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 들뜬 이마를 짚어주던 요정들

무루 2021. 2. 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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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건들은 늘 어딘가로 사라진다.

동양화가 신선미는 물건 실종 미스터리의 주범으로 개미 요정을 지목한다.

몸집이 손바닥만 해서 '개미 요정'이라 불리는데, 화집 〈신선미의 한복유희〉 속에서 이들은 늘 사람 곁을 맴돌거나 지킨다.

꽃반지를 낀 엄마가 기억을 되찾고 개미 요정과 재회하는 마지막 네 장면은 이 그림책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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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건들은 늘 어딘가로 사라진다. 양말 서랍 한쪽에는 항상 짝 잃은 양말들이 모여 있고, 안경닦이는 새로 사기를 포기한 지 오래되었으며, 만일을 대비해 침대 협탁에는 수면용 귀마개가 항상 대여섯 개씩 대기 중이다. 고양이 장난감과 머리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집안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이제 더는 의심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물건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동양화가 신선미는 물건 실종 미스터리의 주범으로 개미 요정을 지목한다. 이들은 한복을 입은 여인들로, 주홍색 치마에 꽃무늬 저고리를 입고 쪽머리를 했다. 몸집이 손바닥만 해서 ‘개미 요정’이라 불리는데, 화집 〈신선미의 한복유희〉 속에서 이들은 늘 사람 곁을 맴돌거나 지킨다. 그림 속 방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잠에 빠져 있다. 그 덕분에 개미 요정들은 마음껏 장난을 치고, 작은 물건들을 훔치고, 고양이와 스릴 넘치는 숨바꼭질을 한다.

명색이 요정이니 어지간해서 사람 눈에 띄지 않지만 어린이와 고양이는 예외다. 작은 존재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그러다 드물게 어른의 눈에도 포착되는 순간이 있다. 신선미의 그림책 〈한밤중 개미 요정〉이 바로 그런 이야기다. 아픈 아들을 간호하다 깜빡 잠든 엄마 곁으로 개미 요정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지친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보살핀다. 어른들은 모를 비밀스러운 시간이 얼마쯤 흐르고 나서 아이는 열이 내리고, 엄마가 깨어나고, 아이 머리맡에 꽃반지가 하나 있다. 아주 오래 전 엄마가 잃어버렸던 추억의 물건이다. 꽃반지를 낀 엄마가 기억을 되찾고 개미 요정과 재회하는 마지막 네 장면은 이 그림책의 백미다.

아이에게 돌봄은 어떤 의미였을까

엄마도 한때는 아이였다. 어른이 아이였던 시간을 떠올리는 일은 작고 약한 몸으로 크고 낯선 세계를 살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일이다. 과거의 어린 나를 내 앞의 어린 아이 위에 겹쳐보는 일이고, 돌보는 일과 돌봄을 받는 일이 한 아이의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생하게 떠올려보는 일이다. 열에 들뜬 어린 이마를 짚어주던 상냥한 손을 기억하는 어른은 마주치는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엉뚱한 상상을 하며 숨통을 틔울 수 있다. 내 아이들이 나는 모르는 특별한 모험을 즐겁게 경험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신선미의 그림 속 색채들은 무수한 반복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색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장지 위에 서로 다른 색들을 여러 번 반복해 쌓아올렸다. 이 정성스러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도 함께 스며들었다. 그것은 내가 잠든 사이에도 내가 돌보는 존재가 보살핌받기를 바라고, 어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아픈 아이를 낫게 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흘러가기를 바라며, 일상의 작은 행운이나 불운이 그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라 신비와 미지의 일일 수도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같은 것이다. 꼭 개미 요정이 아닐 수도 있다. 생긴 모습과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실은 누구의 마음속에나 있을 법한 이 존재들을 발견하는 데에는 오직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한때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기억 말이다.

무루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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