍼지는 신종 학교폭력

아이의 카카오톡이 정지된 것을 알고 물었을 때 아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응 그냥 어쩌다가 이렇게 됐어. 게임 오픈 채팅방 잘못 들어갔어. 아 나도 몰라"

청소년 시기 호기심에 여기저기 들어가다 정지됐나보다, 그러려니 하고 넘겼습니다. 자꾸 캐물으면 아이와 거리가 더 멀어질까봐, 말을 아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학교폭력인 걸 알게 되고는 속으로 끙끙 앓습니다. 주변에 친한 학부모에 털어놓으니, 그 집 아이도 정지됐답니다.

교육청에 따르면 이런 신종 학교폭력은, 이미 지난해 상반기 서울·경기도 쪽, 하반기 들어선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그럼 그동안 학교와 교육 당국은 대체 뭘 하고 있던 걸까요?

일선 학교들, 일이 터진 후에야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것이 전부다.

일선 학교들은 일이 터진 뒤에야 조심하라며 가정통신문을 뿌립니다. 비슷한 일이 또 터지면, 학부모들에게 한 번 더 안내 문자를 보냅니다. 지난해 12월 피해당한 한 학생의 부모는 지난해만 이런 공지를 두 번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교육청은 기존에 없던 유형이다, 학교도 먼저 조사하기 어렵다면서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노력을 하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엔, "안내를 해 예방에 힘쓴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 사이 피해는 점점 퍼지고 있습니다.

일이 벌어지고 난 뒤는 어떨지, 고소가 들어간 경남 창원의 담당 경찰에 물었습니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기자 "사건 접수 보름이 넘었는데…"
경찰 "어차피 신병이 다 확보됐기 때문에 수위가 급박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기자 "고소인 조사도 전인데 수위 판단은 어렵지 않나요? 메시지 등 일부 증거는 지울 수도 있는데 확보는 하셨나요?"
경찰 "그런 건 포렌식이라고, 필요하면 나중에 확보할 수 있어요."

그사이 가해 학생은 피해 학생에 "나오라"는 연락을 또 했습니다.

피해 학생들은 바뀐 것 없이, 불안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눈치채는 게 늦었을 뿐, 어쩌면 '신종' 학교폭력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는 카카오톡 계정을 요구하는 광고 글들이 올라오고 있고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들을 가두고, 때리면서 계정 수집에 열을 올립니다.

학교에도, 부모님한테도 말하기 어렵다는 피해 학생들, 실질적인 안전망을 하루라도 빨리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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