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콕사고, 안 드러누우면 바보라고요?"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얼마 전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가 났다. 신호 대기 중에 앞차가 후진해 정차해 있던 내 차를 박았다. 앞범퍼와 번호판이 찍히는 정도의 접촉사고인데다 특별히 다친 곳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차량만 수리를 맡겼다.
사고가 난 후 지인들은 “왜 병원에 가지 않았느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소위 ‘드러누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A보험사는 최근 범퍼 일부가 파손된 경미한 교통사고인데도 20대 피해자가 진단서 없이 계속 치료받으면서 1000만원 이상의 합의금을 요구해 진땀을 뺐다. 상해급수 14급에 해당하는 단순 타박상을 입고 3개월간 입원 4일, 통원치료 22회를 받다가 결국 보험사로부터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760만원을 받은 후에야 치료를 끝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보험사는 왜 피해자들에게 끌려다니면서 거액의 합의금을 퍼주는 걸까. 여기에는 제도적인 맹점이 있다. 국내에서 자동차보험이 지급하는 치료비는 민법상 ‘과실책임주의’의 적용 예외 대상에 해당한다. 통상 과실이 있으면 본인의 과실비율만큼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보험은 예외다 보니 사고를 낸 사람의 과실이 있어도 전액 보상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77년에 도입됐다. 당시는 국내에 자동차가 보급된 지 얼마 안 돼 등록대수가 27만대에 불과했다. 따라서 교통사고가 나면 대부분 차가 사람을 쳐 중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가해자의 배상능력이 부족해 피해자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막고자 했다. 즉 인명구제 차원에서 보험사가 기한과 금액의 제한 없이 치료비를 지급 보증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에는 자동차가 부자들이나 몰 수 있는 사치품이었고, 피해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이런 사정으로 지난 44년간 교통사고 환자는 진단서와 같은 객관적인 근거가 없더라도 주관적인 통증을 호소하면서 치료비를 전액 보상받아왔다. 장기간 병원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말이다. 특히 자동차보험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하 자배법)과 표준약관에 따라 과실비율 100대 0의 일방과실 사고만 아니라면 90% 과실을 저지른 가해자도 피해자의 보험사로부터 치료비를 전액 받는다.
일부 비양심적인 운전자들은 이같은 허점을 악용해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거액의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계속 치료받겠다’는 식의 행태를 보인다. 말 그대로 ‘드러눕는’ 것이다. 보험사는 환자가 아프다고 주장하면 치료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장기간 치료로 손해가 더 커지느니 차라리 합의금 요구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를 이용해 ‘교통사고 합의금 많이 받는 법’과 같이 과실이 많거나 안 다쳐도 한방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버티면 합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내용을 정보라며 유튜브 등에 유통시키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일부 양심 없는 ‘나일롱환자’(가짜환자)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를 비난하지만 더 큰 문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법안이다. 제도적인 허점으로 인한 부작용이 뚜렷한데도 개선하지 않고 왜 악용하느냐고 탓만 할 순 없다. 현재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40년 전의 100배에 가까운 2400만대에 달한다. 교통사고도 차량과 사람 간 사고가 아닌 차량 대 차량의 사고가 많다. 2019년 기준 전체 교통사고의 90% 이상이 차대차 사고로 조사됐다. 환자의 비중은 염좌(삠)나 타박상 등 경상환자가 전체의 95%를 차지한다.
진단서도 없이 통증 호소만으로 장기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현행 제도는 손질이 시급하다. 교통사고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진료절차와 보상이지 ‘양심테스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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