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되돌아보는 공간' 창출하는 건축가 박태홍
[효효 아키텍트-72] 박태홍 건축가가 리모델링 설계한 전남 광주 양림동 이이남 스튜디오(2020)는 많은 이가 찾는다. 신축보다 어려운 게 리모델링이다. 기존 건물 도면이 없어 기술적 해법을 찾는 데 고심했다. 리모델링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은 시각적, 조형적 측면만 보려한다. 박태홍은 총체적으로 조화로운 '디자인'을 추구한다.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시각적 감각 너머를 추구했다.
건축주는 미디어아트 작가이다. 미디어월을 만들어 그의 작품을 프로젝션으로 비추어 건축이 희로애락을 겪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가지도록 의도했다. 이이남의 조각 '피에타'는 예수와 성모가 수직으로 분리되어 있다.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다. 작가가 통찰한 '승천한 예수, 지상에는 지극한 슬픔에 젖은 성모'가 3차원으로 해석 가능한 건축적 어휘와도 맞아떨어졌다.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유한하다는 걸 안다.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자신의 남아 있는 시간과 맞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13년여 간 현업을 벗어나 진보적이며 독창성을 중시하는 영국 건축협회건축학교(AA·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로 유학을 떠났다. AA는 수업 첫 머리에 웹스터 사전을 펼쳐든다. 인간 삶에 대한 철학적 논고를 실무 교육보다 우선시 한다. 재학 중 AA 출신이기도 한 렘 콜하스의 OMA에서 리움미술관과 서울대미술관 초기 디자인 일을 맡아 했다. OMA의 일하는 방식은 건축적인 해석에서 출발한다.
잠시 귀국 중 IMF 경제체제와 맞부닥쳐야 했다. 환율이 네 배까지 뛰어 영국에 가는 비행기 표를 살 수 없어 출국을 포기했다. 유학파에게는 꼬리표가 붙어다닌다. 세계적인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이다. 자신이 배운 것은 서양 건축이나 뜻을 펼쳐야 할 곳은 이 땅이다. 귀국 직후부터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일 거라는 생각으로 수년 간 사찰 등 고건축 150여 곳을 탐방했다. '한국적 건축'을 흔히 목조로 이해하는 고루한 인식이 있다. 목조는 콘크리트에 비해 비싸며 형식의 한계가 있다. 서양과 우리 잣대와의 분명한 차이를 보려 했다. 서양 건축은 자신의 건축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 맥락을 잘 살피지 않는다. 한국 전통 건축은 맥락을 중요하게 본다.
작은 개울과 주변 평범한 기와집이 어우러져 있는 전남 담양 소쇄원은 어마어마하다. 여수 향일암은 펼쳐진 앞바다와 함께 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일부 절에서는 신록이 푸르른 초파일에 걸려야 아름다운 연등을 1년 내내 내건다. 그러면서 절집 사람들은 '문화재에는 못 하나 박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우리 건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재료만 기와와 목조를 사용한다 해서 한옥이 아니다. 한옥을 주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서양의 잣대로 짓는다.
독립해 건축아틀리에를 경영했으나 사회적 괴리감과 경제적 이유, 아파트 설계 흐름을 바꾸어 보고자 대형 설계사무실인 '토문건축'에 입사했다. 5년여 근무하면서 자신의 건축 철학과는 융합할 수 없는 벽에 부딪쳐 2015년 건축사무소를 재설립했다.
경기 판교의 단독주택 소소헌(蘇素軒·2014년)의 하얀색 외벽은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했고 2층은 큰 유리창을 달아 개방감을 높였다. 단독 주택이면 으레 갖는 건축주의 로망인 마당을 애매한 크기 때문에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사라진 마당 공간은 침실의 사적인 안뜰(patio)이 된다. 1층에 침실을 두고, 2층은 거실과 주방으로 꾸몄다. 보통 거실이 대개 1층에 있는 것과 반대이다. 2층 거실 몸통 박스에서 삐져나온 듯한 삼각형 공간은 전투기의 조정실(cockpit)처럼 모든 방향으로 시선과 감각이 확장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박태홍의 건축을 대하는 태도는 근본을 생각하는 힘에 있다. 주택의 경우, '사람이 거주하는게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대학 강의를 하면서도 강조한다. '기존의 선입견을 떨쳐야 한다.' '무슨 주택이 저래? 이런 평가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 근본에 다가가면 형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스며들 듯 녹아 있는, 조화를 고려한 깃들어 사는 집을 지향한다.
외관만이라도 변화를 주어야 했다. 각 향에 대한 계량 분석을 통해 외피 유닛을 환기와 채광 용도로 구분하는 등 다용도로 규정하였다. 가구마다 동일한 창문이 없다. 전체적으로 외관이 독특해졌다.
박태홍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가는 강관에 철제원판을 상부에 붙인 버섯 형태의 모듈을 구상하여 전체 건물에 반복시켰다. 모듈은 공장에서 사전 제작하고 현장에서는 설치만 하면 된다. 원판에는 조명을 구성하고 원판 외부로는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로 지붕 기능을 마무리했다. 원판과 원판 사이로는 자연채광이 가능하다. 반복되는 모듈은 카페와 갤러리 등 다양한 기능을 범용적으로 수용하는 공간으로 태어났다.
[프리랜서 효효]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미술품 쓸어담는 중국…한국 시장 33배 `압도`
- `인생 되돌아보는 공간` 창출하는 건축가 박태홍
- [오늘의 매일경제TV] 파괴적 혁신, AI 교육 혁명
- [오늘의 MBN] 생명의 통로 `장 건강`을 지켜라
- "악의 보도·가짜뉴스 기준 도대체 뭔가"
- 강경준, 상간남 피소…사랑꾼 이미지 타격 [MK픽] - 스타투데이
- 화이트칼라 시대는 갔다...블루칼라’의 역습 [스페셜리포트]
- 카니예 웨스트, 14년만 한국 온다…8월 23일 공연 확정[공식]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스타투데이
- 양희은·양희경 자매, 오늘(4일) 모친상 - 스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