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성노예' 부정 하버드 교수 위안부 논문 따져보니
계약서 썼고 종료시 떠날 수 있어?..전쟁터·강제성 감안시 일반화 어려워
팁으로 거액 저축?..피해자들 "업자에게 이런저런 명목으로 떼여 곤궁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김수진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prostitute)'로 규정한 미국 학자의 논문이 파장을 낳고 있다.
해당 논문은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저술한 '태평양 전쟁에서 성매매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다.
8페이지 분량의 이 논문은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 앤 이코노믹스(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3월호에 실릴 예정이며, 현재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
램지어 교수는 이 논문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매춘업자(brothel owner)'와 '예비 매춘부(potential prostitute)'가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충족하는 계약을 맺었으며, 이를 '게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계약에 따라 매춘 여성은 통상 매춘 계약 기간보다 짧은 1∼2년 단위의 계약을 맺고 고액의 선지급금을 받았으며, 수익을 충분히 올리면 계약 만료 전에 떠날 수 있었다는 게 램지어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램지어 교수는 논문에서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에서 끌려와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여성과 일본 여성을 모두 '매춘부'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한국이나 일본 정부가 여성에게 매춘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일본군이 매춘부 모집업자와 협력한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군대를 따라다니는 매춘부들은 전쟁의 위험 때문에 일반 매춘부보다 돈을 더 많이 받았다"는 주장을 폈다.
마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계약을 맺고 일하면서 돈을 벌었으며, 원하면 일을 그만둘 수도 있었던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이에 연합뉴스는 램지어 교수의 주장들을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와 일본 문헌, 연구자 인터뷰 등을 통해 검증했다.
일본군과 모집업자 협력관계 아니다?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일본 정부가 매춘을 강제한 것은 아니다'라는 대목과 일본군과 위안부 모집업자들과의 협력관계를 부정한 대목이다.
램지어 교수는 "한국 정부든, 일본 정부든 여성들에게 매춘을 강제한 것은 정부가 아니었다"며 "일본군이 사기 치는 (매춘) 모집업자들과 협력한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우선 구(舊) 일본군 및 일본 정부가 위안부 모집을 업자에게 요청하는 등 위안소 설치와 운영에 관여했으며, 위안부 일에 강제성이 있었다는 점은 1990년대 이후 일본 정부가 인정한 바다.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일본 관방장관(정부 대변인 격)은 담화(일명 고노담화)에서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고 인정했다.
담화는 또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甘言),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官憲)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의 참혹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일본 정부 내각관방 외정심의실이 위안부 관련 조사 결과로 발표한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하여'에는 "위안소의 다수는 민간업자에 의해 경영되었으나, 일부지역에서는 구일본군이 직접 위안소를 경영한 케이스도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본 정부의 조사결과를 담은 이 문서는 또 "민간업자가 경영한 경우에 있어서도 구일본군이 그 개설을 허가하거나, 위안소 시설을 정비하거나, 위안소의 이용시간, 이용요금 및 이용시의 주의사항 등을 정한 위안소 규정을 작성하는 등, 구일본군은 위안소의 설치 및 관리에 직접 관여했다"고 밝혔다.
결국 위안소 운영에 일본군이 직접 관여했으며, 위안소내 생활은 강제적이었음을 일본 정부가 인정한 상황에서 "매춘을 강제한 것은 정부가 아니었다"는 램지어 교수 주장은 책임을 민간 업자들에게 전가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직접 '강제'한 것이 설사 업자였다고 해도 업자들의 배후에 있으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을 일본군은 '공범' 또는 '교사범'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사기 치는 모집업자들과 협력하지 않았다'는 램지어 교수 주장도 일본군이 모집업자 선정 등에 깊이 관여한 사실에 눈감은 것이다.
1938년 3월 4일자 일본 육군성 부관통첩인 '군위안소 종업부등 모집에 관한 건'은 중국 파견군이 선정한 업자가 일본 내지에서 유괴와 유사한 방법으로 위안부를 모집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앞으로 파견군은 업자를 엄밀히 선정하고 모집 시에는 헌병, 경찰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강정숙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의 논문 '일본군 위안소 업자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연구(2018)'에 따르면 '상해파견군내 육군위안소 작부모집에 관한 건'(1938년 1월19일자)이라는 문서에는 중국 주둔 일본군의 요구에 의해 외무성, 내무성 등의 하부기관이 움직여 일본 내의 업자를 선정하고 여성들을 동원한 정황이 적시돼 있다.
이 문서는 중국 상하이(上海) 주재 일본총영사관에서 나가사키(長崎)현을 거쳐 군마(群馬)현 지사에까지 전달됐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또한 같은 논문에 따르면 모집업자들이 군으로부터 직접 비용 지원을 받았다는 문서도 있다. 1945년 3월 18일 작성된 '해군 제12특별근거지대사령부의 해군위안소이용내규'를 보면 모집업자가 위안소 건물을 군으로부터 무상으로 빌리고, 여타 비용을 제한 위안소 이용비를 직접 지불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전반적인 협력은 있었지만 업자들의 취업사기에 일본군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다'는 식의 주장이 나올 수 있지만 위안소 설치 및 운영, 모집에 관여한 일본군이 본인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가 된 사람들의 사정을 파악하고도 그런 불법적인 상황을 시정하지 않은데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정식 계약 맺고 일했고, 원하면 그만둘 수도?
램지어 교수가 "매음굴이 전선에 위치한 데 따르는 위험을 고려해 계약은 대개 2년으로 정해졌다"며 "여성들은 계약 기간을 다 채우거나 빌린 돈을 갚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말한 대목도 검증이 필요하다.
우선 램지어 교수가 이러한 주장을 펴면서 인용했다고 밝힌 '일본군 위안부 관계자료집성(스즈키 유코 외·2006)'을 보면, 1937년 중국의 군 위안소로 보낼 일본 여성을 모집하면서 제시한 조건 등이 기재된 계약서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를 토대로 처우가 전혀 달랐던 식민지 조선 여성들도 같은 취지의 계약서를 썼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식민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일반화의 오류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위안부 연구 권위자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소장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윤명숙 박사는 "지금까지의 선행 연구 결과 조선인 여성은 취업사기나 인신매매, 납치 등의 방식으로 끌려간 경우가 90%에 육박한다"며 "그런 상황에서 (위안부로 일하는) 계약서를 썼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리고 설사 계약이 있었다 해도 그것이 자유 의사에 의한 것이기 어렵다는 게 일본 학자들의 견해다.
역사학연구회, 역사교육자협의회, 역사과학협의회, 일본사연구회 등 일본의 16개 역사 연구 및 교육 단체는 2015년 5월 25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역사학회·역사교육자단체의 성명'에서 "성매매의 계약이 있었다고 해도 그 배후에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구조가 존재했기에 관련된 정치적, 사회적 배경을 무시하는 것은 문제의 전체상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 '종군 위안부'로서 아시아 각지의 일본군 전장에서 생활해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이 계약 기간을 채우거나 빌린 돈을 갚았다고 해서 전쟁터에서 제 발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주장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고노담화 발표 당일 일본 내각관방 외정심의실이 발표한 조사결과에 "위안부들은 전지(전쟁터)에서는 언제나 군의 관리하에서 군과 함께 행동하도록 되어, 자유도 없는 고통스러운 생활을 강요당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것만 봐도 계약기간 만료후 제 발로 귀국길에 오른 사례가 일반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선급금 받고, 고수익으로 저축에 고향 송금까지?
램지어 교수는 "많은 매춘업자는 실제로 매춘부들에게 고액의 선급금과 그 이상 급여를 줬다"라고도 주장했다.
또한 한 매춘업자가 남긴 기록을 토대로 "여성들이 저축 계좌를 가지고 있었고, 업주가 그들을 대신해 정기적으로 돈을 저축하고 고향에 돈을 부쳐주고는 이를 확인하는 전보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램지어 교수는 "나는 팁으로 상당히 많은 돈을 저축했다"는 대목이 나온 위안부 피해자 고(故) 문옥주(1924~1996) 할머니의 회고록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본인 민간 역사 연구자 고(故) 모리카와 마치코(森川万智子) 씨가 집필한 진술 기록서 '문옥주, 미얀마(버마)전선 방패사단의 위안부였던 나'(1996년)에 따르면 문 할머니는 장교들의 술자리에서 춤이나 노래를 선보이고 받은 팁을 '군사우편저금' 계좌에 저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역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 메릴랜드 주 소재 기록센터(국립공문서관 부속)에서 발견된 '미군 심문 보고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심문에 응한 위안부 피해자들은 매달 3백엔∼1천5백엔의 수입을 올렸으나 가불금 때문에 총 매상의 50∼60%는 위안소 주인에게 돌아갔다고 증언했다.
또 업자들이 식대, 물품대금 등으로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떼어갔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은 대체로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곤궁한 생활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이 보고서에 나와있다.
보고서는 1944년 8월, 버마전선에 투입된 일본군과 함께 도피하던 중 미군의 포로가 된 한국인 위안부 20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또 일본의 유력지인 아사히(朝日) 신문은 지난 2016년 5월17일자 기사에서 문옥주 할머니에 대해 보도하면서 위안부 연구 선구자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주오(中央)대 교수를 인용, 문 할머니가 팁으로 돈을 모은 것은 "예외적"이라고 전했다.
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 관계자들이 개설한 '정의를 위한 투쟁(Fight for Justice) 사이트도 문 할머니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일각에서 문 할머니가 버마(미얀마)에서 액면상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당시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때 결코 큰 금액이 아닐뿐더러 "지급된 돈은 일본 화폐가 아닌 '군표'로 엔(일본 화폐)으로 교환할 수 없었고 패전과 동시에 무용지물이 됐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문 할머니는 일본에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저축한 돈의 반환을 요구했지만, 일본 측이 한일청구권협정(1965년)으로 청구권 문제가 종결됐다며 지급을 거부하는 가운데 19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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