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아닌데.."눈 늦게 치워" 아파트 입주민 불평에 경비원 '냉가슴'

2021. 2. 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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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동대표 A(54)씨는 눈 오는 날이면 입주민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와 고민이 깊다.

지난해 이 아파트는 경비원이 경비 업무 외 청소나 분리수거 등 다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한다는 소식에 경비 인력을 감축하고 청소 인력 4명을 추가 고용했다.

주차 관리, 분리수거 등 경비 외 잡무를 금지하는 경비업법이 되레 해고를 야기한다는 지적에 아파트 경비원에 한해서는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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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서에 명시안돼 있지만 그냥 치워" 토로
경비 인력 감축한 아파트에선 입주민들 "눈 늦게 치운다"
"눈 왜 이쪽으로 치우냐"..입주민 가족이 폭행도
밤사이 많은 눈이 내린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해당 아파트 관계자들이 눈을 치우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연합]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동대표 A(54)씨는 눈 오는 날이면 입주민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와 고민이 깊다. 지난해 이 아파트는 경비원이 경비 업무 외 청소나 분리수거 등 다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한다는 소식에 경비 인력을 감축하고 청소 인력 4명을 추가 고용했다. 이전까지는 밤새 눈이 내리면 상주하던 경비원들이 바로 치워 줬지만 지금은 청소 인력이 출근하는 오전이나 오후가 돼서야 눈을 치울 수 있어 주민들의 항의가 잇따르는 것이 바로 A씨의 고민이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이 오는 10월부터 시행된다. 주차 관리, 분리수거 등 경비 외 잡무를 금지하는 경비업법이 되레 해고를 야기한다는 지적에 아파트 경비원에 한해서는 다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자는 취지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개정안 시행 전 경비 인력을 감축하는 바람에 ‘눈 치우기’를 두고 혼란이 빚어졌다. 일부 아파트 경비원은 개정안 시행 전임에도 눈을 치울 수밖에 없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4일 오후 10시께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경비 초소에서 만난 60대 경비원 박모 씨는 “오늘도 하루 종일 눈을 치웠다”고 했다. 이어 “법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아직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지는 않았다”면서도 “원래부터 해 왔으니까(눈을 치워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과 다른 경비원들의 근로계약서와 업무 매뉴얼에는 ‘눈 치우기’가 명시돼 있지 않지만 별수없어 눈을 치운다는 것이 박씨의 전언이었다. 개정안 시행 전인 오는 10월까지는 경비원들에게 잡무를 맡겨서도 안 된다. 그러나 2년 전 맞은편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다 다리를 접질려 수술했다는 이유로 한 번 해고당한 박씨는 이렇다 할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처지다.

또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경비원 B씨 역시 “정문과 후문은 (눈을)다 치웠다. 교대하는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경비업법과 개정안에 대해 묻자 “그런 것 하나하나 다 따질 수가 없다”며 “그냥 눈 오면 쓸고 닦고 하는 수밖에 없다”고 일축했다.

경비원들이 단지 내에서 눈 치우기, 쓰레기 분리수거, 택배 업무 등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폭행, 폭언 등에 노출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지난달 13일에도 인천 남동구 간석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단지 내에서 눈을 치우다가 단지 내 편의점 직원과 시비가 붙어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비원이 편의점 쪽으로 눈을 치웠다는 이유에서였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의 가족인 편의점 직원 C(64)씨는 “너 가만히 안 두겠다. 여기서 가만히 내버려 둘 줄 아느냐”며 욕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다 못한 입주민들이 C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관련 단체들은 개정안 시행 전이라도 경비원들의 잡무를 명시해 공백을 해소하고 주민들이 직접 눈을 치우는 등 잡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돼 있지 않은 눈 치우기 등 업무를 하게 하는 것도, 그 과정에서 갑질이 있어서도 안 된다”며 “폭설에 대비해 아르바이트를 추가로 고용하는 등의 방법을 찾아 경비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준 전국경비인협회장도 “개정안 시행 전 원칙적으로는 경비원들은 경비 업무만 할 수 있고 시행 전이라도 근로계약서나 업무 메뉴얼에 눈 치우기 등 잡무 범위를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내 집 앞 눈 치우기’ 운동이 십수 년 전부터 있었는데 경비원들이 눈을 치울 것이 아니라 입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눈을 치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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