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에 뿌린 소금으로 농업용수 오염?.. 법원 "인과관계 부족하다"
[법알못 판례 읽기]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입증 책임은 일반적으로 원고인 피해자에게 있다. 가해자의 행위가 어떻게 자신의 손해로 이어졌는지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공해로 인한 피해 등 과학적으로 엄밀한 입증이 필요한 성격의 소송에선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해 원고가 인과 관계를 입증해 내기 쉽지 않다.
이럴 경우 원고의 입증 책임이 어느 정도 감경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고의 입증 책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피고의 행위가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고 그로 인해 자신에게 피해가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은 여전히 원고의 몫이다.
‘소금 살포’를 둘러싼 한국마사회와 인근 농원 사이 법적 분쟁을 통해 입증 책임 문제를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보자. 마사회, 겨울철 경주로 결빙 방지 위해 소금 살포 경기 과천에서 경마공원을 운영하는 마사회는 겨울마다 경주로에 다량의 소금을 살포한다.
경주로 모래의 결빙을 방지해 경주마와 기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이 기간 동안 경마공원 인근에서 농원을 운영하던 A 씨는 자신이 온실에서 재배하던 분재가 말라 죽는 일을 겪었다. A 씨는 경마공원의 과다한 염화칼슘 사용으로 지하수가 오염돼 자신이 피해를 본 것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물’이 문제였다.
A 씨 측은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농원 인근 용수의 수질 검사를 의뢰했다. 염소 이온 농도가 리터당 441.3mg으로 기준치인 리터당 250mg을 초과해 생활용수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이에 A 씨 측은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분재 구입비와 운반비, 직원 급여 등을 달라는 취지였다. 마사회 측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12월부터 2월까지 경주로에 소금을 뿌리긴 하지만 모래를 세척한 후 반출하고 있고 경마공원의 경주로는 우수가 지하로 스며들기 어렵게 설계돼 있는 만큼 경마공원에서 뿌린 소금이 농원 피해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사회 측은 과천시에서 겨울철마다 도로에 뿌리는 제설용 염화칼슘이 지하수 염소 이온 농도를 높여 농원 측에 피해를 입힌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1심은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경마공원의 소금 살포와 A 씨 농원의 피해 간 인과 관계의 ‘개연성’이 있다는 각종 기관들의 과거 자료들이 근거로 제시됐다. 가령 환경관리공단은 “경마공원 경주로에 사용한 오염 물질은 지하수로 함양돼 시간이 흐를수록 인근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도 피고의 소금 사용으로 인해 분재 피해가 발생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마사회 측이 제시한 근거는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봤다. 과천시에서 살포하는 제설용 염화칼슘이 A 씨 농원 인근 용수의 염소 이온 농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1심 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2심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먼저 “대기 오염이나 수질 오염 등으로 인한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에서 사실적인 인과 관계의 존재에 관해 과학적으로 엄밀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공해로 인한 사법적 구제를 사실상 거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적·경제적으로 피해자(원고)보다 가해자(피고)에 의한 원인 조사가 훨씬 쉬운 경우가 많을 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손해 배상의 원인을 은폐할 수도 있어서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어떤 유해 물질을 배출하고 그것이 피해 물건에 도달해 손해가 발생했다면 가해자 측에서 그것이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가해 행위와 피해자의 손해 배상 사이의 인과 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A 씨 측에 유리한 내용이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다음 대목에 있다. 수질 기준 적합한 곳 상당수…인과관계 입증 부족 2심 재판부는 “이 경우에도 적어도 가해자가 어떤 유해한 원인 물질을 배출한 사실, 그 유해의 정도가 사회 통념상 일반적으로 참아야 할 정도를 넘는다는 사실, 그것이 피해 물건에 도달한 사실, 그 후 피해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사실에 관한 증명 책임은 피해자가 여전히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마사회 측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게 항소심의 판단 취지다.
가령 재판부는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의 검사 결과에 대해 “연구원이 직접 채취한 시료를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A 씨의 부인이 임의로 선택한 장소에서 피고 등의 입회나 동의 없이 채취한 시료를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경마공원의 소금 살포와 A 농원 인근 용수의 오염도가 일정한 방향성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재판부는 “경마공원 인근 지역 중에 염소 이온 농도가 농업용수 수질 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측정된 지점이 상당수 있다”며 “경마공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염소 이온 농도가 높게 나타나거나 인접 토지 사이에서도 염소 이온 농도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마공원 때문에 A 씨의 분재가 훼손됐다는 것을 인정할 근거가 부족한 만큼 마사회 측의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돋보기
공해 예방 기술 관련 특허 분쟁도… 유민에쓰티 대리해 승소한 김앤장
공해를 둘러싼 각종 분쟁이 증가하면서 기업들은 공해를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자연스레 기업들 사이 특허 분쟁도 나타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누액 감지 센서 제조업체 유민에쓰티가 최근 후발 업체와의 특허 분쟁에서 승소했다.
유민에쓰티는 황산·염산·질산·불산 등 유독성 화학 용액의 누설을 감지하는 센서 장치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2012년 경북 구미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한 이후 2015년 1월부터 화학물질관리법이 시행됐다. 화학 사고에 대한 대비와 대응 체계 마련이 의무화됐다.
이후 누액 감지 센서 시장이 커지자 후발 업체들 사이에서 유민에쓰티의 특허를 무효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해당 특허에 대한 다수의 무효 심판이 제기됐다. 특허심판원 등은 계속 유민에쓰티의 특허는 유효라고 판단해 왔다.
그런데 B업체가 기존 심결에서 제시되지 않은 새로운 선행 문헌들을 제시하며 재차 무효 심판을 제기했다. 특허심판원은 위 선행 문헌들에 의해 이 사건 특허의 진보성이 부정된다는 심결을 내리는 데 이르렀다. 유민에쓰티는 위기를 맞는 듯했지만 특허법원에서 판단을 뒤집을 수 있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유민에쓰티를 대리해 승소를 이끌어 냈다.
김앤장의 장현진(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는 “특허심판원에서 무효로 심결된 사건이 특허법원에서 유효로 판단 받는 비율은 20% 미만에 불과하다”며 “이번 판결은 특허의 기술적 사상이 선행 문헌들로부터 용이하게 도출되는지 여부와 선행 문헌의 구성 변경이 선행 문헌의 기술적 사상에 배치되는지 여부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진보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인혁 한국경제 기자 twopeople@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