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되돌아보는 공간' 창출하는 건축가 박태홍

효효 2021. 2. 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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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72] 박태홍 건축가가 리모델링 설계한 전남 광주 양림동 이이남 스튜디오(2020)는 많은 이가 찾는다. 신축보다 어려운 게 리모델링이다. 기존 건물 도면이 없어 기술적 해법을 찾는 데 고심했다. 리모델링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은 시각적, 조형적 측면만 보려한다. 박태홍은 총체적으로 조화로운 '디자인'을 추구한다.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시각적 감각 너머를 추구했다.

이이남 스튜디오 / 사진제공=박태홍 건축가
양림동은 대도시의 난개발 칼날 직전에서 벗어나 있었다. 근대 선교사 사택들이 있던 완만한 구릉 지대로 '광주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곳이다. 한국 문학사에 빛나는 김현승 시인(1913~1975)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주변 주택은 특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맥락이라곤 없었다. 대상건물은 제약회사 물류창고로 하루에 수십 대 소형 트럭이 드나들었다. 지역을 관통한 시간의 궤적에서 뭔가 건축적인 치유를 겸한 시금석이 필요해 보였다.

건축주는 미디어아트 작가이다. 미디어월을 만들어 그의 작품을 프로젝션으로 비추어 건축이 희로애락을 겪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가지도록 의도했다. 이이남의 조각 '피에타'는 예수와 성모가 수직으로 분리되어 있다.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다. 작가가 통찰한 '승천한 예수, 지상에는 지극한 슬픔에 젖은 성모'가 3차원으로 해석 가능한 건축적 어휘와도 맞아떨어졌다.

건축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유한하다는 걸 안다.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자신의 남아 있는 시간과 맞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이남 스튜디오 내부, `피에타` / 사진제공=박태홍 건축가
박태홍은 '범건축'에 입사 전 건축대전(미술대전에서 분리후)에서 수상을 한다. 입사 6개월차에 서울 강남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1989) 실무를 맡게 되었다. 설계실장이 갑자기 퇴사하였기 때문이다. 재미동포 건축가인 김병현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김병현이 '장건축'으로 옮기면서 따라 옮겼다.

13년여 간 현업을 벗어나 진보적이며 독창성을 중시하는 영국 건축협회건축학교(AA·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로 유학을 떠났다. AA는 수업 첫 머리에 웹스터 사전을 펼쳐든다. 인간 삶에 대한 철학적 논고를 실무 교육보다 우선시 한다. 재학 중 AA 출신이기도 한 렘 콜하스의 OMA에서 리움미술관과 서울대미술관 초기 디자인 일을 맡아 했다. OMA의 일하는 방식은 건축적인 해석에서 출발한다.

잠시 귀국 중 IMF 경제체제와 맞부닥쳐야 했다. 환율이 네 배까지 뛰어 영국에 가는 비행기 표를 살 수 없어 출국을 포기했다. 유학파에게는 꼬리표가 붙어다닌다. 세계적인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이다. 자신이 배운 것은 서양 건축이나 뜻을 펼쳐야 할 곳은 이 땅이다. 귀국 직후부터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일 거라는 생각으로 수년 간 사찰 등 고건축 150여 곳을 탐방했다. '한국적 건축'을 흔히 목조로 이해하는 고루한 인식이 있다. 목조는 콘크리트에 비해 비싸며 형식의 한계가 있다. 서양과 우리 잣대와의 분명한 차이를 보려 했다. 서양 건축은 자신의 건축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 맥락을 잘 살피지 않는다. 한국 전통 건축은 맥락을 중요하게 본다.

작은 개울과 주변 평범한 기와집이 어우러져 있는 전남 담양 소쇄원은 어마어마하다. 여수 향일암은 펼쳐진 앞바다와 함께 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일부 절에서는 신록이 푸르른 초파일에 걸려야 아름다운 연등을 1년 내내 내건다. 그러면서 절집 사람들은 '문화재에는 못 하나 박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우리 건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재료만 기와와 목조를 사용한다 해서 한옥이 아니다. 한옥을 주변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서양의 잣대로 짓는다.

독립해 건축아틀리에를 경영했으나 사회적 괴리감과 경제적 이유, 아파트 설계 흐름을 바꾸어 보고자 대형 설계사무실인 '토문건축'에 입사했다. 5년여 근무하면서 자신의 건축 철학과는 융합할 수 없는 벽에 부딪쳐 2015년 건축사무소를 재설립했다.

경기 판교의 단독주택 소소헌(蘇素軒·2014년)의 하얀색 외벽은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했고 2층은 큰 유리창을 달아 개방감을 높였다. 단독 주택이면 으레 갖는 건축주의 로망인 마당을 애매한 크기 때문에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사라진 마당 공간은 침실의 사적인 안뜰(patio)이 된다. 1층에 침실을 두고, 2층은 거실과 주방으로 꾸몄다. 보통 거실이 대개 1층에 있는 것과 반대이다. 2층 거실 몸통 박스에서 삐져나온 듯한 삼각형 공간은 전투기의 조정실(cockpit)처럼 모든 방향으로 시선과 감각이 확장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판교 단독 주택 `소소헌` / 사진제공=박태홍 건축가
건물주가 유일하게 요구한 태양광 패널은 공간과 시야가 훼손되지 않도록 옥상 경계 밖으로 캔틸레버(외팔보) 방식으로 만들었다. 가로대응부의 단순한 기하학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자유분방한 후면을 가진 주택이 완성됐다. 서울에 직장을 가진 건축주 부부는 퇴근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택지와 설계·시공비가 아파트 매입 비용과 비슷했다. 입주 이후 공간에서 오는 특유의 아우라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박태홍은 자신이 하는 일이 헛된 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가진 계기이다.

박태홍의 건축을 대하는 태도는 근본을 생각하는 힘에 있다. 주택의 경우, '사람이 거주하는게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대학 강의를 하면서도 강조한다. '기존의 선입견을 떨쳐야 한다.' '무슨 주택이 저래? 이런 평가에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 근본에 다가가면 형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스며들 듯 녹아 있는, 조화를 고려한 깃들어 사는 집을 지향한다.

서울 방배동 금호리첸시아 / 사진제공 = 박태홍 건축가
서울 방배동 금호리첸시아(2011년)는, 한 동 짜리(지하 4층∼지상 16층, 138∼298㎡ 총 79가구)이지만 아파트가 갖고 있는 획일적인 외관, 공간 개념에서 탈피하고 자했다. 정면에는 대형 아파트 단지가 버티고 있는 등 집합주택의 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아파트 내부 유닛 구성을 새로 했다. 각 가구가 동서남북 향을 공유하도록 설계 방향을 잡았다. 남향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음식 저장고 등은 북향이 오히려 좋다. 복층이 되었고, 정교하게 퍼즐링을 했다. 시행사가 분양이 되지 않는다면서 반대했다. 결국 평범한 아파트 평면으로 돌아갔다.

외관만이라도 변화를 주어야 했다. 각 향에 대한 계량 분석을 통해 외피 유닛을 환기와 채광 용도로 구분하는 등 다용도로 규정하였다. 가구마다 동일한 창문이 없다. 전체적으로 외관이 독특해졌다.

용산 한글박물관 별관(파빌리온) / 사진제공=박태홍 건축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내 한글박물관 별관은 재학 시절에 본 김수근 건축가의 경복궁 내 '다원(茶苑)'을 오마주했다. 다원은 벽전체가 통유리로 된 찻집이었다. 파빌리온(pavilion·임시가설물)은 시공과 철거가 쉬워야 한다. 박물관 측은 옥외 공간과의 연계성을 모색하면서도 이용자 및 직원들의 식사 및 휴게공간, 별도 전시 공간을 필요로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위치하기에 가설건축물 형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반영구적 구조는 최소화하고, 시공이 용이하며, 단기간에 철거 가능하며 잔여물 처리도 용이해야 했다.

박태홍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가는 강관에 철제원판을 상부에 붙인 버섯 형태의 모듈을 구상하여 전체 건물에 반복시켰다. 모듈은 공장에서 사전 제작하고 현장에서는 설치만 하면 된다. 원판에는 조명을 구성하고 원판 외부로는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로 지붕 기능을 마무리했다. 원판과 원판 사이로는 자연채광이 가능하다. 반복되는 모듈은 카페와 갤러리 등 다양한 기능을 범용적으로 수용하는 공간으로 태어났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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